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하나 그대로 모든 것이며 모든 것 그대로 하나다
상즉(相卽)의 世界
중(中, 相入)과 즉(卽, 相卽)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이 모두가 緣起法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差異가 없습니다. 다만 緣起法의 內容을 서로 다른 側面에서 설명하고자 할 뿐으로 相入과 相卽은
서로가 서로의 存在의 存立을 成立시키는 原因이 됩니다.
이것과 저것이 있다고 할 때 이것과 저것은 나눌 수 없는 하나된 場에 함께 있습니다.
宇宙法界의 셀 수 없이 많은 無量한 것들의 相互關係도 이와 같습니다.
無量한 그 낱낱의 것들이 宇宙法界를 이루는 原因인 同時에 宇宙法界의 모든 것들이 原因이 되어 無量한 낱낱의
얼굴이 存在합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있고 이들은 因緣의 場에서 하나되어 있습니다.
하나가 그대로 모든 것이 된 理由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울러 이 하나는 모든 것이 原因이 되어서 存在하고 있습니다.
總體的인 原因이 되어 모든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하나의 總體的인 原因에 全的으로 依持하게 되어
一切가 그대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의 部分이 全切가 되지 않는다거나 全切가 그대로 하나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全切와 部分은 서로서로 獨者的인 要素를 갖게 되므로 緣起法에 맞지 않습니다. 스렇게 되면 部分
없이도 全切가 있을 수 있으며 全切를 이루지 않고도 部分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存在하는 것이 아니고 原因인 나에 依한 結果이기 때문에 너 스스는 공(空)입니다. 이 反對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 存在들의 場을 無限히 늘린다고 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色 그대로 空이며, 空 그대로 色[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모든 存在는 相卽으로 同一하다는
말입니다. 곧 모든 個體는 獨立된 實體를 갖지 않고 空인 緣起法에서 各 個體 自身을 나투고 있습니다.
部分이며 全切임을 自覺하고, 수행이 깊어져서 分別된 自我意識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때
깨달음의 場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世界, 莊嚴法界가 우리 앞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智慧와 慈悲가 完成됐다고 하는 말은 모든 衆生이 完全히 부처님의 世界를 具現할 때입니다.
때문에 보살들께서 모든 중생들이 涅槃의 世界에 들 때까지 實踐하는 멈춤 없는 慈悲行은
다른 이에 대한 慈悲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베푸는 慈悲로, 이는 온전한 生命의 場을 이루는 바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