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聽覺 : 소리를 듣는 감각기관/귀)과 소리
법음(法音)은 법음(法音)을 듣는 자의 공덕(功德)이 더 크다
대다수 정보는 눈과 귀로 습득, 불교에선 눈보다 귀가 더 광범위
발생학서도 청각이 먼저 발달, 세상의 가장 좋은 소리는 법음
중생은 육근(六根 : 6가지 감각기관 : 눈, 귀, 코, 혀, 피부, 뜻)을 통해 대상 세계, 즉 육경(六境 : 모양,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의 모든 대상)을 인식(認識)한다. 육근(六根)은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 의근(意根)인 여섯 종류의 인식기관/감각기관이다. 육근(六根)에서 근(根)은 기관 혹은 기능의 의미로 인식(認識)을 하고 인식(認識) 기능이 작용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중생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활동들은 모두 이곳 육근(六根)에 의지해서 전개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육근(六根) 중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근(根)이 있으니 그것은 눈과 귀에 해당하는 안근(眼根)과 이근(耳根)이다.
중생들에게 들어오는 외부 정보(情報)들 대부분이 눈/안근(眼根)이나 귀/이근(耳根)을 통해 들어온다. 요즘 너도나도 손전화기를 손에 들고 다니는데 기계 속의 모든 정보가 눈과 귀를 상대로 제공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흥미로운 것은 불교에서는 눈보다는 귀가 훨씬 활동 범위가 넓다고 설한다는 것이다. ‘능엄경’을 보면 귀/이근(耳根)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하시기를 “눈/안근(眼根)은 앞만 보고 옆과 뒤를 보지 못하며, 담장 등과 같은 장애물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으면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귀/이근(耳根)은 사방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먼 곳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며, 언제나 열려 있어 항상 들을 수 있다”고 하셨다.
발생학에서도 인간의 시각보다는 청각이 먼저 발달하며 24시간 쉬지 않고 작동하는 감각 기관이 청각(聽覺), 귀/이근(耳根)이라고 한다. 엄마 자궁에 태아가 생긴지 4개월 정도 지나면 태아는 엄마의 뱃속에서 외부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흔히 산모들의 태교도 주로 소리와 연결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면 모든 소리를 듣고 구별까지 하는 소위 만능귀가 형성되고, 1년이 지나면 모국어를 알아듣는 모국어 귀가 열리게 된다. 말 못하는 아기라고 아기 앞에서 함부로 말하고 깔보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아기가 무의식중에 들었던 모든 언어들이 후에 아이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주의할 일이다.
심리학에서는 어릴 때 받은 부모의 행위나 언어들은 모두 아기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 저장된 내용들은 아이가 성장한 후 모두 세상에 다시 쏟아낸다고 한다. 이를 내사(內射)와 투사(投射)라고 하는데 사람은 내사(內射)하면 반드시 투사(投射)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발달한 청각(聽覺), 귀/이근(耳根)은 외부의 크고 작은 소리들을 분별해서 인식(認識)하고 이같은 인식(認識)에 민감하게 반응(反應)한다.
중생들이 듣고싶은 소리는 아름답고 달콤한 소리이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소리에 집착하게 된다. ‘중생은 소리를 따라 윤회(輪廻)한다’는 말씀은 그만큼 소리가 중생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험으로 소리의 종류를 살펴보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자연(自然)의 소리이고 또 하나는 기계(機械)의 소리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의 소리라 할 수 있다.
과거 과학과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는 자연의 소리가 전부였지만 과학과 산업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요즘에는 기계음이 판을 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와 같은 현상은 더하다. 산과 들을 찾아 자연의 소리를 듣기보다는 컴퓨터나 모바일을 통해 소리를 듣거나 대화를 한다. 이렇게 자연으로서의 인간이 자연을 멀리하고 기계와 친해진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과 친해질 때 훨씬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불교에서는 세상의 소리 가운데 가장 좋은 소리는 법(法)을 설(說)하는 소리, 즉 법음(法音)이라고 한다. 법음(法音)은 능히 중생을 고뇌와 윤회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법음(法音)은 법을 설하는 자보다 법을 설하는 소리를 듣는 자의 공덕(功德)이 더 크다고 말한다. 이는 법을 설하는 입보다는 법을 설하는 소리를 듣는 귀가 더욱 귀하다는 뜻으로 중생의 청각(聽覺), 귀/이근(耳根)이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강조한 말씀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94호 / 2021년 7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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