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秘密)은 없다 / 릴라님
뭔가를 숨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뭔가는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 언젠가 탄로 난다는 뜻으로
'비밀(秘密)은 없다'는 이 말을 사용한다. 어떤 비밀이든 당장은 숨길 수 있지만 비밀은 언젠가는 밝혀
진다는 뜻이다. '비밀(秘密)은 없다'는 이 말은 도(道)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쓸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비(神秘)하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해탈의 경지를 추구한다. 너무나 비밀스러워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고 보여줄 수 없지만 그런 경지의 세계가 다른 곳에 따로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과 기대로 신비(神秘)하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해탈의 경지의 세계를 추구해서 알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신비(神秘)하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해탈의 경지의 세계 그런 세계는 없다. 그런
비밀(秘密)의 세계는 결코 없다. 이 비밀(秘密)은 누군가가 사람들의 의식이나 노력이 미치지 않는 어떤
곳에 감춰둔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비(神秘)하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해탈의 경지의 세계는 본래 이미 다 드러나 밝혀져 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자리, 눈앞, 목전(目前), 텅~빈 바탕자리에 이미 다 드러나 있다. 이미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내가 무슨 경험을 하든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이미 지금 여기에 털끗만큼도 숨김없이 노출되어
있다. 신비(神秘)하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해탈의 경지의 세계는숨어있는 세상이 아니다.
진리(眞理)라는 방편(方便)의 말이 가리키는 영원히 변함이 없는 '이것'이 특정한 장소나 특별한 노력을
하거나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특별히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이 될 수 없다.
전 생애를 걸쳐 매 순간순간의 삶에 이미 완전하게 드러나 있어야 진정으로 변함없는 진리(眞理)라는
방편(方便)의 말이 가리키는 영원히 변함이 없는 '이것'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같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부족함이 없이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감촉
을 느끼고 생각을 일키고 경험하면서도 왜 우리는 눈 뜬 장님처럼 '이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자기만의 도(道), 진리(眞理), 깨달음, 마음(心), 부처(佛)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도(道), 진리(眞理), 깨달음, 마음(心), 부처(佛)가 아니라 자기가 상상하고 투사한 도(道), 진리(眞理),
깨달음, 마음(心), 부처(佛)를 찾고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도(道), 진리(眞理), 깨달음, 마음
(心), 부처(佛)라는 방편(方便)의 말이 가리키는'이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자기
가 꿈꾸는 방편의 도(道), 진리(眞理), 깨달음, 마음(心), 부처(佛)를 찾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이나 이미지로 그린 도(道), 진리(眞理), 깨달음, 마음(心), 부처(佛)를 추구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이나 이미지로 그린 그런 도(道), 진리(眞理), 깨달음, 마음(心), 부처(佛)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노력이나 능력이 부족해서 도(道), 진리(眞理), 깨달음, 마음(心), 부처(佛)라는 방편(方便)의 말이
가리키는'이것'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 생각 속에 그림 그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영원히 변함없는 것이라면 내가 어떤 노력을 하든 하지 않든 이미 영원히 변함이 없는 그것이어야 한다.
영원히 변함이 없는 그것이라면 그것은 내가 찾을 때나 찾지 않을 때나 이미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한다.
내가 무언가를 보려고 노력할 때나 노력하지 않을 때나 '이것'은 이미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구이든 어떤 처지에 놓여있든 '이것'은 이미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한다.
나의 상태나, 내가 처한 곳의 상황이나, 주변의 반응이나 세상의 흐름에 상관없어야 도(道), 진리(眞理),
깨달음, 마음(心), 부처(佛)라는 방편(方便)의 말이 가리키는 진정 영원히 변함이 없는 '이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찾을 필요도 없고 찾을 이유도 없다.
나의 상태나 노력, '이것'의 깊이나 모양을 알려는 마음이 없어도 본래부터 자연스럽게 저절로 열려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을 하든 하지 않든 변함이 없는 '이것'은 무엇인가? 내가 노력한 바가 없는데도
저절로 드러나서 작동을 하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극성을 부려도 봄은 이미 눈앞, 지금 여기에 와 있다. 매화는 서글프게
화사하고, 봄볕은 따스하다. 내가 보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지금 여기, 눈앞에 세상이 저절로 드러난다.
내가 들으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온갖 소리가 저절로 일어난다. 생겨나고 일어나는 것은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저절로 일어나고 머물다 변해서 사라져버린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도 저절
로이다.
멀리서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실제로 다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아무것도 머물러 있지 않다.
언제나 이랬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이 경험을 늘 하고 있었다. 다만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이 세상
여기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경험이 이렇게 저절로 펼쳐지고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 현상은
나도 마찬가지이고 남도 누구나도 마찬가지이고 이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 지금 이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삶의 의미니 삶의 보람이니 찾을 이유도 없다. 이 세상이 인생이
삶이 허무하다고 투정부릴 일도 없다. 진정 아무것도 머물지 않는 자리, 본래 아무것도 없는 자리, 본래
무일물(本來無一物)의 자리, 텅~빈 바탕자리에 나의 모든 것을 내맡겼다면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인생
의 허무함에 투정부리는 나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사방팔방 위 아래를 둘러보아도 생겨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머물러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어느 것
하나도 실체라고 할만한 게 없다. 전체(全切)가 깨어서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것
들을 삼키고 토해내고 있을 뿐이다. 전체(全切)가 깨어있음만이 변함이 없다. 이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
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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