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공(空)한 모든 것이 반드시 연기(緣起)하는 것은 아냐”

장백산-1 2021. 2. 11. 18:54

연기(緣起)와 공(空)은 동일(同一)할까?

 

“공(空)한 모든 것이 반드시 연기(緣起)하는 것은 아냐”

 

‘연기(緣起)와 공(空)이 동일(同一)하다’는 주장 성립하려면 그 외연 일치해야

자성(自性) 결여한 공(空)으로부터 만물이 생멸하는 연기(緣起)는 나오지 않아

그러나 우연히도 우리는 ‘연기(緣起)=공(空)’이 참인 세계에서 살고 있어

 

 

 

 

그림=허재경

 

 

연기(緣起)가 공(空)이라는 주장은 대승(大乘)의 상식이다. 만물이 조건(緣)에 의해 생성 ·지속 ·소멸한다면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면 스스로를 스스로이게끔 하는 어떤 본성(本性), 즉 자성(自性)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만물은 자성(自性)을 결여한다는 의미에서 공(空)하다. 만물이 연기(緣起)하기에 공(空)하고, 따라서 연기(緣起)하는 것은 공(空)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연기(緣起)가 공(空)’이라는 주장은 옳다. 그런데 연기(緣起)와 공(空)이 동일(同一)하다고, 즉 ‘연기(緣起)=공(空)’이라고까지 볼 수 있을까?

 

먼저 “연기(緣起)와 공(空)은 동일(同一)하다”는 명제를 분석해 보자.

 

1. “연기(緣起)=공(空)”은 ‘연기’와 ‘공’ 두 개념(槪念)이 적용되는 대상의 집합, 즉 외연(外延)이 일치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만물은 모두 연기하여 모두 공하다. 그러면 ‘연기=공’이라는 주장은 연기와 공 두 개념이 각각 모든 만물을 포괄하여 외연이 같다는 참된 동일성 주장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주장이 반드시, 필연적으로, 모든 가능세계에서 참일까?

 

2. ‘연기(緣起)=공(空)’이라는 주장이 연기(緣起)의 가르침과 공(空)의 가르침이 동일(同一)하다는 주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주장이 옳지 않다는 점을 쉽게 반론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에서 쓰이는 ‘동일(同一)하다’는 말은 수적(數的)으로 하나이고 질적(質的)으로 같다는 뜻이다. 수적으로 하나라면 질적으로도 다를 수 없기에 이 기준은 결국 ‘수적으로 하나’라는 말이 된다. 철학은 “어떤 대상 a와 대상 b가 동일(同一)하다”는 명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정의한다: ‘a이면 반드시 b이고 (a necessitates b), b이면 반드시 a이다.’ ‘반드시’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전에 연재한 ‘가능세계’에서의 논의를 빌자면, ‘모든 가능세계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a=b)는 ‘어떤 가능한 상황에서도 a와 b가 분리되어 둘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반드시’라는 점을 잠시 제쳐두고 위의 문장을 명제함수를 이용해 표현하자면 ‘(a→b) & (b→a)’이다. 이것은 (a↔b) 또는 (a≡b)이 된다. 만약 “a”와 “b”가 개념(槪念)을 지칭한다면, (a↔b) 또는 (a≡b)는 a가 적용되는 대상의 외연(집합)과 b가 적용되는 대상의 외연이 일치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위의 1번 해석처럼 ‘연기(緣起)=공(空)’을 ‘연기(緣起)하는 모든 것은 공(空)한 모든 것과 각각 그 외연이 일치한다’고 이해한다면, 우리 세계에서 ‘연기(緣起)=공(空)’이라는 주장은 참이다. 그런데 a와 b가 동일성의 기준을 충족하려면 a와 b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모든 가능세계에서 동일(同一)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겠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神)이 있어 그가 어떤 세계를 만물이 자성을 결여하는 방식으로 만들고 그냥 내버려 둔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만물은 서로를 조건(緣)으로 삼아 생성 ·지속 ·소멸하는 연기(緣起)의 과정을 거칠까? 그럴 수 없다. 자성(自性) 없이 창조된 만물에 신(神)이 어떤 일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만물은 변화 없이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능세계를 상상하기 어렵다면, 만물이 이미 공(空)한 세계에서 신(神)이 어느 순간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조건(緣)을 멈춰버렸다고 가정하자. 이런 상황에서 조건(緣)들이 다시금 스스로 움직여 모이고 흩어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모든 조건(緣)이 멈춰버린 상황에서는 모든 운동과 모든 변화가 멈춘다. 연기(緣起)가 일어나지 않는다.

 

신(神)이 손가락을 튕기거나 해서 이 세상 어느 것에라도 첫 움직임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만물이 공(空)하더라도 아무 것도 연기(緣起)하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만물이 연기(緣起)하면 반드시 공(空)하지만, 만물이 공(空)하여도 반드시 연기(緣起)하지는 않기 때문에, 연기(緣起)와 공(空)이 반드시, 필연적으로, 모든 가능세계에서 동일(同一)하지 않다.

 

신(神)이 있어 신(神)이 어떤 세계를 만물이 연기(緣起)하는 방식으로 창조했다면 신(神)은 더 이상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그곳의 만물은 저절로 공(空)하다. 그러나 신(神) 다른 세계에서는 만물을 공(空)하게만 만들고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만물은 생겨나고 사라질 어떤 조건(緣)도 없어서 연기(緣起)하지 않을 것이다. 연기(緣起)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공(空)하지만, 공(空)한 모든 것이 반드시 연기(緣起)하지는 않는다.

 

이제, 위의 2번째 해석에 따라, ‘연기(緣起)=공(空)’이라는 주장이 연기의 가르침과 공의 가르침이 동일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보자. 이 해석에 있어서도 ‘연기=공’이라는 동일성 주장이 ‘연기법은 반드시 공의 가르침으로 귀결하고, 공의 가르침은 반드시 연기법으로 귀결한다’라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연기의 가르침은 분명 공의 가르침이다, 즉 (a→b)는 반드시 참이다. 그런데 만물이 자성(自性)을 결여하고 있다는 공(空)의 통찰(洞察)로부터 만물이 조건(緣)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연기법(緣起法)이 나오지 않는다. 즉 (b→a)라는 명제는 반드시 참이 아니다.

 

나는 대승전통의 일부 학자들이 만물이 ‘공(空)하기 때문에 연기(緣起)하고 쉬지않고 변화한다’고 가르쳐 왔다는 점을 알고 있는데, 이는 위에서 내가 편 반대논증의 이유 말고도 논리학의 기본법칙을 오해한 실수다. 연기(緣起)하는 것은  공(空)하다는 주장은 참이다. 한편 수학과 논리학은 어떤 명제의 대우(對偶)가 참이라고 가르치는데, “연기(緣起)하는 것은 공(空)하다”의 대우는 “공(空)하지 않으면 연기(緣起)하지도 변하지도 않는다”이다. 이 명제는 참이다. 공(空)하지 않아서 고정불변(固定不變)의 자성(自性)을 지닌 사물은 연기(緣起)할 수도 없고 변할 수도 없다. 고정불변의 자성이 그 사물에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변할 수 있고 연기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공(空)하기 때문에 연기(緣起)하고 변한다’는 주장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후건긍정의 오류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성냥개비를 성냥갑 딱지에 그으면 불이 붙는다’가 참이라고 해도, 이 문장의 뒷부분(후건)을 긍정하여 가설로 만들어 ‘불이 붙으면 성냥개비가 성냥갑 딱지에 긋는다’고 결론지으면 이는 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연기(緣起)하기 때문에 공(空)하다’로부터 ‘공(空)하기 때문에 연기(緣起)하고 변한다’는 논리는 도출되지 않는다.

 

‘연기(緣起)가 공(空)’이라는 대승(大乘)의 주장이 동일성 명제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주당은 참이 아니다. 그러나 우연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만물이 연기(緣起)하여 만물이 공(空)한 세계이다. 대승에서 말하는 ‘연기(緣起)=공(空)’이라는 동일성(同一性 주장이 반드시 참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모든 것이 연기(緣起)하고 모든 것이 공(空)한 세계에 살고 있다. ‘연기(緣起)=공(空)’은 우연하게 참이다.

 

홍창성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 철학과 교수 cshongmnstate@hotmail.com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