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흥남철수 빅토리 호 선원, 문재인 대통령 만난다

장백산-1 2017. 6. 14. 03:06

흥남철수 빅토리 호 선원, 문재인 대통령 만난다

[중앙일보] 입력 2017.06.13 08:04   수정 2017.06.13 14:29



1950년 12월 흥남부두. 등 뒤에서 총탄이 날아오는 급박한 상황에서 북한 피란민들은 아슬아슬하게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올라탔다.  

 

1950년 12월 맥아더 지시로
1만4000여명 싣고 거제행

"내가 구한 피란민의 아들 
한국 대통령 되다니 감격

굳건한 한·미동맹 계승 기대
죽기 전 한국 통일 봤으면…"

레너드 라루 선장이 1만4000여 명의 피란민을 빼곡히 싣고 거제도로 ‘생명의 항해’를 시작했다. 당시 빅토리 호는 7600t 급 화물선이었다. 거제도에 도착하기까지 사흘 동안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5명의 아이까지 태어났다. 기적적인 생명구출 작전이었다. 빅토리 호는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해낸 기록으로 2004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로버트 러니가 흥남철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정규 JTBC뉴욕 기자

로버트 러니가 흥남철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정규 JTBC뉴욕 기자

“흥남철수의 진정한 영웅은 자유를 찾아 배에 올라탄 피란민들이었습니다.”
 
2001년 세상을 떠난 라루 선장 밑에서 빅토리호의 상급선원으로 생명구출에 일조한 로버트 러니(90ㆍ은퇴 변호사)를 12일(현지시간) 뉴욕주 브롱스빌 자택에서 만났다. 당시 모습을 떠올리며 간혹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질의 :당시 빅토리 호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가 타고 있었다.
응답 :“우리는 피란민을 태우기 위해 군수 물자를 포기했다. 피란민들 가운데는 어린 아이와 노인, 임산부들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일가족이 흩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구출해낸 피란민 중에 한국의 새 대통령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감격스러웠다. 문 대통령의 부모가 빅토리 호에 타지못했다면 문 대통령은 현재 위치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문 대통령은 가족이 거제도에 도착하고 3년뒤인 1953년 1월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에서 태어났다.)
 

흥남부두에서 1만4000여명의 피란민을 태워 거제도로 간 메러디스 빅토리 호. [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흥남부두에서 1만4000여명의 피란민을 태워 거제도로 간 메러디스 빅토리 호. [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질의 :당시 흥남부두 상황이 어땠나.
응답 :“인천 상륙작전 당시 미군 제7사단을 태우고 6.25에 참전했다. 그해 12월15일 전투기 연료를 싣고 부산에 도착했다. 선박에 아직 하역하지 못한 300t 가량의 연료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흥남철수 작전지원 명령이 떨어졌다. 연료를 내릴 시간도 없이 빅토리 호는 흥남으로 떠났고 22일 도착했다. 부두 전체는 10만여 명의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였다. 퇴로는 해상밖에 없었고, 피란민 3만∼4만 여명이 부두에 몰려있었다. 미군 제3사단장으로부터 피란민을 태우고 퇴각할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라루 선장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때부터 피란민을 태우기 시작했다. 피난민들이 빅토리 호에 탑승하는 16시간 동안 불과 5㎞ 앞까지 뒤쫓아온 중공군은 극한의 공포였다. 23일 흥남부두를 떠난 빅토리 호는 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이미 피란민들로 가득 찬 부산항에 입항하지 못하고 거제도로 배를 돌렸다. 성탄절인 25일 거제도에 도착한 빅토리 호에서 피란민들이 차례로 내렸다. 그들은 육지에 내리면서 빅토리 호를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흥남철수 당시 로버트 러니 [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흥남철수 당시 로버트 러니 [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질의 :한국에서 제작ㆍ상영된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몇몇 한국인의 영웅적 노력이 부각됐고, 미군은 피난민 구조를 꺼리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응답 :“흥남철수작전은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이미 12월8일 ‘피난민을 구출하라’는 요지의 맥아더 총사령관의 명령문이 내려온 상태였다.”

 
 

질의 :문 대통령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인터뷰 직후 러니는 문 대통령이 이달말 정상회담차 방미하는 기간에 자신을 워싱턴DC로 초청해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응답 :“먼저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전쟁을 끝내고 떠난 초토화된 한국을 한국인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일으켰는지에 대해 내가 느끼는 경애심을 전달하고 싶다. 그가 평화를 추구하는 훌륭한 리더가 될 것으로 믿으며, 미국과 가까운 동맹을 이어나갈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미주 한인들이 미국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그들의 자녀가 얼마나 우수한 인재로 성장하고 있는지, 그들이 미국의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새 대통령에게 말해주고 싶다. 끝으로 내가 살아 있을 때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을 보고싶다.”
로버트 러니가 흥남철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정규 JTBC뉴욕 기자

로버트 러니가 흥남철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정규 JTBC뉴욕 기자

흥남철수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러니는 1953년 코넬대 법대에 진학해 55년부터 50여 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8년 은퇴했다. 이후에는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이사장과 빅토리 호의 감동적 스토리를 전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