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 哲學, 동양철학

소립자와 의식과의 관계

장백산-1 2018. 11. 17. 09:07

소립자와 의식과의 관계


열역학 제 2 법칙, 즉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닫힌 계>의 질서를 흐트러지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열린 계>에

있어서는 질서의 창출효과를 발휘한다. 이 때 그 “계”는 외부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즉 외부의 질서를 흐트러지게 함으

로서 자신의 질서를 구축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계의 구조적 특성을 <소산(또는 산일)구조 dissipative structure>라고

표현한다. 열역학 제2법칙은 “비가역성”이 그 근원이다. “비가역성”은 “무작위성”을 낳고, “무작위성”은 “불안정성”을

초래하며, 이 “불안정성”이 “자기조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비가역성”은 (계의)단위입자들의 동역학적 고찰

로서는 유도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비가역성”은 물리학의 기본 단위인 소립자와 또한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운동의

법칙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성질인 것이다. 그래서 “비가역성”은 -- 그리고 열역학 제 2 법칙은 제 1 차적(기본적)

법칙이 아니라 제 2 차적 법칙이다. “비가역성”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시간 비대칭성”이다. 물리학의 모든 기초법칙들과

상호작용은 기본적으로 “시간 대칭적”이다. “시간”이란 것은 인간이 인과율에 의해서 인식할 수 있는 “개념” 또는 “현상”이지

소립자(素笠子)나 시공간의 기본적 성질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간은 공간처럼 길게 펼쳐져 있는 사건들의 무대이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고 있는 현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추론이 나온다. 즉 미래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미래

의 정보를 얻을 수 없으므로 ’미래‘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자연 현상은 시간에 대해서 대칭적이다. 이 사실의 의미는 시간이 지금처럼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든, 그 역으로 현재에

서 과거로 흐르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물리 이론적으로 그러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는 <시간

대칭성>이라 한다. 이처럼 시간의 근거는 자연 현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한다‘라는

현상으로부터 우리는 모든 사물의 변화의 배경에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모든 현상에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

켜 드린다) <시간>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방향성‘이 있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을 소위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시간 비대칭”은 어디에서 유래되는 것일까? “시간 비대칭”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바로 <의지意志>다. <의지>란 <인과율>에 있어서 원하는 바대로의 <결과>를 창조하기 위해서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조정하려는 `꼴림'이다.

 

소립자의 식(識)이 작용, 개입한 확률적인 인과율은 비가역성을 창출하여 “원인의 후에 오는 결과”로서 우주에 시간

의 눈금을 새겨 나가는 것이다(열역학적 시간의 화살). “비가역성”은 프리고진과 과학자들이 고심할 필요가 없이

이미 물질의 식(識)과 기(氣) 속에 새겨 넣어져 있는 것이다.


사실 열역학 제2법칙은 이상한 법칙이다. 이것은 <비가역성>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법칙이 왜 성립하는가를 뒷받침 해주는

뚜렷한 이론적 근거는 없다. 천재 푸앙카레가 이미 `확률에는 시간의 방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이, 모든 물질과 상호작용의 기본인 소립자에서 비가역성을 찾지 못한다면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결국 소립자

의 식과 기를 인정하지 않으면 카오스 이론도, 열역학 제2법칙도 그 뿌리를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내가 파동함수 상태의 소립자가 ‘자유’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파동함수 상태의, 즉 ‘미결정’ 상태의 소립

자는 확률분포에 따라 다양한 위치에 나타날 수 있다. 즉 다양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파동함수 수축 이후에는 물

론 결정된 상태이다. 이것은 마치 처녀가 여러 배우자 후보들을 가지고 있다가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그 이전의

선택권이 모두 일시에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다시 그 이전의 ‘자유로운 선택권’의 상태로 돌아 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가역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감소>하는 것을, 그리고 그 법칙을 확장한 이론인 프리고진의 <산일구조 이론>과 카오스 이론은 <창발>,

즉 <덧 생겨난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 <감소>와 <창발>의 합은 여전히 제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 엔트로피의

증가량 = 창출된 의식(정보의 총합) >인 것이다. 이것으로서 우리는`전체>부분의 합`이라는 환원주의와 전체주의 이론의 모

순적인 부등식을 <전체 = 부분의 합>이라는 합리적인 등식으로 대체할 수 있으며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보존의 법칙과 모

순 없이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의식의 형성과 작용에 대한 나의 가설(假說)을 정리해 보자. 소립자가 모여서 생명체를 만들 때, 소립자의 식(識)은 그

명체의 의식(意識)을 만들고, 소립자의 기(氣)는 생명현상을 만든다. 그 과정은 프리고진이 밝혔던 바, 복잡 계의 자기조직화 효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열역학 제 2 법칙에 의해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엔트로피의 증가는 정보의 감소를 나타내며, 이때 감소되는(것처럼 물리적으로 관찰되는) 정보는 소립자의 식이 다른 식과 가지는 <관계>, 즉 <정보>이다. 이것이 보존법칙에 의해서 물질과는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의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명과 의식은 상호보완적으로 <생명체>를 구성하고 유지한다. 생명현상은 죽음 즉 소립자가 다시 흩어질

때 사라지지만 의식은 보존법칙에 의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질 측면에서는 `from particle to particle'로 원 위치한 것이므로

생명현상은 사라져야 하지만, 의식은 이미 소산된 엔트로피가 보존되어야 하므로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출처: 기와 과학

가져온 곳 : 
카페 >미래마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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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마음나무|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