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하면서도 행한 흔적이 없다
< 질문 >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당하면 먼저 욱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다
내가 환상을 만들어서 그 환상을 내가 보는 것이라는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고 삽니다.
< 답변 > 이제 더 이상 진실을 몰라서 어쩐다는 말은 못 할 거요. 여러분은 이미 넘칠 만큼 듣고
읽고 했소. 그렇게 훤히 알면서도 아직까지 살아온 그대로 계속 같은 자리에서 엉덩이도 들 생각을
안 한다는 건 여러분이 엄청 게으르다는 증거요. 아니면 일도양단 할 수 있는 기개(氣槪)가 없던가.
이제 알만큼은 다 알고 있지 않소?
어떤 일의 잘 잘못간에 미세한 사고의 흐름을 그냥 적조(寂照)할 수 있겠는가? 그게 관건이요.
흐르는 생각 중에 ‘나’라는 중심, 즉 아상(我相 : 나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 착각)이 없다면 이 세상엔
아무 문제도 있을 수가 없소. 이롭건 해롭건 간에 모든 걸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면 그게
곧 구경각(究竟覺 : 궁극의 깨달음)이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건 반복
되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얻어지는 게 아니오.
물질적 현상이건 심리적 현상이건 만법(萬法 : 이 세상 모든 것)의 실상(實相 : 실제의 모습)은 몽땅
텅~비어서 오로지 텅~빈 바탕자리,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뿐이라는 사실을 밑바닥까지 깊이
사무치면 저절로 갖추어지는 안목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구경각(究竟覺)이오.
여러분의 본래 마음이라고 말하는 텅~빈 바탕자리,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는 힘들건 수월하건,
즐겁건 슬프건, 착하건 악하건, 크던 작던, 좋던 싫던, 이쁘건 밉건, 잘살건 가난하건, 죽었건 살았건
모든 걸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비춰줄 뿐이오. ‘그렇기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등의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는 건 여러분의 의식(意識)이 하는 짓이오. 그 의식을 텅~빈
바탕자리, 본래 마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현전으로 잘못 알아서 의식을 좇지 말라는 말이오.
가령 여기 앞에 놓인 컵을 컵이라고 인식(認識)해서 아는 게 의식(意識), 즉 분별심(分別心)이오.
그런데 이것을 컵이라고 인식하려면 자기가 기존에 알고 있는 과거의 기억 중의 하나와 지금 보고
있는 이것과 맞아떨어질 때 컵이라고 분별해서 알아보는 거요. 여러분 머릿속에 이미 입력되어 있는
기억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럼 이걸 보고 뭐라고 말을 하겠소? 그저 볼 뿐인 거요. 그냥 비출 뿐이오.
그렇다고 해서 컵도 못 알아보는, 컵을 컵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라는 소리가 아니오.
사람들이 맞다 틀리다 시비를 하고, 나다 너다 분별을 하고, 부자다 가난하다 비교를 하고, 크다 작다
판단을 하고, 종합적으로 해석을 하고, 궁극적으로는 있다 없다 하는 인식(認識)까지도 전부가 다
자기중심적으로 얽힌 의식(意識)이 일으키는 파문이라는 사실, 그 사실을 놓치지 말라는 소리요.
이런 사실 그걸 아는 사람은 하루 종일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껴보고, 온갖 가지
생각을 해보면서도 그런걸 했다는 아무런 흔적도 자취도 없소.
- 현정선원 대우거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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