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 법륭선사의 心銘
참마음의 본성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려고 하며, 보려고 하는가?
心性不生 何須知見
참마음의 텅~빈 본바탕은 단 하나의 티끌조차 없는데
닦으며 익힌다고 말하는 자 누구인가?
本無一法 誰論熏鍊
가고 돌아옴은 아무 까닭이 없이 저절로 그러하니
아무리 쫒아 다니며 찾아보아도 전혀 볼수가 없다네.
往返無端 追尋不見
온갖 행위를 억지로 짓지만 않는다면
밝고 고요한 텅~빈 본체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네.
一切莫作 明寂自現
생각이 나오기 이전 본바탕 자리는 마치 텅~빈 허공과 같아서,
그 자리를 안다고 말 한다면 텅~빈 본바탕은 잃어 버리네.
前際如空 知處迷宗
만물을 나눠서 비추어 본다면 경계만 만드는 일이니
비추어 보는 족족 따라다니면 멍청해지고 어두워만 진다네.
分明照境 隨照冥濛
한 생각이라도 걸림이 있다면
모든 법이 통하지 못하고 막혀버리나니
一心有滯 諸法不通
생각들이 오고 가는 것은 저절로 그러한 것이므로
생각을 비우려고 쫒아다니며 애쓰는 것은 헛수고 일 뿐일세.
去來自爾 胡假推窮
생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서로 간의 관계만 일어나는 것이니
생기는 것과 그것을 주시하는 것은 다 같은 하나라네.
生無生相 生照一同
깨끗한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생각이 전혀 없는 무심만이 쓸모가 있다네.
欲得心淨 無心用功
이것 저것 비추어 보는 마음이 없어져야
가장 미세한 경지이고, 가장 신묘한 깨침이니,
從橫無照 最爲微妙
만법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은 알음알이 앎이 없는 것이며
알음알이가 없는 앎이 진실한 앎의 요체이니라.
知法無知 無知知要
만일 마음(생각)을 이용하여 억지로 고요함을 지켜려고 한다면
오히려 번뇌 망상 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나니
將心守靜 猶未離病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마저 모두 잊어버린 무심경지,
바로 이것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참된 성품이라네.
生死忘懷 卽是本性
완전한 진리는 말로 설명할 것이 전혀 없으며,
풀리는 것(해탈)도 아니고, 얽히는 것(속박)도 아니네.
至理無詮 非解非纏
신령스럽게 전체에 통하고 만물에 응하는 것이지만
항상 지금 여기 내앞에 그대로 있는 것이네.
靈通應物 常存目前
지금 여기 내앞에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 있는 그대로 완연한 것이네.
目前無物 無物宛然
지혜로 비추어 보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마음의 본체 스스로는 텅 ~빔이며, 깊고 깊은 현묘함이라네.
不勞智鑑 體自虛玄
생각들이 일어 났다 생각들이 사라지지만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과 사라진 이후는 다르지 않나니,
念起念滅 前後無別
경계와 접해서 일어나는 뒷 생각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대상과 접해서 나타난 앞의 생각들도 저절로 사라질 것이네.
後念不生 前念自絶
과거 현재 미래 삼세에 걸쳐서 본래 아무것도 없으니
본래 마음도 없고 부처도 없느니라.
三世無物 無心無佛
중생이 무심하면,
없음(無/空)에 의존해서 마음(心)이 나온다네.
衆生無心 依無心出
범부니 성인이니 분별하기 때문에
번뇌망상이 더욱 극성부리는 것이니,
分別凡聖 煩惱轉盛
헤아리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 불변인 것을 더욱 헤쳐놓으니,
참된 것을 구하려다가, 옳바른 길을 등져 버린다네.
計校乖常 求眞背正
상대적인 경계가 서로 합쳐져 사라지면
저절로 본바탕의 맑고 밝음 속에 잠기게 되나니.
雙泯對治 湛然明淨
불필요하게 일을 억지로 꾸미고 만들어서 애쓰지 말고
갖난아이처럼 그냥 천진무구하게 천진불로 지내시게.
不須功巧 守嬰兒行
분명하고 또렸하게 알아차렸다고 한다면
오히려 본다는 그물에 더 깊히 걸려드는 것이고,
惺惺了知 見網轉彌
고요하고 고요하여 아무것도 보는 바가 없다고 한다면
캄캄한 굴속에 파뭍혀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네.
寂寂無見 暗室不移
또렸 또렸 깨어있으면서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면
마음은 고요 고요 하면서도 밝은 지혜가 환하게 비춘다네.
惺惺無妄 寂寂明亮
온갖 다양한 모양들은 있는 그대로 참된 것이고
온갖 다양한 우주삼라만상들(對相/境界)은 모두가 다 똑 같은 하나라네.
萬像常眞 森羅一相
오고 가고, 앉고 서고 할 때, 언제 어디서든
(경계에) 붙잡히지 않고 전체와 하나가 되나니,
去來坐立 一切莫執
특별하게 정해져 있는 방향과 처소가 없는데
어디로 들어가고 어디로 나가야 할 곳이 따로 있겠는가?
決定無方 誰爲出入
하나로 합칠 것도 없고, 사방으로 흩어질 것도 없으며
더디게 된다는 것도 없고, 빠르게 된다는 것도 없다네.
無合無散 不遲不疾
밝고 고요한 깨달음은 저절로 그렇게 있는 것이니,
도저히 말로서는 표현하기가 없다네.
明寂自然 不可言及
본마음 이외에 또 다른 마음은 없나니
탐욕과 음욕을 끊을 것도 없네
心無異心 不斷貧淫
본래성품은 텅~비어있어 (탐욕이) 스스로 떨어지니
마음은 흐름에 떠맡겨져 일어났다 사라졌다 할 뿐이네.
性空自離 任運浮沈
(마음은) 맑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으며
얕지도 않고 깊지도 않느니라.
非淸非濁 非淺非深
본래부터 있는 것은 옛것(지난 것)이 아니며
현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현상)은 지금이 아니라네.
本來非古 見在非今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현상)은 머물러 있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현상) 자체가 본바탕 마음일세
見在無住 見在本心
본래가 아무것도 없나니
본래가 바로 지금 이 자리라네.
本來不存 本來卽今
깨달음은 본래 있는 것이므로
따로 지키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네.
菩提本有 不須用守
번뇌는 본래 없는 것이므로
따로 제거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네.
煩惱本無 不須用除
신령스러운 지혜가 스스로 비추어
모든 법이 텅~빈 본바탕으로 돌아가도
靈知自照 萬法歸如
돌아갈 일도 없고 받을 일도 없으니
살펴보는 것도 끊어지고 지키는 것도 잊어버리네.
無歸無受 絶觀忘守
네 가지 덕은 생겨 난 적이 없고
세 가지 몸은 본래 (텅~빈 본바탕에) 있는 것이니라.
四德不生 三身本有
육근이 육근경계를 만나서
분별하고 인식하여 아는 앎은 진실한 앎이 아니네.
六根對境 分別非識
한 마음에는 허망되고 거짓됨이 없으니
온갖 것과의 인연관계가 바르게 조화를 이루네.
一心無妄 萬緣調直
마음의 텅~빈 본바탕은 본래 가지런하여
함께 있지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心性本齊 同居不携
생겨 남이 없으나 만물에 순응하고
곳곳마다 보이지 않게 스며 있네.
無生順物 隨處幽棲
깨달음이란 깨닫지 못함 때문에 연유함이니
깨달음이란 곧 깨닫지 못한 것이니라.
覺由不覺 卽覺無覺
얻음과 잃음등의 이원성의 세계 속에서
어떻게 좋고 나쁨을 논할 수가 있겠는가.
得失兩邊 誰論好惡
일체의 모든 작용이 있다는 것은
원래부터 조작됨이 없다는 것이네.
一切有爲 本無造作
마음을 아는 것은 마음이 아니듯
병이 없으면 약도 없느니라.
知心不心 無病無藥
미혹할 때는 다른 대상들을 버리려 하지만
깨달으면 깨달음마저 놓아 버리나니
迷時捨事 悟罷非異
본래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지금 버린다고 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本無可取 今何用棄
소위 마군(망상)이 일어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허한 형상(몸)을 (자기자신으로서) 갖추고 있다는 말이네,
謂有魔興 言空像備
범부의 망정 망상을 억지로 없애려고 애쓰지 말고
오직 그런 생각(없애려는 마음)들을 쉬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라네.
莫滅凡情 唯敎息意
생각(의지)이 없으면 마음도 없어지고
마음이 없으면 행위도 끊어지나니
意無心滅 心無行絶
쓸데없이 空을 체득하려고 애쓰지만 않는다면
자연히 밝고 분명해 지리라.
不用證空 自然明徹
생사심(生死心) 분별심이 완전히 없어져버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컴컴한 마음이 되어 그 본바탕으로 들어가고
滅盡生死 冥心入理
눈을 뜨고 깨어 있으면 모양을 보게 되어
마음이 경계를 따라 일어나 흘러간다네.
開目見相 心隨境起
마음이 일어나 흐르는 곳에는 경계가 없고
경계가 있을지라도 무심할 뿐이니,
心處無境 境處無心
만일 마음을 써서 경계를 없애려 한다면
마음과 경계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게 된다네.
將心滅境 彼此由侵
마음이 고요하면 경계도 고요함 그대로 여서
가지려고 하지도 않고 버리려고 하지도 않는다네.
心寂境如 不遺不拘
경계는 마음을 따라서 사라지고
마음은 경계를 따라서 없어진다네.
境隨心滅 心隨境無
마음과 경계 양쪽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고요하고 텅~비어 저절로 밝아질 것이네.
兩處不生 寂靜虛明
깨달음은 (마음의 물위에) 그림자로 나타나지만
마음의 물은 항상 텅~비어 맑느니라
菩提影現 心水常淸
덕의 성품이 겉으로는 어리석은 듯이 보이나
친함과 친하지 않음을 마음에 두지 않으므로
德性如愚 不立親疎
칭찬과 모욕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며
따로이 머물 곳을 찾아 다니지도 않으니.
寵辱不變 不擇所居
모든 반연을 단번에 쉬어 버려서
아무것도 생각하는 것이 없다네.
諸緣頓息 一切不憶
영원히 밝은 대낯은 어두운 밤같이 컴컴하게 보이고
영원히 어두운 밤은 밝은 대낯처럼 환해 보이나니,
永日如夜 永夜如日
겉으로는 어리석고 완고한 것처럼 보이긴 하나
내면의 마음은 곧게 텅~비어 있다네.
外似頑嚚 內心虛直
경계에 맞주칠지라도 꿈쩍도 하지 않으니
이런 이가 바로 힘이 있는 대장부라네.
對境不動 有力大人
보는 주체가 없으니 보는 행위도 없고
보는 행위가 없으니 마음은 그대로 항상 (맑게) 드러나 있다네.
無人無見 無見常現
일체에 통달하면 두루하여
원만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通達一切 未能不遍
생각이 일어나면 미혹 속으로 들어가
정신이 혼란 속으로 빠지게 되나니
思惟轉昏 汨亂精魂
만약 마음으로 움직임을 그치려고 한다면
그 그침이 다시 시끄러움으로 변한다네.
將心止動 轉止轉奔
만법은 일정하게 머무는 곳이 없으며
오직 단 하나의 문만이 있을 뿐,
萬法無所 唯有一門
들어감도 없고 나감도 없으며
고요함도 없고 시끄러움도 없다네.
不入不出 非靜非喧
성문,연각(중,하근기)의 지혜를 가지고는
이것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聲聞緣覺 智不能論
실제로는 한 물건도 없는데
미묘한 깨어있음은 홀로 남아 있나니,
實無一物 妙智獨存
근본에 이르르게 되면 텅~빈 듯 꽉 차 충만해 있지만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 근본바탕이네.
本際虛沖 非心所窮
옳바른 깨달음은 깨달음이랄 것이 없고
참된 空은 空이랄 것이 없네.
正覺無覺 眞空不空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부처님들이
모두가 이 바탕 종지에 의거해 일승이라 했거늘
三世諸佛 皆乘此宗
이 바탕 종지의 한터럭 끝(점)에
온 시방세계(우주)를 모두 머금고 있느니라
此宗豪末 沙界含容
어느 곳도 (밖으로)돌아 볼 것이 없나니
안정된 (바탕)마음은 머무르는 곳이 없네.
一切莫顧 安心無處
마음이 머무는 곳이 없으면 마음이 평안해 지나니
마음이 텅~비고 밝아져서 저절로 맑게 드러난다네.
無處安心 虛明自露
고요함이 고요하여 망상이 생기지 않으면
사방 팔방으로 두루하게 펼쳐져서 널리 비추나니.
寂靜不生 放曠縱橫
(그렇게 되면) 하는 일마다 걸림이 없으므로
움직이든 머무르든 언제나 한결같도다.
所作無滯 去住皆平
지혜의 태양은 고요 고요하고
움직임 없는 빛은 밝고 밝나니
慧日寂寂 定光明明
무상(無相)의 정원을 비추니
열반의 성 안이 밝아지네.
照無相苑 朗涅槃城
온갖 반연된 것을 잊는 것으로 끝내니
일체가 움직임 없는 절대 신이라고 말하네.
諸緣忘畢 詮神定質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빈방에서 편안하게 잠든다네.
不起法座 安眠虛室
만일 도를 즐김이 이렇게 묶이게 된다면
넉넉하게 노니는 그대로가 참된 것일세.
樂道括然 優遊眞實
억지로 할일도 없고 얻을 것도 없으니
없음에 의지해서 저절로 (모든것이) 나타나게 되나니.
無爲無得 依無自出
사성제와 육바라밀이
똑같이 일승의 길이나
四等六度 同一乘路
만약 마음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법에는 서로간에 아무 차별도 없으리라.
心若不生 法無差互
나도(生) 남이 없는 (無生) 줄 알면
눈 앞에 항상 도가 있느니라.
知生無生 現前常住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알지니
말로써 깨우칠 바가 아니니라.
智者方知 非言詮悟
-우두법륭선사의 心銘, 白隱 韓譯-
매우 간결하면서도 등불과 같이 선명하여 과히 곁에 두고 한번씩 읽는 것도
좋을 듯하여~~!
몇 구절씩 끊어서 읽어도 전체와 하나로 다르지 않으니 전체가 길면 중간 중간
몇 구절씩 끊어 가져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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