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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蘊의 成立 - 五蘊(2)

장백산-1 2015. 2. 11. 23:18

 

 

 

 

五蘊의 成立 - 五蘊(2) | 붓다수업 교리강좌

 

 

 

 

(2) 十八界와 觸에서 생겨난 受-想-思

 

그런데 이 십팔계의 三事和合을 통해 ‘무언가가 있다’는 意識인 ‘觸’이 나타나게 되면, 이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

卽, 觸에 依해서 受想思가 생겨난다. 여기에서 受想思는 곧, 五蘊의 受想行을 意味한다. ⟪잡아함경⟫306경에서는

“眼根과 色境을 緣하여 眼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和合하는 것이 虛妄하게 錯覺하는 意識인 觸이다. 觸에서

受想思가 함께 생겨난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耳根와 聲境을 緣하여 耳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和合하는 것이 虛妄하게 錯覺하는 意識인 觸이며, 觸에서 受想思가 함께 생겨난다. 나가서 意根와 法境을 緣하여

意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和合하는 것이 虛妄하게 錯覺하는 意識인 觸이며, 그 觸에서 受想思가 함께 생겨난다. 眼耳鼻舌身을 서로 連結하고 綜合하여 統合的으로 認識하는 意識이 ‘意’라고 했으니, 結局, 意界와 法界가 緣하여

意識界가 생기고 그 세 가지가 觸함으로써 受想思가 생겨난다는 말은 곧, 우리가 마음이라고 여기는 ‘意’와 ‘意識’

속에서 色受想行識이라는 五蘊이 만들어짐을 뜻하는 것이다. 十八界가 因緣 따라 接觸함으로써 마음에서 五蘊이

생겨나는 것이다. ‘意根 – 意識 – 法境’ 이라는 세 가지가 和合하여 ‘觸’함으로써 새로운 ‘있다’고 여기는 五蘊이라는 存在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卽, 五蘊이란 十八界와 觸에서 因緣 따라 만들어진 ‘存在’라고 錯覺된 意識이다.

 

쉽게 말해, 十八界가 和合함으로써 ‘무언가가 있다’라는 存在論的인 錯覺에 빠지게 되고, 事實은 없는 것이지만,

있다고 錯覺함으로써 우리 意識은 錯覺 거기에 執着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있다는 錯覺이 있으면, 좋은 것에는

愛着하고, 싫은 것은 미워하게 되며, 生覺으로 따져 보기도 하고, 欲望을 投映하여 가지려고 애쓰기도 한다.

受想思, 卽, 修想行이 생겨나는 것이다. 卽, 錯覺하는 虛妄한 意識인 ‘觸’이 생기면 觸을 因緣으로 受想行이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꿈 속에서 무수한 보물을 보고, 큰 돈을 벌었다고 할지라도 꿈에서 깨는 瞬間, 그 모든 것이 虛妄한

것이었음을 알고, 實際로 存在하지 않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꿈에서 깨는 瞬間 그 꿈 속의

금은보화에는 전혀 執着하지 않는다. 本來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執着할 필요가 없음을 아는 것이다.

執着하지 않기 때문에 꿈 속  寶物에 대해 좋아하면서 愛着하거나, 싫어하면서 憎惡할 필요도 없고,

거기에 대해 生覺할 理由도 없으며, 가지려고 努力할 필요도 없다.

 

事實은 우리의 삶 또한 이러한 꿈과 마찬가지로 虛妄한 錯覺하는 意識의 演極놀이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있다’라고 여기고, ‘존재한다’라고 여기는 그 모든 것들은 事實 꿈과 같다. 實存的인 무엇이 아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無明에 의해 우리 意識은 虛妄하게 錯覺을 함으로써 觸入處에 依해 ‘진짜로 있다’고 錯覺한다.

‘觸’에 依해 진짜로 있다고 錯覺하게 되면, 그 錯覺에 대해 좋거나 싫다는 느낌이 일어난다. 바로 이렇게 해서

생겨난 좋거나 싫다는 느낌, 感情을 受蘊이라고 칭한다. 이 느낌 감정에서 연이어 過去에 알았던 것과 比較해서

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判斷하고 思惟하며, 生覺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온(想蘊)이다.

좋은 느낌 感情이 생기고, 그것에 대해 生覺하게 되면 연달아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衝動을 느끼고

行動에 옮길 것이다. 그것이 바로 행온(行蘊)이다. 이렇게 해서 受想行이 생겨난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단순하게 이해한다면 受蘊은 느낌과 感情을 말하고, 想蘊은 生覺, 思惟,

表象作用이고, 行蘊은 欲求, 意志作用으로써 무언가를 行해야겠다는 業의 原動力이 되는 意識作用이다.

물론 行蘊에는 이러한 意志作用 外에도 受蘊과 想蘊, 識蘊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精神作用을 포괄하기도

한다. 그러나 單純化 시켜 意志作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 눈 앞에 어떤 女人이 나타났다. 눈으로 그 女人을 보고 分別해 認識함으로써 十八界가 和合하여

‘觸’이 생긴다. 卽, 그 女人을 ‘實體的인 存在’로 錯覺하는 것이다. 사실, 만약 그 女人이 눈 앞에 나타난 瞬間,

큰 고민과 걱정거리 때문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깊은 苦惱에 빠져 있었다면 그 女人은 눈앞에

어떤 存在로 認識되지 못했을 것이다. 卽, 그 女人은 實體가 아니기 때문에, 그 女人이 눈 앞에 나타났을지라도

나는 그 女人을 認識해 ‘있다’고 여기는 觸이라는 虛妄한 錯覺하는 意識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因緣이 和合하여 마침 내가 그 女人을 보았고 認識했으며 ‘있다’고 여겼다.

十八界에서 虛妄하게 錯覺하는 意識인 觸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면서 연이어서 그 女人에 대해 좋다는 느낌 感情이 생긴다. 보고만 있어도 幸福한 感情이 생기고,

好感이 간다. 이것이 受蘊이다. 그러면 곧바로 想蘊은 過去에 가졌던 女人에 대한 標象들을 떠올릴 것이고,

아름답다는 槪念들을 떠올릴 것이며, 그것을 通해 過去에 만났던 女人들과 比較해서 더 아름답다고 生覺하게

된다. 이것이 想蘊이다. 그렇게 좋은 느낌과 生覺이 만들어지게 되면 自然히 그 다음에는 그 女人에게 말도

걸어보고 싶고, 차라도 한 잔 나누고 싶고, 사귀고 싶은 欲求, 意志가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行蘊이다.

 

 

 

 

 

(3) 五蘊의 成立

 

그러면 이제 비로소 五蘊이 모두 成立되었다. 五蘊이란 虛妄하게 錯覺하는 意識인 ‘觸’으로 因해 우리 意識이

‘있다’고 여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卽, 우리 意識이 ‘있다’고 여기는, ‘존재한다’고 여기는 一切 모든

것들은 全部 五蘊에 포섭된다. 卽, 一체 모든 存在를 五蘊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앞에서 十二處도 一切라고 했고, 十八界도 一切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또 다시 一切 모든 存在를 五蘊이라

한다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初期經典에서 一剃 存在에 대한 다양한 분류 방법을 설하셨는데 代表的인 것이

蘊處界라고 하여, 五蘊, 十二處, 十八界이다.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눈데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精神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五蘊을 설하고, 物質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十二處를

설하며, 精神과 物質 모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十八界를 설한다고 한다. 이렇게

蘊處界로 나누어 설명함으로써 다양한 根機의 온갖 중생들에게 結局 物質과 精神은 모두 實體的인 것이 아니며,

다만 因緣 따라 緣起되어진 假合의 存在에 불과하며, 空한 것이고, 無我인 것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五蘊의 온(蘊)은 ‘모임’이라는 뜻으로 음(陰)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좁게는 人間 存在도 五蘊이라고 부르며,

넓은 의미로는 一切 모든 存在를 五蘊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별히 人間 存在만을 區別해서 사용할 때는

五聚蘊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五蘊으로 構成되어 있는 것을 自我라고 執着한다는 意味에서

五聚蘊이라고 한 것이다.

 

五蘊에 依하면 一切諸法은 物質的인 色과 精神的인 受想行識으로 나눌 수 있다.

앞에서 受想行에 대해서는 설명했는데, 色과 識 또한 이미 설명이 되었다. 色은 物質로써, 우리 肉身의

感覺器管인 眼耳鼻舌身과 그 對相인 色聲香味觸을 色이라고 부른다. 눈과 눈에 보이는 對相,

귀와 귀에 들리는 소리, 코와 코로 맡아지는 냄새, 입과 입으로 맛보아지는 맛, 몸과 몸으로 감촉 느껴지는

對相 전부를 色의 범주에 넣는다. 그리고 識은 十八界에서 설명한 六識을 말한다.

 

앞에서 識의 對相을 名色이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受想行識을 名으로, 色을 色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識으로 認識할 수 있는 意識의 對相은 名과 色, 卽, 色受想行識 五蘊이다.

 

‘나’라는 人間 存在를 五蘊이라고 했고, 五蘊은 ‘觸’으로 因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라고 했다.

卽, 우리 意識이 實際로 나라는 것이 없는 ‘無我’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있다고 여기는 錯覺은 바로 ‘觸’ 때문이고,

그 虛妄한 錯覺하는 意識인 觸으로 因해 ‘내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종류에는 色受想行識이 있는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色인 이 肉身을 ‘나’라고 여긴다. 肉體가 이렇게 있고,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코가 있고,

혀가 있기 때문에 物質인 肉身을 보고 ‘내가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色蘊이다.

 

肉身만을 가지고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만은 아니다. 精神作用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도 ‘나’,

‘내 마음’이라고 여긴다. 精神인 受想行識 또한 ‘내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인 것이다.

 

그런 精神으로는 첫째, 느낌, 감정 즉 受蘊이 있다. 우리가 ‘나’라고 生覺하는 ‘내 마음’에는 첫 번째로

느낌 感情을 느끼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슬픔, 아픔, 절망, 기쁨, 행복감 등을 느낀다. 좋은 느낌도 느끼고,

싫은 느낌도 느끼며, 그저 그런 느낌도 느낀다. 이렇게 觸을 통해 ‘있다’고 여겨지는 ‘느끼는 존재’,

‘느끼는 마음’을 受蘊이라고 한다.

 

精神의 두 번째로는 生覺, 思惟, 思考하는 마음인 想蘊이 있다. 느끼는 것도 내 마음이지만, 判斷 思惟 抽理하는

등의 生覺 또한 중요한 마음의 작용이다. 槪念 혹은 表象作用이라고도 하는데, 對相을 보고 어떤 것인지 이름을

붙이고, 표상을 부여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수온을 감성이라고 한다면 상온은 지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람들도 보면 감정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감성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성적인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세 번째로는 바람, 意志, 欲求라고 할 수 있는 行蘊이 있다. 어떤 行爲를 일으키고, 行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거나, 어디에 가고 싶다거나, 갖고 싶다거나, 말하고 싶다거나, 되고 싶다거나 하는 바람,

욕구, 의지적인 마음의 부분이 있다. 이 行은 業을 일으키는 原動力이 되는 마음이기도 하다. 물론 뒤에

살펴보겠지만 이 行蘊은 受蘊, 想蘊, 識蘊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다양한 精神作用을 두루 포섭하고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주요한 작용이면서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단순히 意志 作用이라고만 알아 두자.

 

네 번째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對相을 綜合的으로 分別하고 認識해서 아는 마음인 識이 있다.

受想行識이라는 마음 작용 중에 가장 根源이 되는 마음으로, 受想行의 도움을 받아 對相을 分別하고

인식해서 아는 마음 작용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對相을 把握하여 認識할 때 因緣이 和合함으로써

認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因緣 따라서 認識이 생겨났다고 生覺하지 못한 채, 우리 안에 어떤 特定한

‘認識하는 存在’가 별도로 있어서 對相을 그 ‘識’이라는 存在가 認識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對相, 六境을 綜合的으로 分別하고 認識해서 아는 마음을 識(意識)이라고 한다.

 

그러면 다음 장에서는 오온 각 지분의 세부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붓다수업] 중에서

 


붓다 수업(법상 스님의 불교 교리 콘서트)

저자
법상 스님 지음
출판사
민족사(도) | 2013-12-13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지금은 붓다 시대. 웰빙, 힐링, 뉴에이지, 영성, 치유, 명상...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