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사는 것도 꿈이고, 죽는 것도 또한 꿈이다.

장백산-1 2021. 1. 17. 01:23

사는 것도 꿈이고, 죽는 것도 또한 꿈이다.

 

꿈과 현실세상 둘 다 마음의 세계    /  청담스님


사람들이 꿈을 꿀 때 꿈속에서는 그 꿈이 꿈인 줄 전혀 모르듯이, 사람들이 경험하는 현실세상이라는 
것도 그대로 꿈이라고 누구도 생각하기 쉽지 않다. 지금 여기에서 어였하게 살고 있는 생시(生時)가 
그대로 꿈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펄쩍 뛰면서 아니라고 난리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찌하여 생시(生時)가 영원한 꿈인데도 생시(生時)가 꿈인 줄 모르냐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꿈이나  생시(生時)나 너무나도 똑같기 때문이다. 꿈 속에서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서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손자손녀를 보고 산다. 이처럼 사람들이 꿈속 세상에서 겪는 세계나 
생시에 겪는 일들이 너무나도 똑같기 때문에 꿈 속 세상이나 생시에 겪는 세상이나 그 꿈을 깨기 전
까지는 꿈 속 세상이나 생시나 그게 꿈인 줄 모르는 것이다.

꿈속 세상에서도 태양이 있고 지구가 있고 달이 있고, 산소가 수소가 있고, 온 우주가 다 거기 있다.
꿈속 세상에서도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짜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있어 날씨가 차고 더우며, 어린애들 
낳아서 키워보면 어려서부터 점점 자라서 성장해간다. 그러니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꿈인 줄로 알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꿈을 꾸다가 꿈에서 깨어나면 꿈을 꾼 시간은 불과 몇 분도 채 안 된다.

사람의 삶, 인생(人生)이 꿈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 인생(人生)이 그대로 꿈이다. 꿈속에서 한 일, 
그게 실제로 한 게 아니고 모두 가짜로 한 것이다. 성불(成佛)했다는 것도 역시 거짓말이다. 성불(成佛) 
못한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불(成佛)했다는 말이 있는 거지 성불(成佛)해야겠다는 말도 그게 꿈이다.

실상(實相)자리에서 보면 진실로 제대로 되어 있으니 실상(實相)자리에서는 꿈을 꿀 사람도 없다.
사람들이 잠을 자는 시간도 대체로 하룻밤에 7 시간 내지 8 시간이므로 잠을 자는 전체 시간 동안에 
꿈을 꾸었다고 해도 꿈을 꾼 시간은 7~8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꿈속에서는 8시간만 
꿈속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잠을 자는 동안 꿈속 세상을 경험한 시간은 5 일 사는 때도 있고, 한 달을 사는 때도 있고, 1 년을 사는 
때도 있고, 몇 년을 사는 때도 있고, 한 평생을 사는 때도 있다. 그러니까 밤을 새워가며 꿈을 꾸었다고 
치더라도 꿈을 꾼 시간은 7~8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그 7~8 시간이 꿈속 세상에서는 한 평생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루나 반나절 동안의 꿈도 꾸지마는 밤마다 일평생 동안의 꿈을 꿀 수도 있는 것이므로 생시(生時)의 
30분 보다 꿈속에서 사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게 된다.

꿈속 세상이나 생시(生時), 즉 현실세상이 둘 다 똑같은 것은 두 세상이 다 마음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꿈을 꿀 때는 이 몸, 부인, 자식, 재산을 다 그대로 놓아두고 마음만 몸 바깥으로 나아가서 꿈의 세계를 
창조해 놓는다. 꿈을 깰 때도 꿈속에 있었던 몸, 부인, 자식, 재산을 만들어서 꿈에서 깨어난 세상에서도
꿈속 세상과 똑같은 세계를 만든다.

꿈만 꿈이 아니라 꿈 아닌 것도 꿈이다. 허망하고 헛된 생각, 즉 망상(妄想)은 꿈을 만든다. 이것은 곧, 
주관(主觀)은 객관(客觀)을 만든다는 것을 말한다. 주관 밖에 개관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주관이
곧 객관이며 객관이 곧 주관인 것이다. 뜨거운 것 찬 것이 불과 물에 있을 수 없다. 주객이 둘이 아니므로
사람들의 인식(認識) 바깥에 기둥과 기둥이 있을 수 없으며, 기둥과 기둥의 모양 바깥에 인식(認識)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주관(主觀)을 쉬어버린 때에는 객관(客觀)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주관(主觀)을 쉬어버린 청정한 본래의 마음(本來淸淨心)이라는 법(法)에는 기둥도 없고 기둥 
모양도 없다. 그러므로 기둥 하나를 볼 때에는 곧 기둥이 나타나는 이치와 그 기둥을 나타낸 마음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동시에 깨달을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이 온 우주만물을 다루면 된다.

꿈이 아무리 헛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는 꼼짝없이 그 꿈 속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과 같이 마음을 깨치지 못한 중생들은 업습(業習)에서 일어나는 천당 지옥의 
꿈을 벗어날 길이 없다. 꿈속에서 죽고 꿈속에서 태어난다.

중들은 꿈이 없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중노릇을 제대로 하는 수행자는 꿈이 없다.
또 수양이 제대로 되어 있는 사람들도 확실히 꿈이 적다. 수양이 되면 마음이 비어져서 분별 번뇌 망상이 
적어지므로 꿈을 꾸는 적도 적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낮에 꾸는 꿈은 그 시간이 평생 동안 꾸어도 70~80년밖에 안 된다. 그것도 잠자는 시간, 병 
앓는 시간 다 빼고 나면 고작 몇십 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밤에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은 그 시간이
몇 백 년 몇 천 년이 된다. 따라서 생시(生時)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산 것이고, 밤에 잠을 자년서
꾼 꿈은 낮에 생시(生時)에 꾼 꿈의 몇 배, 몇 십 배의 시간을 더 사는 것이 되므로 정말 꿈은 밤 꿈이 
아니라 생시(生時)에 꾸는 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밤에 자면서 꾸는 꿈속에서만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생시에 꾸는 꿈 낮 꿈에도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이라고 하면 낮에 꾸는 꿈 밤에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이 다 꿈이다. 밤이나 낮이나, 금생 
이나 내생이나 전부 다 꿈인데 이 꿈 중에 꿈이 아닌 것은 꿈을 꾸고 우주삼라만상만물을 창조하는
마음뿐이다.

밤에 잠을 자는 동안 꾸는 꿈도 이 마음 이대로 이고, 낮에 생시에 꾸는 꿈도 이 마음 이대로 이다.
그런데 생각은 그 때 그때 환경에 따라서 추우면 춥다, 더우면 덥다. 라고 느낀다. 생각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지만 추우면 추운지 알고, 더우면 더운지 아는 이 마음은 불변(不變)의 나다. 불변(不變)의 
나인 마음은 생(生)과 사(死)의 윤회가 없고 질량(質量)의 변화가 있을 수 없는 불변의 나인 마음은
모든 지식의 주체인데, 이 마음이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조작해내 가지고 큰 것은 크다, 작은 것은 
작다고 분별을 하는 것이다.

육신도 마음이 만든 피조물인데 중생들이 육신을 주인으로, 마음을 육신의 종으로 삼아서 주객을 
뒤엎고 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주관 대 객관으로 벌어져 있는 이 우주와 인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들은 우주와 인생을 다루려고 드는 통에 온 우주의 주인공인 유아독존의 자아가
깜빡하는 순간에 도리어 바다에서 일어나는 물거품같은 한 개의 작은 육체의 인간으로 전락되어 생과
사라는 큰 꿈을 이루어서 윤회와 인과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사는 것도 꿈이고, 죽는 것도 또한 꿈이다.


- 청담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