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화두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 뭣고'라는 이 화두를 들고 정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항상 법문(法門)을 들은 사람들은 얼른 ‘이 뭣고가 뭐긴 뭐야, 마음이지.’ 하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인고?’ 하고 진정한 의심을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쉽다고 하면 쉽지만 그러나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뭣고' '이것이 무었인가'라는 이 화두는 남악회양 선사가 육조혜능 선사한테 갔을 때 육조혜능 선사가 남악회양 선사한테 “이 무슨 물건(物件)이 이렇게 왔는고?”하고 물었는데 남악회양 선사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못해서 8년이나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무슨 물건(物件)이 이렇게 왔는고?”라는 물음에 대해 “몸뚱이가 이렇게 왔지 무엇이 왔겠소?”라고 대답을 했을 테지만, 공부를 좀 하는 사람은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몸뚱이는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몸뚱이는 주인(主人)이 하자는 대로 일어나거라 하면 일어나고, 앉거라 하면 앉고, 가자하면 가고 그렇게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습니까. 명령(命領)하는 주인(主人) 놈이 어떤 놈인지는 모르지만 몸뚱이가 주인(主人)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몽뚱이 한테 명령을 하는 주인 놈 '이 주인 놈 이것이 뭣고', '이것이 무엇인가'?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해온 사람은 마음이 왔지 무엇이 왔느냐고 할 테지만, 마음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 무엇인고 라는 이것은,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습니다. 어떤 형체가 없습니다. 쫓아가면 숨고. 찾으면 못 보고, 한번 생겨나서는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것의 정체를 잡았습니까? 이것이 하는 사업이라면, 마치 무대위의 배우가 춤도 추고,노래도 하고, 울고 웃고 하는 여극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하는 생각도 말도 행동도 이것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손을 모아 향을 사르고 합장도 하고 때로는 바위처럼 부동삼매(不動三昧)에 들기도 합니다. 이름도 제 이름이 아니지만, 누구라도 부르기만 하면 대답하는 이것, 하늘도 땅도 사람도 모두 이것에서 나왔습니다. 이제서야 우주선(宇宙船)을 타고 달나라에 간다고 떠들썩하지만, 허공(虛空)이 생긴 때부터 우주선도 없이 달나라를 하루 몇 번이고 오가는, 그림자 없는 이것의 실물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 안 믿겠지요.
그러나 이것을 여러분이 안 믿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니, 생각으로써 생각이 다한 밑바닥까지 고요히 눈을 뜨고 바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찬란한 샛별이 빛날 때까지 아, 이것이 무엇인고?
딱딱한 땅을 뚫고 올라오는 풀을 보십시오. 이끼 낀 연못에 덤벙 뛰어드는 개구리, 그리고 공중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고, 구름은 하늘에 높이 떠 가고, 땅에는 대숲이 바람과 함께 춤을 추고, 조그만 물길은 돌틈을 더듬어 흘러가고, 앞산 등성이로는 나무하는 아이들의 흥겨운 노랫가락이 들려오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여기서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찾고 있는 것을 만나고 싶거든 고요히 눈을 뜨고 좌도 우도 엿보지 말고 눈앞을 보아야 합니다. 바로 눈앞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이것'을 만나고도 '이것'을 못 보았다면 이것을 보지 못한 이 한(恨)은 천추에도 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분들을 보고도 못 본 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못 본다면 이것은 본래로 알 수 없는 것이니 구태여 이것을 알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이것에 대해 아는 것을 가장 꺼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은 어디서 와서, 어디에 주(住)하고, 어디로 가는가. 오고가는 곳도 없고, 주(住)하는 곳도 없는 이것이라면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고? 분명히 손으로 펜을 잡고 펜에서 잉크가 흘러나오고 거기서 글자가 나타나지만 누가 있어서 글을 쓰는 일을 시키는 것일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내가 금강경을 외우고 있을 때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콧등에 붙더니, 좀 있다가 날아가 다시 천장에 붙었습니다. 파리가 왜 왔다가 왜 날아갔는지 나는 파리를 모르고 파리 또한 나를 모릅니다. 가고 가노라면 모르는 이것이 구경(究竟)인가.
왕벌 한 마리가 언제 방에 들어왔는지 창에 뚫린 구멍을 이리저리 찾고 있다가 창호지에 걸려 밖으로 못 나가고 몇 번을 제자리에서 맴돌고 합니다. 밖으러 나가는 구멍을 찾지 못하는 왕벌의 신세는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에 걸려서 생사윤회(生死輪廻)라는 쳇바퀴를 뛰어넘지 못하는 사람과도 같고, 그물에서 뛰쳐 나온 물고기가 다시 그물에 걸리는 격입니다. 벗어나기를 구하지도 말고, 걸림을 싫어하지도 않으면, 온갖 가지 벗어남과 걸림 그대로가 구경각(究竟覺)입니다.
설봉(雪峰)이 암자에 있을 때 학인 두명이 예배하러 오는 것을 보고, 문고리를 잡고 머리를 문 밖으로 내밀며 “이 무엇인고” 하면서 화살을 쏘았더니, 한 학인이 곧 “이 무엇인고”로 응수하였습니다. 오는 화살을 잡아서 되쏘고 도둑의 말을 타고 도둑을 잡는 자라면 날랜 솜씨라 하겠지만, 이 모두가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생겨나고 죽고 하는 것이 마치 한 조각 뜬구름이 허공(虛空)에 일어났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과 같아서 몸뚱이를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요소(四大要素)가 흩어지면 내 몸뚱이가 없어지거늘 마음인들 어찌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마음도 몸도 모두 환(幻)이라, 어떤 무엇이 있으리오. 그러나 모든 환(幻)이 사라지고, 환(幻)이 사라짐까지도 다 사라져버려도, 본래 생겨나고 사라짐이 없는 허공(虛空)처럼 생겨나고 사라짐이 없는 이것을 무엇이라고 이름하겠습니까.
생겨난 것은 반드시 없어질 때가 있고, 없어진 것은 다시 생겨날 때도 있지만,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이것은 영겁토록 무생(無生)이며 무멸(無滅)입니다. 이같은 한 물건은 생사의 인연을 따르지 않으니 음양(陰陽)을 받지 않는 본래심(本來心)을 여러분들리 찾는다면 절대로 볼 수 없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남악회양 선사는 8년 만에 육조혜능 선사를 다시 찾아와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옳지 않다.” 라고 답을 했으니 그러기에 이것을 물건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그런 물건과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이것을 이것이라고 하면 저것은 또 무엇인가? 이것은 이것도 아니기에 예로부터 성현도 이것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으니, '이 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깨달음의 비결> 해안 스님 선어록 강설 p201 ~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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