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기 : 腦와 意識을 이해하려는 노력들
"우리가 頭腦를 理解할만큼 頭腦가 單純했다면,
우리는 너무 單純해서 頭腦를 理解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生物學者인 라이얼 왓슨이 남긴 말이다. 왓슨은 뉴에이지에 경도된 면이 있어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의 말은 腦가 얼마나 複잡한 器管인지 보여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을 모르는 이유도, 분명히 내가 한 행동인데 왜 이런일을 했을까 후회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서로 얽혀 주고받는 신호들이 말도 못하게 복잡한 탓이다. 당연히 많은 과학자들이 腦를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여기고 연구에 뛰어들었다. 특히 大腦는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중요한 관심사였다. 人間의 意識活動을 담당하는 기관인 만큼 自我와 無意識 같은 精神醫學의 難題뿐 아니라 靈魂이나 信仰과 같은 종교적 논쟁과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盲人이 손으로 꼬끼리를 만지는 것만으로 코끼리의 모습을 再構成할 수 있을까?
20세기 후반... 지난해 '네이처 메소드'는 腦地圖化(brain mapping)) 특집호를 냈다. 특집호의 사설은 이렇게 한숨 섞인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여러 世紀에 걸쳐 경이로은 신체 기관인 腦를 熱心히 硏究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놀라고 있다. 腦가 무엇이고 어떻게 作動하는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에 대해tj 말이다. "科學者들은 눈으로 보고 나서야 우리의 腦가 얼마나 대단한 作品인지 깨달았다. 지금 우리가 지닌 연구방법론의 수준에 비교했을 때 腦의 복잡함과 정교함에 압도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코끼리를 더듬던 손에 눈을 달기는 했지만 아직 머리의 눈이 열리지는 않은 셈이다. 하지만 探驗은 늘 그런 막막함 속에서 다시 시작됐다. 未知의 腦가 눈 앞에서 秘密을 벗는 瞬間도 그런 탐험 속에서 다가올 것이다.
- 본 콘텐츠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온라인 뉴스레터 IBS 뉴스레터 10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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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처' 라는 '이름'으로 表現되는... '깨달음을 얻음' 이라는 이름으로 表現되는 앎이란... 腦와 意識을 完全하게 理解 하는 것이다. 事實, 그들의 앎으로 볼때, 人間들의 모든 앎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똑 같다. 단언컨데 人間들의 腦와 意識에 대한 연구들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은 것으로써 절대로 코끼리의 모습을 재구성 할 수 없다.
설령 코끼리를 더듬던 손에 눈을 달든지, 또는 그 손에 다른 腦를 달 수 있다고 하더라고
'頭腦'와 '意識"의 關係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왜나하면 人體는
機械와 같은 부속품들로써 구성된 것이 아니라, 有機體이기 때문이며, 有機體란 根本 原因物質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生覺의 幻想物質이기 때문이다.
事實, 人間은 '有機體'라는 말에 대해서도 이해 할 수 없다.
단지... 막연하게 '眞理'란 '宇宙의 根源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 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宇宙'의 根本原因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眞理란 그런 것일 것이다, 라고 推測하는 것이며, 그럴 것이다, 라고 看做하는 것이다. 그 生覺의 主體를 알아야만... 自身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腦의 作用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한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 腦와 意識에 대해서 分明히 아는 人物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人間들의 그들의 말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歪曲되면서 졸지에 人間들의 永遠한 우상 卽, 부처님... 하나님... 으로 歪曲되고
變質된 것이다.
事實, 腦와 意識의 關係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에 이해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있었다면,
'고타마 싯다르타' 와 '나사렛 예수' 정도다.
'예수'가 한 말 '네 안에 하나님이 있으니,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는 말과
'석가모니'가 한 말 '네 本來性稟이 부처다' 라는 말과
'소크라테스'가 한 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모두
' 너 스스로 자신의 生覺의 實體를 밝혀라' 라고 하는 말이다.
사실, 현 시대는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 또한 인간들의 '腦'에 대한 연구가 헛된 짓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가르침의 핵심 요지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하기 때문이며, 一念冥想法으로써 自身의 生覺 意識 마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며, 生覺 마음 意識의 原理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진리의 길' 이라는 말과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등이 곧 腦의 作用에 대해서 이해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며, 生覺의 原理에 대해서 이해 하는 방법이다. 宇宙의 根源을 이해 하는 것 또한
自身의 生覺 意識 마음의 實體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肉身 속에 깃든 無形의 實體가 靈魂이
아니라... 腦에서 일어나는 生覺의 作用이며, 記憶된 生覺들 중의 일부라는 뜻이다.
사실, 사실을 올바르게 알고 보면 腦는 '언어 저장 장치'이다.
다만 인간은 經驗 以前의 生覺에 대해서 記憶(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남들을 依存하여 얻어진
言語(知識=意識=마음=生覺)에 대해서 事實的이라고 錯覺하는 것이다.
만약에 그대에게 記憶된 生覺(낱말들, 言語=지식=마음=의식)이 없다면... '腦, 意識, 마음'... 도 없다.
단지 그대가 意識하는 모든 것들은 남들을 依存하여 알게 된 '言語' 일 뿐인 것이다.
가령 '생각이 없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이 없다면' 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언어가 없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더 나아가 '내가 없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내가 없다' 고 생각하는 '나' 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육체가 나다' 라고 생각하는 나가 있기 때문에, '육체가 나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나... 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육체와 마음=나(我)" 라고 생각하는 것과 "육체와 마음은 '나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서로
틀린 생각이 아니라 단지... 다른 생각이다.
다만 인간은 '육체와 마음=영혼=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모순이지만...
모순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自身의 生覺의 生滅 現象作用에 自身의 意識이 속는 줄도 모르고 속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지식으로써 해답을 구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성인들의 가르침은 '죽음이 本來 없다'는 것이며, 고통이 本來 없다는 것이다.
단지 무조건 '고통이 없다'는 방식으로써 '無苦集滅道(싯다르타의 말)'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諸各己 自身의 마음의 實體를 보는 것으로써 그런 事實에 대해서 事實을 事實 그대로 올바르게
理解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말, 卽 '無苦集滅道' 라는 말이 아니라... 그런 理致를 깨달아 알기 위한 方法이다.
그런 理致를 깨달아 알기 위한 방법을 실천하기 前에, 知識으로써 理解 해야 하는 가장 重要한 말이
있는데, '남들을 依存하여 아는 앎은 올바른 앎(正見)이 아니다' 는 말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앎은
남들을 依存하여 아는 앎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을 믿을 수 없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 조차 믿을 수 없기 때문에... 神, 하나님, 性靈, 佛性, 靈魂, 靈性... 등등의 觀念을 믿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앎은 단지 지식을 넘어선 올바른 앎이다.
그대 또한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을 얻을 수 있다.
그대 또한 예수와 같은 올바른 앎, 석가모니와 같은 올바른 앎을 얻을 수 있다.
지금 그대가 아는 모든 것들(마음, 知識, 意識)은 남들을 依存하여 얻어서 아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의 말이거나, 석가모니의 말이거나... 또는 다른 인간들의 말이거나... 과학이거나,
종교거나, 의학이거나... 남들을 依存하여 얻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正見, 卽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이란... 인간들의 앎과 같이 남들을 依存하여 아는 앎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앎' 이다. 그리고 남들을 依存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앎을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두 권의 책' 과 이곳 카페의 모든 글들의 핵심 요지이며 그 방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 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예수의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말이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다' 는 말은... 남들을 依存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올바른 앎'을 얻기 위한
'일념명상법' 수행의 시작이 미약하기 이를데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진리로 거듭남' 에 대해서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방식으로 번역된 것이다. 그리고 일념수행의 정점인 '一念의 '無念處'에
대해서... '그 날, 나와 너와 하나님'이 둘이 아니라는 방식으로 번역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고 한 것이며, 어떤 우상도 숭배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석가모니의 말 또한 예수의 말과 한치의 誤差도 없는 말들이며,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다.
다만 인간들의 남들을 依存하여 아는 그릇된 앎에 의해서 서로 다른 우상숭배사상으로
歪曲되고 變質된 것이다.
人間이 腦와 意識의 關係에 대해서 硏究한다는 것은, 腦를 解部하여 '生覺'을 찾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며 또한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서 코끼리의 形像을 찾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腦를 硏究한다는 것은 라디오를 分解하여 라디오 속에서 '소리'를 찾는 일과 같은 것이며,
TV를 分解해서 티비 속에서 사람을 찾는 일과도 같은 무모한 짓이다.
사실, 인간들의 '남들을 依存하여 아는 앎'으로써의 知識으로써 治療가 不可能한 각종 癌 등의
불치병들이 '도가의 약식'과 '도가의 단식'방법으로써 완치되는 까닭은... '도가의 법칙, 방법'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지식으로써의 앎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앎'에 바탕을 둔 것이며,
'뇌와 의식'의 관계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남들을 依存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앎이란, 우선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종교와 과학, 철학, 의학... 등의 인간들의 모든 지식을 초월하는 앎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안다는 것은...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알이며, 오직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만이 宇宙의 根源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生命의 秘密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腦와 意識의 關係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와 벗하라고 하는 것이며, 진리의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本來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의 스스로 아는 앎에 依해서, 그대가 곧 모든 것이며
同時에 모든 것의 紀元이라는 事實에 대해서
事實을 事實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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