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가고감에 흔적이 없고 오고옴도 그럴 뿐이네

장백산-1 2015. 4. 2. 15:19

 

 

 

 

가고감에 흔적이 없고  오고옴도 그럴 뿐이네

 

 

禪詩는 깨달은 禪僧들이 그들의 깨달음의 境地에서 그 깨달음을 詩의 形式을  빌어 表現한 것입니다.

따라서 禪詩를 解釋하기 위하여는 佛道 修行者로써 어느 程度의 깨달음이 있어야  可能합니다.

아래의 解釋은 제 自身이 해석한 것입니다.             
 

                            去去無標的 (거거무표적)   가고감에 흔적 없고

                            來來只麽來(내래지마래)    오는옴도 그럴 뿐이네

                            有人相借問(유인상차문)    그대 만일 묻는다면

                            不語笑咍咍 (불어소해해)   말없이 해해 웃겠노라

 
禪門의 祖師님의 게송입니다.

人間이 世上에 오고 가는 것을 衆生의 눈으로 볼 때는 人間이 오고 가는 흔적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宇宙萬物 森羅萬象 모든 現象들은 단지 波動하는 에너지가 成住壞空하는 循環過程의 現象일 뿐으로 결코

固定되어서 變하지 않는 實相이 아니라 꿈 허깨비 신기루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헛것이기에

그것들의 오고 간 흔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는 세상에 태어난 적이 없으니 결코

죽은 적도 없다"라는 覺者의 말과 一脈相通합니다. 世上 宇宙 森羅萬相의 本質 根源 實相 本來모습을

깨달아서 純粹意識을 回復한 者는 그 瞬間 自己가 단 한 번도 태어나고 죽은 적이 없다는 事實을 압니다.

 

만일 위의 詩를 쓴 분이 完全한 正覺(깨달음을 넘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분이라면

말은 그렇게 해도 실은 "흔적이 있다 없다 라는 말조차 할 것이 없네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3열과 4열은 상당히 有名한 글귀 입니다. 마직막 열의 바보같이 해해 웃는 모습은 世上의

모든 것을 達觀하여 바보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단순극치"라고 합니다.

道(깨달음)은 말로 表現될 수 없는 "言語道斷"의 世界이기에 그저 해해 웃는 것이며,

또한 누가 뭐라 해도 그저 "해햬"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참말로 完全한 正覺을 이룬 者만이

可能한 것입니다.

 

 

*成住壞空 : 시간의 적용을 받고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는 모든 事物등 現象은

 생기고 성장하고 다시 무너져서 空으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生老病死와

 生成消滅 生住離滅과 일맥 상통하는 말이다.


*태어남이 없다 라고 함은 깨달은 者가 그 깨달은 意識으로 그 純間 알게 되는 것이다.

 宇宙의 모든 現象들은 太初 以前의 完全 眞空狀態에서 생겨난 것들인데,

 眞空에너지場에서 그 생겨난 것들, 現象은 比喩하건데 바다에서 波濤가 일어나듯 일어난 現象으로

 그 無數히 많은 波濤나 물거품도 結局은 바다에서 비롯되어 한시도 그 바다로 부터 떠난 事實이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波濤나 물거품도 結局은 한시도 바다를 떠나 바다가 아닌 적이 없듯이...

 

宇宙의 모든 現象들도 結局은 永久不滅하는 太初 以前의 眞空 상태로 부터 나왔으며 ,

더우기 단 한번도 그 母胎가 된 本質(眞空 不可의 空)을 떠난 적이 없는 眞空 그 自體이므로

人間이라는 存在, 것의 現象도 다른 모든 現象들과  마찬가지로  그 眞空으로 부터 비롯되어

단 한번도 眞空과 분리되어서 眞空을 떠난 적이 없는 眞空 그 自體이므로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病듦도 없고 죽음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人間의 生老病死가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虛空에 핀 꽃(空華)처럼 虛想일 뿐이다.

다만 完全한 正覺을 이룬 者는 결코 그러한 現象들이 虛想이라는 말조차 사용치 않는다.

 

http://won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