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 너· 세상 하나 될 때 행복은 더 가까워 진다 】 / 서광 스님
인생을 살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좋은 쪽으로 일어나면
그래도 기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마음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심리적인 무게를 짊어지기
도 합니다. 예상치 못하게 생긴 좋은 일이 인생의 행복이 되는 것만은 아니듯이 예상치 못한 나쁜 일
이 때론 인생의 터닝포인트(turning-point)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예상치 못한 일
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오늘은 바로 이러한 질문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요즘 ‘힐링(healing)’이 유행입니다. 불교에도 힐링 바람이 불면서 공부 방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불교에서 가장 큰 變化라면 첫째는 공부와 수행의 중심이 출가자에서 재가자로 이동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불교공부, 마음공부라고 하면 내 마음, 내 內面만 열심히 들여다보면
된다고 여기던 생각에서 이제는 나에게만 집중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미약하긴 하지만 젊은 불교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중에서 오늘 中點的으로 살펴볼 대목은 바로 두 번째 變化, 나 자신에게만 의식의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불교공부는 내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살피는 것, 즉 내 내면을 살피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됐습니다. 13세기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유명
한 禪師였던 도겐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自己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自己를 공부하는 것은 自己를 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물론 ‘金剛經’에 나오는 我相을 잊는 말과 일
맥상통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 我相을 잊어버리는 공부는 우주만물과 친해지는 것이다”라고 덧붙이
십니다. 바로 이 말씀이 오늘날의 힐링 열풍과 맞닿아 있습니다.
西洋에서의 精神治療 방법이 불교를 만나면서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變化를 소위 알아차림 수행,
혹은 마인드풀니스(mindfullness)라고 말 하는데 최근에는 그것이 오히려 대한민국과, 우리 불교계에
역수입이 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불교의 전통적인 공부 방식이 나에 대한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알아차림 수행이나 마인드풀니스 같은 것은 서양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옛 禪師들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첫째 내 마음, 내면을 잘 살피고, 둘째 나와 너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關係)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은 나를 잊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를 내세우면 對話나 疎
通이 안 됩니다. 부부 관계나 부모자녀 관계에서도 나를 내세웠을 때는 대화나 소통이 되질 않습니다.
나에 대한 생각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너의 생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나와 너뿐 아니라 나와 너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 주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만 혼자서
깨끗하고 우리 집만 깨끗하면 이 세상이 깨끗한 것입니까. 아니죠. 이 사회, 이 지구, 이 세상 전체가 깨
끗해야 진짜 깨끗한 것이 겠지죠.
여기까지 생각하게 되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달으신 緣起의 眞正한 意味를 깨칠 수 있게 됩니다.
나만, 내 마음만, 내 견해만, 내 지식, 내 알음알이만 생각하고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나에 대한 공부만
으로는 부족합니다. 내가 아닌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경험하는지에 대해 서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우리가 진짜로 幸福하기 위해선 나와 너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하며 공부할 때 인간들의 수행이 진전되고 내 마음이 커지며
깊어지고 人生이, 삶이, 세상이, 현실이 幸福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남의 시선이나 물질로부터도
自由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마음공부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단순히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해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幸福해지기 위해서, 내 마음이 健康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만 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의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내 마음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스스로가 정확이 알아차린다
해도 그것은 오직 내가 그렇게 그렇다고 아는 것일 뿐입니다.
相對는 내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아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나만 알고 있는 것 내 마
음만 진실한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만으로는 치유, 특히 관계에서의 치유는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정폭력, 이혼, 학교폭력 등 여러 社會問題의 根本原因은 대부분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나에 대해서만 집중해서도 안 되고 너에 대해서만 집중해서도 안 됩니다. 나와 너 그리
고 나와 너를 둘러싼 주위 환경 관계, 즉 이 世上이 調和, 균형, 질서를 이룰 때 문제의 해법을 찾고 더불
어 함께 成長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분노나 비난하는 感情의 밑바탕에는 愛情이 깔려있습니다. 기대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그에게 화를 내는 것은 굉장한 강한 에너지이며 굉장한 애정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대로 듣는 상대가 그 사실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잠
깐 멈추고 서로의 분노나 비난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마음수행, 호흡에서 나옵니다. 自覺, 알아차림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空間만들기’라고 합니다. 나와 나 사이에, 나와 너 사이에 空間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툼은 나와 너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나 사이에서도 치열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내 內面에서 내
몸과 내 마음이 一致하지 않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感情
이나 生覺, 記憶에 휘말리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감정에 휘말리고 휩싸임, 특히 화내거나 당황하거나 좌절하는 감정이 否定的인 이유는 그런 감정에
휘말렸을 때 처음엔 본인 스스로를 怨望하지만 나중엔 원망할 상대를 찾아 내 주변이나 가까이 있는
상대를 원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원망하는 마음에 휩싸여 또 다른 고통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경계 하셔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두 번째 화살에 맞지 말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불교공부, 마음공부는 주어진 상황, 조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마음연습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찾는 것과 나를 잊는 것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할까요. 나를 잊는 것은 모든 것, 우주
만물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나를 잊는다고 했을 때의 나는 分別 煩惱 妄想하는 나, 즉 에고의식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 자아의식, 에고의식이 언제나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是非 分別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나, 자아의식, 에고의식이 있기에 불교공부, 마음공부도 하고 수행할 마음도 내고,
보시할 마음도 일으키고, 친절과 자비심도 베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그 나, 에고의식, 자아의식이 있기 때문에 잘난 척도 하고 남을 무시하
기도 하고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하고 파괴도 하는 것입니다. 나를 잊는다고 했을 때의 나는 불건전하게
작용하는 나를 의미합니다.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며 분노하거나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나. 한때의 잘 나가던 나에 執着해 지금의 온전한 관계를 방해하는 나입니다. 나를 잊으
라는 말은 달리 말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어라’라는 말입니다. ‘현재에 머물러라’ '현존하
라'는 말입니다. 지금 여기의 나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입니다.
나를 찾는다는 것은 끝없는 고민, 사유, 추구, 알아가는 것에 대한 根本 에너지입니다. 나를 찾는 것,
그것은 오로지 人間의 마음에서만 可能한 일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육도에 있어
서도 지옥 중생이나 천상의 중생에게는 나를 찾는 인간의 마음과 같은 그런 특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 ‘나는 누구인가’의 포커스가 '나'라는 명사에 찍히면 안 됩니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사유, 그 의미와 진실성에 대한 추구입니다. 불교공부, 마음공부를 할 때 注意해
야 할 점은 죽은 槪念이나 觀念 즉, 명사가 아닌 동사, 行爲입니다.
끊임없이 실천하고 추구하는 행위가 되어야지 개념에 방점이 찍히면 죽은 관념으로 흐릅니다.
실천과는 무관한 思考 活動만을 합니다. 그러니 쉼 없이, 멈춤없이 나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 서광 스님 법문 / 불교신문에서
*서광스님은 미국에서 종교심리학석사와 자아초월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보스톤 서운사
주지이며, 한국불교심리치료연구원장, 한국불교심리학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불교심리학과 불교
상담, 자아초월심리치료 관련 외래강사, 워크샵, 집단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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