제3구 無名無相絶一切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모든 것이 끊어져
우리의 삶은
어떤 이름으로도, 어떤 모양으로도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連續된 흐름과
不連續인 變化의 二重性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生生한 삶은 變化만 있을 뿐, 變化의 主體는 없습니다.
이것을 우주법계(宇宙法界)의 춤이라고 합니다.
분별(分別) 떠난 삶, 우주법계(宇宙法界)의 춤
앞서 우리 삶의 실상(實相)이 무상(無常), 무아(無我), 열반(涅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셋을 이해할 때는 무상상(無常相), 무아상(無我相), 열반상(涅槃相), 곧 槪念을 通해서 理解합니다.
이와 같은 理解를 해오(解悟)라고 합니다. 學習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學習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學習은 올바른 槪念을 定立시키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理解는 업상(業相)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유(思惟)와 수행(修行)이 뒤따라야 합니다. 槪念은 이해의 일정한 틀을 제공하지만 實相은 언제나 일정한 틀을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理解를 위한 이름과 모양은 이 틀을 말합니다. 이 틀은 자신(自身)과 대상(對象)을 一定하게 分別하면서 다양한 이해를 가로막습니다. 우리들의 이해란 이해가 자기 확신에 지나지 않으니, 정해진 이해의 틀에 새로운 이해를 맞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每 瞬間마다 經驗하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一定한 틀에 依해 이해되면서 生生한 삶이 죽은 삶이 되고 맙니다.
生生한 삶은 명사화(名詞化)되지 않은 變化들입니다. 變化의 主體는 없습니다. 다만 變化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우주법계(宇宙法界)의 춤'이라고 합니다. 法界 全切가 맞물린 춤사위의 '우리'일 뿐, 춤을 추는 主體가 따로 없습니다. 아울러 춤을 멈춘 적도 없습니다. 정지(停止)도 동작(動作)도 춤일 뿐입니다.
오히려 停止가 極的인 움직임이 됩니다.
여기에는 主體로서의 이름과 형象, 춤이라는 動作에 붙이는 이름과 形象을 떠나 있습니다. 그저 함께 어울려 있는 춤일 뿐입니다. 마지 못해 춤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해를 위해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지금 우리들이 認識하고 있는 춤이라는 그림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대로 經驗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자 합니다. 그것은 지각(知覺)입니다. 知覺의 特性은 無常의 變化를 固定된 狀態가
性質, 곧 同一性을 確立하는 것입니다. 이를 업상(業相)이라고 합니다. 業相은 分別하고 造作하면서
이름짓고 상태를 固定시켜 同一化하는 흐름입니다.
이것을 業의 傾向性이라고 하는데 이 性質에 依해서 實在가 歪曲되고 스스로가 삶에서 소외됩니다. 이는
우리의 感覺, 知覺의 條件인 몸과 마음의 特性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이 業의 나툼이기 때문입니다.
業相이 몸과 마음을 一定하게 固定시키고, 이 몸과 마음은 自身과 對相을 把握하기 위하여 自身의 固定된 認識 틀을 利用하면서 時空을 固定하고 結定論을 세우게 됩니다.
이와 같은 지각작용에 의해서 파악된, 고정되어 동일한 모양을 유지한다고 여기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과 모양은 無常한 變化와 無我의 世界를 나타내기에는 適節하지 않으며 根本的인 矛盾關係를 免치 못합니다.
곧 知覺과 言語에 의해서 파악된 고정된 동일성을 가지고 우리 삶의 實質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 個體의 흐름은 잠시라도 固定된 同一性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개체는 다른 것과의 전체적인 상호관계에서만 개체일 수 있기 때문에 이 關係를 떠나 고정된 이름과 모양으로 갈래지음은 業만 增長시킬 뿐입니다.
어떤 이름으로도 어떤 모양으로도 無常, 無我의 連續된 흐름과 不連續인 變化의 二重性인 우리의 삶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의 實在를 思惟에 依해서 갈래지워진 나눔의 모든 分別을 떠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추어 볼 때 부처님 時代의 불교 以外의 認識一般이 結定된 主體를 設定하고 그 有無를 主張했음은 知覺能力 곧 業識의 흐름에 充實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正和
-마음 하나에 펼쳐진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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