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행 녹취]
명상수행 영상법문 - 자동반응패턴(業習) 관찰하기영상법문 녹취록
네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네~~~) 날씨가 아주 많이 이제 따듯해진 것 같더라구요. 제가 저번 주 끝날 때 언듯 한번 말씀을 드렸었는데,
우리의 人生, 삶이 우리가 아무리 冥想을 하고 佛敎 工夫를 해도 바뀌지 않는 理由가 무엇인지? 또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人間으로 태어난 理由는 이번 生을 살면서 뭔가 내 것을 蓄積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人間으로 이 世上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理由는 어떻게 하면 人間의 몸을 받아서 이 번 生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智慧를 깨달을 것이냐 터득할 것이냐?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智慧와 慈悲를 보시할 것이냐? 智慧와 慈悲福德을 내 스스로 깨닫고 다른 사람에도 깨닫게 해줄 것이냐? 이것이 우리가 이 번 生을 살아가는 삶의 目的이고 우리의 糧食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 돈, 名譽, 權力, 地位, 財産, 自息 남편 부인 등등 그 아무 것도 못가지고 가죠. 다만 얼마 만큼 慾心 부리지 않고 慈悲福德을 짓고 살았느냐, 利他的인 삶을 살았느냐 그리고 얼만큼 智慧를 닦아서 어리석지 않고 智慧롭게 어떤 깨달음을 얻었느냐? 이 두가지만을 우리가 죽을 때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恒常 慈悲福德과 智慧를 點檢해 볼 수 있어야 되는데, 아무리 智慧를 닦으려고 노력해도 智慧가 잘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生覺해 보세요. 地球라는 별에 人間의 몸을 받아서 태어났을 때, 놀라운 智慧를 깨달을 수 있는 無限한 可能性이 있다고 한다면...그렇다면... 天上世界는 人間界에 비해서 많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면 人間界의 어떤 特徵이 있을 것 아니겠어요? 天上世界와는 다른 어떤 特徵이...., 人間界가 天上世界와 다른 그 特徵이 뭐냐하면 바로 이 肉身입니다. 人間界는 天上世界나 다른 世界와는 다르게 物質的인 肉身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삶을 좀더 생생하게 體驗하게 되는 겁니다.
人間界가 다른 世上과 다른 점이 그겁니다. 몸을 가지고 있다는 特徵... 眼耳鼻舌身意 卽, 눈귀코혀몸뜻이 色聲香味觸法의 世上을 接觸하면서 直接的인 體驗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世上 모든 것이 虛妄한 空으로 實在가 아니지만 實在인 것처럼 삶을 느끼는 겁니다.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은 人間界의 特徵인 이 肉身이 진짜가 아니라고 부처님께서 누누히 말씀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진짜라고 느끼지 않습니까? 내 몸도 진짜고, 내가 맛있는 거를 먹으면 내 몸이 행복해하고, 힘든 일 하면 내 몸이 힘들어 하고, 몸에 病이 나면 진짜 病인 것처럼 내 몸이 아프단 말입니다.
내 자식을 볼 때, 자식이 맛있는 거 먹고 공부도 잘하고 항상 잘 지내면 내가 행복해하고 자식이 아프면 내가 아픔을 느낀단 말이죠. 이렇게 이 地球별의 特徵은, 人間界의 特徵은 비록 꿈 신기루 물거품 그림자 같은 이 世上이지만 이 世上이 實在인것 처럼 삶을 生生하게 經驗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삶의 經驗을 通해서 깨닫는 곳이 바로 人間界의 特徵입니다.
그러니까 天上世界는 깨달음이 놀랍게 빠르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人間界에서 놀랍게 빠르게 깨닫게되는 理由가 바로 肉身으로 體驗하는 直接的인 삶의 經驗 그겁니다. 世上이 진짜 같으니까, 너무 생생하니까 實在같은 삶의 經驗을 通해서 깨닫기가 더욱 쉬운겁니다.
그래서 人間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直接 삶의 經驗을 通해서 이룰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人間은 이번 生을 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돌아가야 되잖아요? 數百, 數千, 數萬, 數兆劫을 살면서 人間 몸을 받으려고 얼마나 氣를 썼는데 어렵게 어렵게 겨우 겨우 한 七十年 八十年 되는 流通期限의 이 人間 몸을 탁 받아서 나왔는데 그 어려운 競爭률 뚫고 人間界에 와놓고 여기와서 해야 할 일을 안하고 간다면 얼마나 분통 터지고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많은 人間들이 도대체 깨닫기를 願하지 않는는 말이죠. 그리고 지금 여기 여러분은 願하는 데도 깨달아지지 않는다고 生覺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내 意識이 지금 意識水準보다 훨씬 더 높은 意識水準으로 올라 갈 수 있느냐? 더 많은 智慧의 糧食, 깨달음을 얻어 갈 수 있느냐? 하며는,
여기 이게 아주 重要한 말입니다. 뭐냐 하면요? 새로운 것을 많이 經驗해 보고, 새로운 것에 많이 도전해 보고, 새로운 삶에 자꾸 부딪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로운 經驗을 도전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變化하고 싶지 않고 安住하고 싶고.. 왜 그러냐 하면요?
여러분들이 한번 行爲를 하잖습니까? 우리 삶, 世上이라는 것은 말과 生覺과 行動으로 하는 行爲가 連續되는 場입니다. 말 生覺 行動으로 하는 行爲 이걸 業이라고 말하죠. 身業, 意業, 口業입니다. 말 生覺 行動으로 하는 하나의 行爲를 하는데 그 때 行한 行爲는 한번 行爲를 했는데 말 生覺 行動으로 하는 行爲는 하나의 業으로써 潛在意識 속에 記憶으로 記錄 貯藏 된다는 말이죠. 記憶됩니다. 몸이 記憶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자전거 배우고 나면 그 때 몸이 딱 記憶을 하고 있다가 10년 20년 지나서 다시 자전거를 타도 예전처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처럼 배운 經驗情報를 몸이 이렇게 記憶을 하고 있어요. 習慣的으로 記憶을 합니다. 그래서 그와 비슷한 狀況에서 비슷한 것을 한번 두번 세번 反復하게 되면 그 業이 이제 習으로 定着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한두번 했던 業이 나중에 반복 반복 되면 이게 習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業習이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그래서 人間은 누구나 저마다 業習이 내 意識 마음안에 탁 달라 붙어 있어요. 그래서 나 意識은 그렇게 되가고 싶지 않은 데도 業習이 業習대로 하는 그대로 그냥 사는 겁니다. 이 業習의 特徵이 뭐냐하면? 自動反射的으로 내 삶을 業習대로 그저 그렇게 살게 만듭니다. 옛날에 살던 方式 그대로 業習대로 그냥 사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無意識的으로 業習대로 하다보니까 그냥 똑같은 그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약간 뭐 無意識이거나 이랬을 때 精神 없을 때, 事實은 어디를 가야 되는 狀況인데, 한참 가다보니까 맨날 가는 것처럼 집으로 가고 있어서 아차, 내가 딴데 갈려고 했었지. 하고 발길을 돌린 경우들 아마 있었을 거예요. 그게 業習이 나도 모르게 그 方向으로 이끄는 겁니다.
그런데 그 業習이라는 것은 그 業이 처음 일어났을 때 그 當時의 意識水準, 그런 意識水準에서 일어난 意識의 反應입니다. 그 당시 意識水準에서 일어난 業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初等學敎 때의 意識水準에서는 그렇게 意識이 反應할 수 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렇게 말 生覺 行動을 하는 行爲, 業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行爲가 反復되거나, 그 행위가 반복되고 그 業이 業習으로 내 意識에 딱 붙어 있게 되었을 경우에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그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아서 同一한 選擇밖에 못합니다. 나이들어 意識水準에 전혀 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業習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다른 選擇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다른 選擇을 하지 않고 똑같이 自動反應만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릴 적에 할머님께서 저희 할머님이 아주 그 유명한 전국적으로 유명한 침할머니 셨어요. 침을 너무 잘 놓으셨어요. 그런데 그 침을 다른 분들 침하고 전혀 다릅니다. 듣도 보도 못하는 침이예요.엄청 두꺼운데다가 저게 침인가 못인가 싶은 대못같은 침을 가지고 계시고 가느다란 침도 이렇게 굵어서 이렇게 찔러 넣으면 한참을 들어가는 이런 침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계시는데,
제가 그 어린 나이에 조금 아프기만 하면 뭐 저는 아프지도 않는데도 제 얼굴빛을 보고는 어디 간이 안좋다. 어디가 안좋다 하고 와가지고서는 아주 그 침을 찔러 주는 거예요. 외할머님집 가는게 아주 공포였습니다. 외할머니한테 한번 잡히면 그냥 꼼짝없이 머리 같은데도 침을 엄청 깊이 넣어요.
하여간 특이하게 침을 놓십니다. 그러니까 그때 침하면 저는 엄청난 恐怖反應이 自動 反射的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치원때부터 그래놨으니,초등학교 올라갔는데 이 주사맞는 때만 되면 벌벌벌 떠는 거예요. 너무 무서운 겁니다. 나중에 제가 나이가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침을 놓는다 그러면 하여간 자동적으로 싫은거예요.
그런데 이제 언젠가 제가 鼻염도 많았었고 안좋다 보니까 어떤 신도님이 손에다 수지침을 놔주신다고... 난 안한다.하여간 난 내몸에 뭐 들어오는게 싫다. 말씀을 드렸더니, 이거 안아프니까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서 안한다 그랬다가 그 다음날 가만히 보니까, 아.. 業習에 따른 自動反應이구나. 내가 유치원때 그때 할머니가 나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을 때 그게 무서웠던 것은 그때의 意識水準에서 그때의 業習에 反應해서 무서운 거였고 두려운 것이었지, 지금의 意識水準에서도 반드시 무섭고 두려워야만 할까? 그렇게 生覺을 하고서 그럼 놔줘 보세요. 했더니 그냥 참을만 하다가, 이거 계속 맞다 보니까, 이게 그냥 시원한게 좋더라구요.
그래서 어느 날 제가 아마 히말라야 그 책에도 썼는데 히말라야 갔다가 내려오면서 오른 무릎이 고장이 났었어요. 산에 갔다가 내려올 때만 되면 내리막길만 걸으면 하여간 오른 무릎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외할머니가 있으면 야 무릎에 침한번만 맞으면 바로 낳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그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그런데 이제 그렇게까지 무섭겠나. 그렇게 마음을 내고 있었는데 마침 할머니께서 연세가 많으신데 당신이 그러시는 거예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셨어요. 그러면서 당신이 이번생에 아마 마지막 여행이 아닐까 싶어서 그냥 여기저기 뭐 가족들 자식들 손자들 손녀들 어떻게 사는지 볼려고 이렇게 다닌다고 오신거예요.
마침 그때 딱 오셔서 어 정말 죄송하지만 어차피 오셨으니 침 가지고 오셨나요. 했더니 침을 안가지고 나왔다가 문밖에 나왔다가 혹시 몰라서 다시 들어가서 침을 들고 나오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나 계실건가요? 했더니 삼일 정도를 묶고 가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무릎을 보더니 못해도 삼일은 맞아야된다. 그런데 딱 삼일은 계시다 간다고 그런데 그 침을 이렇게 맞아 보니까, 옛날에 그렇게 두렵고 공포스러웠던 무릎부분이나 이 부분이 아픈 부분이래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옛날에 내가 생각했던 그렇게 아프거나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그러고 나서는 뭐 내가 예를 들어 어깨가 안좋았을 때도 한의원에 가서 침도 한번 맞게 되고 제 친구가 한의원고 한의사이고 해서 이런 얘기를 들어보니 한두번 맞으면 바로 괜찮다. 그래서 이제 쉽게 쉽게 이제는 맞게 되더라는 거죠.
그런데 보통 일반적으로 저도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어릴적의 어떤 상처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거나 그때 비슷한 業習이 내안에 남아 있게 되면 나이가 들어도 그것을 안합니다. 그건 난 못한다고 여겨요. 意識은 完全히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意識은 그때 意識水準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그 어린 아이의 意識속에 그대로 갇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의외로 많은 사람에게 나이 들어서 죽기 직전까지도 그렇게 가지고 있는 業習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業習은 이렇게 큰 業習들만 이렇게 自動反應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서 부터 잠들 때 까지 모든 것이 自動反射的으로 일어납니다.
집에 있을 때 별로 할 일이 없어요. 그러면 自動反射的으로 TV를 켭니다. 自動反射的으로 이렇게 리모콘을 들고 있지요. 그리고 自動反射的으로 채널을 자꾸 돌리죠. 자꾸 돌려보고 그런데 굳이 TV를 안봐도 되는 순간인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지금 별로 특별히 볼 프로그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리모콘을 만지작 거립니다.
저녁이 되면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그냥 왠지 모르게 심심해서, 심심해서 자꾸 냉장고를 뒤지기도 하고 또 어르신들 보면 저녁 때만 되면 이거 뭐 저녁 때만이 아니라 저희 아버님 같으면 그냥 입에 뭔가 들어가시만 하면 소주부터 한잔 들어가야 되는 젊을실 때 하도 그렇게 일을 하시면서 노가다를 하시면서 항상 반주를 한잔씩 하시다 보니까, 항상 뭘 드실 때만 되면 그냥 이건 음식이 아니라 모든 음식은 안주가 되어서 항상 술을 같이 드셔야지만 되는 거예요.
담배 피우는 사람들 보면 내가 언제 여기 불을 켰지. 이 식당에서는 당연히 피우면 안되는 줄 알지만 나도 모르게 갑자기 켜져서 나도 깜짝 놀랐다.여기는 지금 금연구역인데도 불구하고 깜짝 놀라는 거예요. 스스로도, 내가 언제 불을 켰는지 기억을 못하는 그걸 정도로 自動反射的으로 그냥 담배에 불을 붙이는 거죠.
지난주 말씀 드린 것처럼 앞자리에 앉는 사람은 자주 앞자리에 앉는데. 항상 보면 항상 뒷자리 구석에 앉기만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 있어요. 물론 어디에 앉아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習慣的으로 그런 경우가 있단 말이죠. 그런데 앞에 앉아도 괜찮고 뒤에 앉아도 괜찮아요. 어릴 적에 어떤 특정 과목을 아주 못했는데 선생님이 맨날 앞에 있는 사람을 시켜서 서로 앞에 안 앉으려고 했던 그 아픔이 업습이 되어 가지고 이제는 결코 앞에는 안 앉는 이런 사람들도 있을 수가 있겠죠.
어떤 분은 이제 담배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오랫 동안 담배 술을 피시다가 간암이 걸리셨어요. 연세가 꽤 되셨는데 정년퇴임을 앞두고 계시는 분이신데, 간암이 오셨어요. 그래서 엄청난 충격과 엄청난 아픔속에서 이렇게 나날을 보내시고 수술도 몇번을 하고 아직 다 낫지도 않으셨고 본인 스스로가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걸 준비하고 사는 느낌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세요. 아내와 자식 생각하면 이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이렇게 생각 하세요.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간암이 걸렸으니까, 술 담배는 당연히 하지 말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이걸 안하는데서 오는 괴로움이 간암 때문에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보다 더 크다는 거예요. 정말로 술을 이걸 못 먹는데서 오는 괴로움이 너무 커서 이제는 내 意識의 統制를 벗어났다라고 느끼시더라구요. 지금도 여전히 담배, 술 계속 하셔요. 이거 도저히 못 끊는 거예요. 그렇게 이렇게 됩니다. 나중에는, 나중에는 술을 정말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라 習慣的으로 먹게 되요. 담배를 정말 피우고 싶어서 피우는 게 아니라 習慣的으로, 커피를 진짜로 먹고 싶어서 마시는 게 아니라 정말 習慣的으로 마시게 되듯이 나중에는 統制不可能한 이걸 無條件 하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 意識을 하면 됩니다.
우리가 어딘가에 重毒이 되었거나 어떤 業習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 重毒이나 業습을 無條件 바꿔야한다는 것만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안 바꿀 수도 있어요. 또 이거 정도는 내가 이 정도는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정도는 괜찮겠다 하루에 커피 한두잔 정도 내가 나 자신에게 그냥 선물해 주고 싶다. 상관 없습니다.
그런데 重要한 것은 그것을 分明히 意識하고 實行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알아차리고 내가 지금 정말 이것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지, 아니면 그냥 無意識的으로 自動反射 反應으로 일어나는 것인지를 分明히 알고 하는 것, 이렇게 意識으로 보고 하는 것과 그냥 無意識에 휩쓸리는 것은 다릅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問題를 만들어 냈던 그 當時의 思考水準에 머물러서는 그 問題를 풀 수 없다. 問題를 만들어 낸 그 當時의 思考水準에 우리의 意識은 恒常 이렇게 사로잡혀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내 意識으로는 지금도 그 問題를 풀 수 없을 거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意識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거든요. 끊임없이 바뀌고 變化하면서 흘러갑니다. 지금 나의 意識이 전혀 다르게 바뀌었을 수도 있고 또 이 事件을 통해서 이 經驗을 통해서 내 意識을 意識的으로 바꿔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意識 스스로 삶을 바꿀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어요. 내 人生의 主人公이 意識 自身이기 때문에 그 무엇도 意識의 統制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내 人生 삶은 내 意識이 만들어 낸 것이고 내 意識이 創造한 것이지, 내 人生에서 내가 끌어 당기지 않은 것, 내가 만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 人生에서 내 意識이 만들지 않았다고 意識이 虛妄하게 錯覺하는 것일 뿐이지. 이 말은 내 人生은 얼마던지 내 意識으로 새롭게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만일 여러분이 나는 도저히 이거는 바꿀 수 없어 라고 여기는 어떤 것이 있다면 나의 意識은 이 業習 이 重毒을 절대로 어쩔 수 없어, 혹은 이것은 내 意識의 統制로도 어쩔 수 없는 거야. 라고 하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곧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나는 내 人生의 主人이 아니다. 내 삶을 내 意識 스스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나에게는 없다고 宇宙法界를 향해서 외치는 겁니다.
부처님이시여. 이 우주법계이시여 나는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 人生을 바꿀 수도 없고 나는 그렇게 힘을 가진 存在가 못됩니다 라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아요. 그러면 우주법계는 오케이 합니다.. 이 宇宙法界는 無條件 오케이 밖에 몰라요.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나쁜 놈들이 나쁜 生覺을 하고 나쁜 데에 生覺의 에너지를 集中하잖습니까? 그러면 나쁜 生覺이 現實로 이루어 집니다. 왜냐하면 宇宙法界는 人間界의 善惡을 判斷하지 않고 人間들이 어디에 意識을 生覺 에너지를 集中하느냐? 이 사람의 意識이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느냐? 어디에 생각 에너지를 깊이 투입하고 있느냐? 그것만을 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에 마음에너지를 깊이 쓰면 그것은 現實로 이루어집니다.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것이 이루어져요. 두려워하는 데에 生覺에너지를 많이 쓰면, 그러니까 나는 이것을 바꿀 수 없다 라고 生覺을 하면 그것은 결코 바꿀 수 없어요. 그런 現實 狀況을 내 生覺 마음 意識 스스로 만들어 낸 것과 똑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意識이 바뀌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바뀔 수 있고,내 삶은 내 意識 스스로 分明히 變化 시킬 수가 있습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열려 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바꾸지 못한다고 生覺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은 過去의 意識水準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지금의 意識水準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아닙니다. 지금의 意識水準은 분명하게 달라졌잖습니까?
특히 이렇게 부처님 工夫를 하고 마음工夫를 하는 사람들은 본인은 意識하지 못하는 사이에 놀랍게 意識의 成長이 일어납니다. 절에 다녀도 똑같이 남편한테 화내고 똑같이 자녀한테 화내고 하니까, 나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절에 다녀도 별로 안바뀐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內面에서는 놀라운 變化가 進行中입니다.
절에 한 三十年 以上 다니신 어떤 보살님께서 그러세요. 당신은 지금까지 절에 오래도록 다녔지만, 바뀌는 것 같지 않았다.그냥 내 인생은 똑같아었다. 화를 잘내고 똑같은 삶이 계속 반복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최근에 이 일이년 사이에 갑자기 법문이 점점 더 가슴 깊이 와닿았다고, 너무나도 놀랍게 나 자신을 바꿔놓고 내 남편도 바꿔놓고 너무나도 행복한 삶이 변화면서 깜짝 놀랐고 내 인생에 정말 놀라운 변화가 지금 이제 와서 시작되는 것 같다. 라고 놀라워 하면서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그것은 지금 새로운 佛法을 만나서가 아니라, 과거에 공부했었던 그것은 별로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때 공부했었던 것이 하나하나 나를 變化시켜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業이라는 것은 限界效用이 있어서 그것을 變化 시킬만큼 내 안에 힘이 쌓이기 전까지는 바꾸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안에 수행과 기도와 마음공부를 통해서 조금 조금 조금씩 意識이 成長하고 있지만 成長하는 意識이 어느 臨界値를 넘어가게 되면 이제 임계점을 넘어 成長한 意識이 내 삶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겨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조금 조금씩 成長하는 意識을 우리는 보지 못하니까, 마음工夫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錯覺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 안에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工夫하면 할수록 놀라운 意識의 成長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過去에 만들어 놨던 業習에 奴隸처럼 過去와 똑같은 삶만을 同一한 패턴만을 反復하면서 살 필요가 없는 겁니다. 얼마던지 삶이 바뀌고 달라질 수 있고 바뀔 수 있어요.
왜? 여러분 自息들이 여러분들에게 왔느냐하면요? 여러분들의 意識을 成長시켜주기 위해섭니다. 내가 自息을 내 마음대로 統制함으로써, 지금의 내 意識水準, 過去의 내 意識水準, 그리고 옛날의 思考方式에 制限되고 갖혀 있는 意識水準으로, 自息을 制限시키게 되면 그 自息을 亡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옛날에 중학교 때 여자 친구 손 한번 잡으면 안 될 것 같고 뽀뽀하면 안 될 것 같고 내 자식이 내 딸이 딴 남자의 손을 잡고 뽀뽀를 했다고 그러면 막 노발대발 하면서 난리를 치거나 그러려는 意識이 있다. 아니 고등학생밖에 안되었는데 진하게 연예를 하고 있다.그러면 그냥 그 얘기를 듣자 마자 막 화를 낼 것같은 부모님에게는 결정코 자식이 말도 아예 안하겠죠.
그런데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냐면? 자식이 아빠한테 와서, 딸이 아빠한테 와서 아빠~ 사귀는 남자아이가 자꾸 뽀뽀를 할려고 그러는데, 오늘도 키스를 했는데, 아 기분이 어떻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런 걸 얘기할 때 갑자기 경직이 되어서 아버지 어머니 표정이 갑자기 경직이 되어서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반응을 하지 말고 재미있게 웃어주는 겁니다. 즐겁게 유쾌한 일이죠. 지금의 아이들의 意識에서는요 그것은 그렇게 대단한 범죄 이런 게 아닙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것들이예요.
제가 진짜로 초등학생 6학년 중학생 1학년 밖에 안되어 보이는 애들이 야 뭐 저 헌팅이나 하러 갈까? 하는 얘기를 들었다니까요. 흐 신기한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나로써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아이들이 하는 것에 대해서 벽을 딱 치고 어떻게 너가 그럴 수가 있느냐?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지 말고 일단 마음을 열어주는 겁니다. 아 이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지금 어떤 시대가 열리고 있는지. 어떤 세계를 이 아이는 살고 있는지. 나와는 어떤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이것이 내가 맞다고 생각해서 너는 틀렸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 새로운 시대에서 새로운 것을 나는 배울 수가 있겠구나라고....
여러분 제가 아는 어떤 분께서 이제 장군으로 전역을 하셨는데,장군으로 전역을 하셨는데 그 자식들이 뭐라고 그러냐면은요? 정말 자신들은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는 거예요. 이분이 장군으로 군에 있을 때만 해도 아주 좀 그야말로 장군답게 근엄하고 아주 참 멋있고 이런 분이였데요. 그런데 이 아빠가 전역을 하자마자 갑자기 머리를 막 파머를 하고 염색을 하더니 옷도 근엄하게만 있고 다니시더니 갑자기 반바지도 애들이 입는 이런 반바지에다가 티도 애들이나 좋아할 법한 티를 입고 막 자전거를 사가지고 뭘 쫄쫄이 같은 옷을 입고서 막 다니지를 않나. 무슨 음악을 들으러 다닌다고 그러면서 뭐 어디를 다니지를 않나. 혹은 젊은 애들 가는데처럼 이렇게 어디 커피숍 같은데 노트북을 가지고 귀에 노래 들으면서 뭘 하지를 않나. 뭐 온갖 희한한 거를 많이 하더라는 거예요. 아니 아빠는 그 나이에 그러고 싶어? 그렇게 물어보니까, 야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을 위해서 또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살았지 않느냐? 나도 내안에 이런 게 있는 줄은 나도 사실은 몰랐다.
그런데 내가 뭔가 내 마음안에 있는 뭔가 자꾸 發散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거를 發散하지 못한다면 나는 죽는 것이고 늙는 것이고 더 이상 내 인생에 成長은 없는 것 아니겠느냐? 나는 내가 뭔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뿐이다. 정말 참 멋있더라구요. 그런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사실 놀라운 意識의 成長이 일어나고 놀라운 삶의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과거의 똑같은 틀에 박힌 속에서 業識대로 業習대로만 그대로 反復하는 行爲만 한다면 그런 變化가 일어나기가 힘듭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옛날 가던 길로만 가지를 말고 다른 길로도 가 보고 맨날 차타고 다니던 거를 걸어서도 가보고 버스도 한번 타보고 지하철도 한번 타보고 맨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들만 만나다가 그 業習을 한번 깨보는 거예요.
여러분의 지금의 意識은 아~ 나에게 도움만 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만나서 그 사람을 通해서 뭔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을 向해서 마음을 열려있는 意識으로 바꿨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도 만나보고 새로운 일도 한번 經驗해보고 새로운 것에 挑戰도 해보고 제 친구 녀석이 결혼을 못하고 늦게까지 이러고 있다가 이제 結婚을 한다고 연락이 왔는데, 물어봤더니 공무원이였던 사람이래요. 그런데 이였던 이라니? 한창 때였는데 결혼하기 직전에 공무원을 그만 두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무얼 할건데 ? 나이가 꽤 됐는데 여기서 무얼 한다고 갑자기 한참 때 이렇게 나와가지고 그만 두냐? 했더니 공무원 그 미래가 보장된 공무원을 때려치고 공부를 하고 있데요. 뭔 공부를 하고 있느냐? 그랬더니 자연을 좋아하고 나무를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고 그래서 조경을 가꾸고 이런 것들을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다는 거예요. 몇년 과정의 공부를
또 어떤 보살님께서는 연세가 아이들 대학교까지 다 가르쳐놓고 이제는 어느정도 애들도 다 컸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어느 정도 다 크고 나니까 엄마가 필요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놀아달라고 해도 이제 놀아주지도 않고 좀 만나자고 해도 만나주지도 않고 아버지는 멀리서 주말부부로 왔다갔다 하시는데 집에 아버지가 들어가면 하루 잠깐 아이들이 반가워 해주는데 하루가 딱 지나면 그 다음날부터 아이도 별로 빨리 안가나 하는 눈빛을 보내고 아내도 이 남편 빨리 안가나 하는 눈빛을 보내서 집이 좀 그렇다는 거죠.
그런데 보살님은 보살님대로 마찬가지 자식들이 이제 나와 별로 놀아주지 않고 자꾸 놀아 달라고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자꾸 집착 하는 것 같고 그래서 아이들 놓아 줄 때가 되었구나.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 놓지 못해서 한동안 너무 괴롭다라는 거예요. 그러다가 내가 왜 이렇게 자식한테 연연하고 남편한테 연연하고 살지? 그러지 말아야 되겠다. 해서 불교 心理相談같은 것들을 새롭게 工夫 시작하는 분, 이런 분도 계셨구요.
연세가 한 오십 육십 되셨어도요. 지금은요 여러분들 이제 앞으로 이삼십년 지나고 나면요. 여러분들이 어르신들이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때 되면 미래학자들이 앞으로 나이가 120살까지 산다는 거예요. 육십에 정년퇴직해도 아직 육십이 더 남은 겁니다. 정년퇴직할 때 쯤은 새롭게 시작할 때에요. 그래서 이제는요. 나중에 60 70 80이 되어도 일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그래서 그때 되면 어르신들을 케어해주는 심리상담사 같은 거 이 마음공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습니까? 지금 교회에서 대부분의 목사님들이나 교회 신자님들은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다 가지고 가서 불교신자는 없어요.
그래서 이혼도 마음대로 못해요. 심리상담사한테 가서 상담을 받고 나서 오케이 하면 그때 이제 이혼을 할 수가 있어요. 필수입니다.돈 꽤 많이 들여가지고 상담을 받고 나서 이혼을 해야되요. 이제는 그런데 그 심리상담사가 다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불자들도 기독교인들한테 가서 상담을 받고 이혼 해야되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할 수가 있단 말이죠. 이를테면 그것은 연륜과 어떤 경험같은 것들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이를테면 뭔가 새로운 어떤 도전들도 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보고 안가는 데도 가보고 새로운 가능성에 한번쯤 도전해 볼 수 있어야 된다.
그래서 지금 이제 잠시 명상 시간을 가질 건데 지금 잠깐 명상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짧게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여기 오는 과정에서 어떤 業習의 反應이 있었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벨를 딱 눌러놓고 잠을 다시 자는 習慣이 있는 사람도 있구요. 또는 내가 지금 빠듯하게 시간을 맞춰놓고 7시 8시에 나가야 되는데 7시반쯤 빠듯하게 맞춰놓고 후당당당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하나의 業習입니다. 이것을 한 삼십분 더 일찍 맞춰 놓은 生覺 自體를 우리는 못하죠.
그리고 새벽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잠시 십분 좌선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도 있는데 나는 아침은 원래 시간을 못내요. 라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規定 짓는 것, 그것이 하나의 業習의 反應입니다. 그거는 과거에 그랬던 거지 지금도 그러리라는 것은 내 觀念일 뿐이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는 그럽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냥 자동반사적으로 나와요. 이제 일어나자마자 受容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 받아들입니다. 하고 그동안 제가 또 지난 과거에 아~ 아픈 게 있다면 容恕합니다. 하고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대해서 感謝합니다.하고 내가 만난 존재들 모든 삶에 대해서 사랑합니다.하고 이렇게 몇번을 반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해요.
그런데 그것이 놀라운 어떤 變化를 가지고 옵니다. 첫 始作이 重要하거든요. 첫 始作을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아주 큰 에너지 變化를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그렇게 바꿔 볼 수도 있는 것이구요.
또 출근할 때 어떻게 내가 출근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동일한 패턴들도 한번 살펴보고 남편이 출근하는 걸 보고 그냥 이게 오는지 가는지 별 關心도 없이 보지는 않는지. 반찬도 대충대충해서 주지는 않는지. 자식들에게는 맨날 이래라 저래라 라고 하는지는 않는지. 뭔가 조금 더 따듯하고 조금 더 남편과 아이들이 조금 더 행복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보낼 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 다른 패턴으로 한번 삶을 살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그러니까 내가 동일한 패턴으로 항상 살던 것을 조금 바꿔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 또 지난 일주일 동안 지난 한달 동안 지난 한해 동안 누군가 나에게 권유했지만, 내가 習慣的으로 拒否했던 것들은 없는지,이렇게 나의 자동반응 패턴들을 한번씩 살펴보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 한주동안 숙제로써 내가 일주일 동안 모든 순간에 항상 자동반응이 일어납니다. 항상 자동반응이 일어나요. 그 자동반응대로 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쯤 잠시 멈춰놓고 이대로 하는 것이 온전한 것인가? 옳은 것인가? 이 방법밖에 없는가? 또다른 무한 가능성을 내가 制限 시키고 있지는 않았는가?를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冥想을 한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잠시 죽비를 세번을 치면 잠시 나의 동일한 어떤 자동반응의 패턴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내가 눈치 채지 못하는 자동반응의 패턴들의 특징이 내가 눈치를 못챈다는 사실 입니다.
그런데 명상을 하고 자기자신의 마음과 몸을 지켜보다보면 어느 순간 이제 알아차리게 되요. 그래서 자신의 삶을 잠시 살펴보면서 잠깐만 한번 해볼테니까, 남은 시간은 집에 가서 한번 해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탁 탁 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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