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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이 곧 도라는 의미

장백산-1 2016. 7. 19. 20:31

평상심이  곧  도라는 의미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지만 정작 깨달음을 터득하고 나서 보면, 깨달음이라는 特別한 어떤  

對相이나 境界가 고정된 실체로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事實을 깨우치는 것이라고  한다. 그저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 있는 그대로가 眞實한 모습, 實相이고  眞理

이지,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가 아닌 더 성스럽다거나 더 위대한 그  어떤 별도

의 특별한 깨달음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는 ‘ 色卽是空’이라고  하여, 色이 즉바로 그대로  空이지, 별도의 따로 따로의 

色의 세계와 空의 세계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설하며, ‘無智亦無得’이라고 하여 智慧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고 설하고 있다.  또한 ‘以無所得故’라고 하여 이 法은 얻을 바가 없는 것이라고 설한다.


사람이 건강할 때는 건강이 평범하고 특별나지 않지만  아플 때는 건강이 소중해지듯이

정작 깨달음이 뭔지 터득하고 보면 깨달음이라는 특별한 경계가 따로 없음을 깨우쳐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건강할 때는 그저 하루하루를 멀쩡한 몸과 마음으로 그냥 살면 되는 것이지, 

건강한 사람들이 매일 아침 일어나 건강한 자신을 보면서 신기해하고,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를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그저 살 뿐이다. 이처럼 건강할 때는 건강하다는 相이 없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병이 들어 아픈 사람에게는 건강이라는 감사하고도 특별한 境界가 따로 있다고 

여겨져 건강을 찾는다. 즉, 아플 때는, 문제가 생겼을 때는 건강이라는 경계가 따로 있는 것처럼 여겨

지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도 몸과 마음의 건강과 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곧 건강한 몸의 상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강한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現實, 있는 이대로

의 이 세상, 있는 이대로의 이 삶이 아닌 따로 저멀리 어디에 特別난 깨달음의 세계, 眞理의 世界, 法의 

世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 이렇게 특별한 일 없이 있는 

그대로의 평범한 삶, 世上, 現實이야말로 있는 그대로 깨달음, 眞理, 法이다. 이와같은 사실을 터득한 

者는 이미 몸과 정신이 건강하기 때문에, 따로 특별한 건강한 心身 상태, 깨달음의 상태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평범하게 살 

뿐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사람, 病이 생긴 사람에게는 몸과 마음의 건강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된다. 그래서 

의사는 病이 생긴 사람에게 빨리 나을 수 있도록 方便으로써 ‘건강’이라는 멸성제(滅聖諦), 즉 病이 사

진 상태가 可能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病이 생겨서 아픈 사람은 건강이라는 멸성제를 만들어, 그것을 

목표로 열심히 病을 치료하는 것이다. 즉 도성제(道聖諦)를 실천하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病이 없으니, 즉 괴로움이 없으니, 고성제(苦聖諦)가 없고, 

病의 原因을 찾거나, 病이 없는 건강한 이상세계를 꿈꿀 것도 없고,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즉 方便인 苦集滅道라는 四聖諦(사성제)가 필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반야심경’의 ‘

무고집멸도’의 의미다. 病이 들어 아픈 환자에게는 病이 나은 상태가 놀라운 환희의 순간일 것이다. 


예를 들어 눈이 멀어 아무 것도 보지 못하던 사람이, 수술을 잘 마쳐서, 멀쩡한 두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는 엄청난 환희심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견성(見性)이다. 自然의 성품을 보는 순간, 모든 문제

가 해결되기 때문에 환희심과 깨달음의 체험 같은 것이 찾아온다. 그러나 실명되었다가 시력을 회복한

사람이 처음에는 환희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겠지만 時間이 지나면 시력이 정상이 된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듯, 見性 體驗도 처음 잠깐의 환희심은 있겠지만 그 환희심도 因緣 따라 왔다가 

因緣 따라 가는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夢幻泡影 같은 하나의 境界일 뿐, 도리어 見性 그  以後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평범하고 당연하게 아무 문제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삶

이다. 심우도의 반본환원(返本還源)처럼, 그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왔을 뿐이다.


깨달음을 깨닫기 이전과 깨닫기 이후의 서로 다른 특별한 경계로 여긴다면, 그런 깨달음은 깨달음 

이전과 깨달음 이후를 둘로 나누어 보는 分別心 分別意識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佛法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따로 따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닌 不二法이다. 佛法에는 다만 病이 있는 사람을 위한 

치료약, 즉 응병여약(應病與藥)하는 方便의 가르침만이 있을 뿐이다. 病이 사라지면 저절로 病 없는 

건강한 몸과 마음이 드러나 이 現實, 이 世上, 이 삶에서 그저 평범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평상심이 곧 도 (平常心是道)라는 의미의 말이다.


법보신문, 2016년 07월 20일 자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