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本性)은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
현대불교신문, 김주일 기자 [전문]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 하안거 결제 법어
일체법은 생겨나지도 않고(일체법불생 一切法不生)
일체법은 소멸하지도 않나니(일체법불멸 一切法不滅)
만일 스스로 이같은 이치를 알면(약능여시해 若能如是解)
모든 부처님이 항상 눈앞에 나타나있으리라(諸佛常現前).
이 귀절은 <화엄경>에 나오는 말씀으로, 진정한 나, 본래의 나, 참나, 즉 본성(本性)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중에서 가장 큰 변수 중 하나가 탄생(生)과 죽음(死)에 대한 두려움일 것
입니다.
불교에서는 삶(生)과 죽음(死)을 둘이 아닌 하나로 보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경지를 말하며, 우주 만법이 불생불
멸(不生不滅)이고, 상주불멸(常住不滅)한다, 즉 <법화경>에도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법(法)이 어디에 따로 있
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세상 모습 이대로 항상 있는 것이다(시법주법위 세간상상주 是法住法位 世間相常
住)’라고 한 것처럼 이 우주(宇宙)는, 우주 마넙, 이 세상 모든 것은 항상 머물러 있는 법(진리)의 세계(상주법계常
住法界)라고 합니다.
이 사실은 자연계의 구성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원칙으로 되어 있다고 현대원자물리학계에서도 이미 규명한 이
론입니다. 즉, E=Mass(에너지=질량)으로 자연계는 에너지(무형의 움직이는 힘)와 질량(유형의 물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결국 형태는 변해도 질량은 없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존재 전부가
다 있는 그대로 불생불멸(不生不滅) 상주불멸(常住不滅) 하는 진여(眞如)의 작용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자연법이(自然法爾)에도 불구하고, 미혹한 중생들의 문제는 <수심결>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요즘 사람들(今
之人)은 미혹하게 지나온 세월이 오래 되어(迷來久矣) 자기의 마음이 참 부처인 줄을 모른다(不識自心是眞佛), 자
신의 밝은 성품이 참다운 진리인 줄을 모른다(不識自性是眞法).’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알음알이(見聞覺知)가
아닌 근본성품을 바로 들어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한 눈 밝은 공부인이 드물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심결>에는 또 다른 경책의 말씀으로 ’다만 모르는 줄 알면 그것이 바로 견성(見性)이다.’라는 구절이 있
는데, 이는 수행인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지적한 내용입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알 것 같다거나, 아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이 알음알이의 문제를 바르게 뚫어내지 못하면 도(道)와는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혜충국사도 ‘실로 불법(佛法)은 알음알이를 떠나 있는데, 소위 선(禪)을 닦아 견성성불(見性成佛 : 본성을 봐서 부처
가 된다) 하겠다는 사람들마저 자기 본 바탕자리(본성, 텅~빈 바탕자리)가 본래 청정하게 구족해 있음을 등지고,
알음알이의 경계에 끄달려 있는가?’고 질책을 하였는데, 그나마 공부인들에게 올바른 길을 붙잡아 줄 수 있어 다행
이라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참된 공부인은 육신(肉身)의 생사(生死, 나고 죽음)는 존재하지만, 본성(本性)은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
도 않는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우쳐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면 생사를 초월해 존재하는 진아(眞我)인 본래성품(본성)
은 현현히 빛날 것입니다.
만법개공 명불성(萬法皆空 明佛性 : 만법이 모두 공하다 함은 불성을 밝힌 것이요)
일진불염 증선심(一塵不染 證禪心 : 한 티끌도 오염되지 않는다 함은 선심을 드러냄이라)
신재상방 제품정(身在上方 諸品靜 : 몸을 상방에 두니 모든 사물 고요해지고)
심지반게 만연공(心持半偈 萬緣空 : 마음에 반구절 게송만으로도 모든 인연 쉬어지네.)
2014년 하안거 결제일 한국불교 태고종 종정 혜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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