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불기자심(不欺自心) 독처무자기(獨處毋自欺)

장백산-1 2020. 5. 28. 10:10

불기자심(不欺自心)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불기자심, 不欺自心)'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하던 한 청년이 해인사 백련암으로 성철 스님(1912~1993)을 찾아갔다.

“스님, 좌우명을 하나 주십시오.” 삼천배로 녹초가 된 청년에게 성철 스님이 말했다. 
“쏙이지 말그래이.” 굉장한 말씀을 기대했던 청년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툭 던지는 
“쏙이지 말그래이.” 하는 말에 실망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와? “쏙이지 말그래이.” 라는 좌우명이 그래 무겁나. 무겁거든 내려놓고 가거라.” 

청년은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성철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꼬박 20년을 곁에서 모셨던 
원택스님 이야기다. 

‘불기자심(不欺自心)’ 즉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는 좌우명은 본래 성철 스님 자신의 화두였다. 
가끔 휘호로도 썼다고 한다. 합천 해인사 백련암에는 성철 스님이 쓴 이 휘호가 액자로 걸려있다. 

세상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마음’을 속일 수는 없는 법. ‘산은 산, 물은 물’과 함께 성철 스님의 
불기자심(不欺自心)은 서릿발 같은 자기 성찰과 용맹한 실천을 강조하는 죽비소리로 세상에 남았다. 

조선 명종 때 문신이었던 임권의 좌우명이 독처무자기(獨處毋自欺) 였다. ‘혼자 있는 곳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마라’ 라는 뜻이다. 유교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에서는 이를 신독(愼獨)
이라고 했다. 이 신독(愼獨) 역시 홀로(獨) 있을 때 몸과 마음을 삼가야(愼) 한다는 뜻이다.

조선 선조 때 유학자인 김집은 호가 신독재(愼獨齋)였다. 그의 묘비에는 ‘혼자 걸을 때 그림자에 
부끄러울 것이 없고, 혼자 잘 때 이불에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참으로 무서운 
다짐이고 당당한 자기 확신이다.

성경의 갈라디아書에도 불기자심(不欺自心)과 비슷한 내용이 있다. 자신을 속이지 마라. 
하느님은 조롱을 받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불기자심(不欺自心),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 

용기(勇氣)의 본질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노릇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을 명료하게 관찰한다는 것, 알아차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처음에는 불편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깨어있는 마음과 항심(恒心)을 닦다보면 비판하는 마음이나 옹졸한 마음 또는 거만한 
마음처럼 내가 부정하던 내 마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