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지구에 살고 있다.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낮과 밤, 춘하추동 사계절을 만든다. 이런 現象을 ‘주기성’과 ‘반복성’이라고 槪念化할 수 있다. 인간은 그가 몸담고 있는 지구를 닮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의 생명과 행동도 지구의 屬性을 빼닮아 周期性과 反復性을 지니게 된다. 周期的이고 反復的인 버릇, 習性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가능케 했고, 우리는 이를 ‘文化’라고 명명한다. 따라서 人類의 文化는 地球의 周期性과 反復性을 품고 있는데, 이를 文化의 次元에서 ‘一常性’이라고 다시 槪念化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를 ‘일상성의 문화’ 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일상성의 문화를 요즘 뜨고 있는 신과학의 개념을 빌려 음미해 보자. 인류가 문화를 누리게 된 것은 인간의 精神能力, 특히 記憶能力의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傳統的으로 記憶은 腦에 貯藏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영국출신의 생물학자인 셸드레이크(Rupert Scheldrake)는 非物質的인 記憶能力이 腦가 아닌 다른 곳, 그가 ‘形態場(morphic field)’ 이라고 명명한 곳에 貯藏된다고 주장한다. 腦는 記憶을 貯藏하는 저장창고라기 보다는 精巧하게 作動하는 受信器로 機能한다고 推論한다.
우리의 記憶이 모두 形態場에 貯藏되어 있다는 그의 주장에 따르면, 첫째, 우리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반복한, 비슷하고 공통적인 체험이 뭉쳐진 일종의 집단기억의 形態場에서 ‘形態共鳴(morphic resonance)’을 傳達받는다. 융(C.G.Jung)이 주장한 ’集團無意識의 源形‘도 形態共鳴 이론과 부합한다. 그리고 이 集團記憶이 바로 문화의 내용을 이룬다.
둘째,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制約없이 마음이 닿는 사람의 생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이심전심이라든지, 텔레파시가 그러한 현상이다. 셋째, 형태장에 각인되어 있는 다른 사람의 기억을 받을 수 있다면, 분명히 먼저 살았던 사람, 즉
이미 죽은 사람과의 연결도 가능할 것이다. 최면상태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이러한 현상을 증명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넷째, 우리의 기억이 뇌에 저장되어 잇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사후, 즉 육체적 죽음후에 오는 어떤 삶에 대해 상당히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종교에서는 육체적인 죽음 후에도 계속 살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다섯째, 형태공명이론은 문화의 반복성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다. 자연법칙은 일종의 ‘버릇’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약하면, 과거의 일은 지금 일어나는 일에 影響을 주며, 현재 일어나는 일은 미래에 있게 될 사건에 影響을 미친다. 어떤 일이 자주 反復될수록, 미래에도 反復될 확률은 높아진다. 이런 性向은 ‘버릇’, 또는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Bourdieu)의 용어로는 ‘아비투스(habitus)’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생명현상을 총체적 관점으로 포괄하는 ‘형태장’의 ‘형태공명’이론을 통해서,
우리는 ‘일상성의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나름대로 ‘지금,여기(here and now)’라는 현실적인 삶의 좌표의 역사성을 깨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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