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중생이 곧 부처다

장백산-1 2017. 11. 29. 11:58

중생이 곧 부처다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를 믿는 최종 목적은 성불(成佛)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성불이란 세상의 이치

를 깨닫는 것을 말하고, 깨닫는다함은 부처가 되는 것이므로 성불(成佛)이라고 말하며, 또 부처가 

되는 것(成佛)은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인 분별 망상 번뇌에서 벗어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는 것이므로 生과 死라는 허망한 망상(妄想)에서 벗어나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깨닫게 되는 것(覺)이고, 부처가 되는 것(成佛)이며, 생과 사라는 헛된 망상(妄想) 

에서 벗어나 고통과 괴로움에서 자유로와져서 중생을 제도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실천은 고사하고 

이해자체가 어렵다. 


사람들이 태어날 때나 죽을 때에 열반은 어디에 있었고, 열반을 하게 되면 생과 사라는 헛된 망상(妄想)

은 어디로 갔느냐 하는 의문이 있는데, 신라시대 의상스님께서는 생사와 열반은 항상 함께 있다고 말씀

하셨다(生死涅槃常共和생사열반상공화). 


큰스님께  “열반은 어디에 있습니까?”물으니 “네 몸에 있느니라.”하셨다. 


열반도 몸에 있고 생사도 몸에 있다고 하신 말씀이다. 사람들은 생사가 몸에 있다는 말은 이해할듯한데,

열반이 몸에 있다는 말은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것이다. 이것은 지혜로 하신 말씀인데 그 말씀을 분별하

는 생각 분별하는 마음(분별심)으로 이해하려 하니 이해가 힘든 것인데, 경전을 보면 몸도 열반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진다. 


인간의 몸은 실생(實生)이 아니라 연생(緣生)이다. 실생(實生) 즉, 진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연생(緣生)

즉, 법계(法界, 진리의 세계인 이 세상)의 인연(因緣)에 의해서 생겨났다는 말이다. 육신은 지수화풍(地水

火風)의 네가지 기운과 수상행식(受想行識 ;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해서 아는 인식)의 에너지와 선악업보의 인연이 모여서 생겨난 가합물(假合物)이고, 법계의 인연이

없으면 아예 생겨나지도 않는다. 


사실이 이러하므로 연생(緣生)은 그대로 생겨난 적이 없는 무생(無生)이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닫고 

보니까 일체 중생이 무생(無生)이라는 사실을 아셨다. 법계의 인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므로 실제로 

생겨난 것, 실생(實生)이 아니다. 그래서 법계의 인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은 생겨난 적이 없는 무생(無生)

이고, 법계의 인연이 다해서 사라져버리는 것은 사라짐이 없는 무멸(無滅)이다. 이것을 일러 불생불멸

(不生不滅)이라 한다. 이 몸이 그대로 생사이고, 또 이 몸이 생겨났어도 생겨난 것이 아니니 그것이 열반

이며 이 몸이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므로 그대로 열반이다. 그래서 생사열반이 상공화라 말씀한 것이다. 


자비(慈悲)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사람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이다. 

원력(願力)은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을 오늘 하루만 하고, 내일까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리심이고 이런 보리심을 일으키는 발심인데, 그 발심이 바로 성불이다. 


허망한 꿈, 허깨비, 신기루,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이 세상 모든 것에 욕심 안내는 것이 성불

이고,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일이 성불이고, 하다 말다 하지 말고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이 성불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일러 발심성불(發心成佛)이라 한다. 


믿는 마음이 있으면 저절로 발심을 하게되고 발심하면 저절로 성불하게 되는 것이다. 

믿는 마음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이다. 믿는 마음이 성불하는 것이고,

믿는 마음이 공덕을 짓고, 믿는 마음이 두려움을 다 이기는 것이다. 

이것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발심성불(發心成佛)이다. 


믿음은 법계의 인과(因果), 즉 인연과보(因緣果報)의 법칙을 믿는 것인데, 화엄경 여래출현품에서는

‘여래의 공덕과 지혜가 중생속에 그대로 다 있다’하여,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라 한다. 


중생 모두 하나 하나에 여래의 지혜와 덕상 모든 것이 그대로 다 있다는 말이다. 중생이 바로 부처다

라는 가르침을 확실히 믿는 것이 신심이다. 중생에는 중생심(분별하는 분별심)도 불심(佛心, 깨달은 

지혜의 마음)도 함께 있다는 말이다. 중생심(분별심)은 어리석음에 빠져 탐욕심을 일으키는 것이고, 

불심은 지혜심, 자비심, 원력심, 보리심인데, 이 모두가 다 모든 중생에게 있다는 말이다. 


중생이라고 해서 부처에 비해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 것이 심만(心滿)

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생이라는 것을 믿지만 부처님과 같다는 것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생이 곧 부처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중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 부처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니까 발심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신심이 곧 발심이고 발심이 곧 성불

인 것이다. 자심(自心)에는 중생심이 있어 탐심과 진심, 치심이 있지만, 지혜심, 보리심, 원력심이 함께

다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석가모니부처님보다 못할 것이 없는 중생인데, 사람들 스스로 어둠을 

만들고, 고통을 만들어 그 안에 갇혀서 그런 것이다. 아무리 해가 밝아도 햇빛을 가리면 세상이 어둡다. 

햇빛을 가리지만 않으면 세상은 밝은 것이다. 그와 같이 탐심 진심 치심이라는 것도 스스로 일으켜서 

생긴 것이므로 그것을 끊을 것도 없고 그것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지혜심,

자비심, 원력심을 일으키면 성불(成佛)인 것이다. 


화엄신앙은 생사를 초월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사에 자재(自在)하는 것이다. 생겨나면 생겨나는 대로 

죽어 몸이 사라지면 몸이 사라지는 대로 보살행을 하는 것이지 생사를 초월해서 따로 보살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늙었으면 늙은대로, 젊었으면 젋은대로 보살행을 하면 되는 것이다. 


열반경에 석가모니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순타에게 이르시기를 “수수인신(雖受人身)이나 심여불심

(心如佛心)이라”하시며 칭찬하셨다. 즉, 비록 사람의 몸을 받았지만 마음은 불심과 같다는 말이다. 

사람의 몸을 석가모니부처님과 같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불심(佛心)과 같게 하는 것이 

발심이다. 


조그만 자비의 마음이라도 실천하면 그것이 바로 성불(成佛), 깨달음, 해탈이다. 시시각각 실천하면 

성불, 깨달음, 해탈이다. 보살행 실천하는 것이 바로 성불(成佛)임을 철저히 믿어야 한다는 말이다.


-종범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