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일으키는 주체가 '나'라고 여기는 착각(錯覺) 때문에 생각을 조작하려 한다. - 몽지와 릴라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온갖 경험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눈앞에 있는 사물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눈앞에 온갖 색깔과 다양한 모양의 사물들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큰 소리 작은 소리도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사람을 부르는 소리, 감정을 담은 음악소리, 애완동물들이 먹을 것을 달라는 소리 등의 의미(意味)가 담겨있는 소리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고, 또한 탁상시계 돌아가는 소리, 바람소리, 삐거덕거리는 문 소리 등의 별다른 의미(意味)가 담겨있지 않은 소리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방안의 온도가 감지되고, 어디선가 음식 냄새가 흘러온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이런 감각적인 신호를 따라 생각도 일어나고 상황을 해석하여 행동으로 옮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사람들은 늘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아니 살아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는 주인(主人)도 없고 손님(客)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느낌, 감정, 생각, 감각, 욕망, 인식 등의 조합(組合)으로 형성(形成)된 나라는 것이 삶의 일부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여기 이 자리에서 이렇게 드러나는 삶도 저절로 일어나는 분별(分別)이고,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착각(錯覺)도 저절로 일어나는 분별(分別)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경험은 마치 바다에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렁이듯이 인연(因緣 : 원인과 조건) 따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감각적인 현상도 물결치고, 생각도 길들여진 패턴대로 물결치고, 일어난 생각을 따라 행동도 물결치고, 감정도 물결친다. 이와같이 물리적인 현상 정신적인 현상의 모든 현상(現像)은 어떤 고정불변하는 주체(主體)가 있어 그 주체의 의지(意志), 의도(意圖), 욕망, 욕구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즉 모든 현상이 일어나는 당처(當處)에서 저절로 온갖 경험(經驗)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모든 경험이 저절로 일어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단순한 깨어있음, 꺼지지 않는 생명력(生命力)과 같은 창조성(創造性)이 영원하게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끊임없이 모든 현상(現像)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괴로움이나 불만족은 이 현상적인 삶을 내가 의지를 가지고 살고 있다는 착각(錯覺)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고착화(固着化)된 생각에 불과할 뿐인 나라는 것이 삶을 주도하고 있다고 착각(錯覺)하기 때문에 괴로움이나 불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사물을 보고, 내가 소리를 듣고, 내가 냄새를 맡고, 내가 생각한다고 착각(錯覺)을 하는 것이다. 삶이 내 뜻, 내 마음대로 펼쳐지면 행복해하고 자기 뜻대로 펼쳐지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착각(錯覺)을 한다. 그러나 삶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 모든 현상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아무것도 아닌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물결일 뿐이다.
이같은 사실을 깨닫고 모든 조작을 놓아버리는 것이 진실에 부합하는 삶이며 장애가 사라지는 삶이다. 흔히 마음을 자각(自覺)하고 나서도 이 사실에 부합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생각을 하는 나라는 것이 있다는 착각(錯覺) 때문이다. 내가 생각을 일으켜서 한다는 착각(錯覺)은 내가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幻想)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나에게 이로운 생각이나 상황을 규정(規定)하고 그렇게 규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조작하려 한다. 그러나 생각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각은 저절로 일어나고 있고,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착가도 미세하게 고착된 생각일 뿐이어서 습관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공부를 위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공부란 결국 나라는 것도 분별(分別)되어 일어나는 생각일 뿐임을 명백히 자각하는 일이다.
저절로 생각이 일어난다. 그 생각이 나라는 환상(幻想)에게 이로운 것이든 해로운 것이든 저절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본래 평등하다. 현상은 극과 극의 희비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 모든 현상의 본성(本性)은 바로 마음 하나일 뿐이다. 이 사실을 깨달아 조작을 당장 쉬는 것이 진정 진실에 부합하는 길에 드는 것이다. 여전히 자기 의지대로 마음공부를 규정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거꾸로 가는 공부이다. 시끄러운 생각이든, 괴로움 감정이든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문득 깨달아 차별성이 사라져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모든 조작이 멈추게 되고 모든 일에서 손쓸 일이 사라진다.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져야 자아의 허상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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