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求道)하는 여정의 시작
‘나는 누구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답변을 할 수 없고 오직 침묵(沈默)만 흐른다. 그때 그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꺼내지도 못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 어떤 답변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마침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어리석은 짓이 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수가 없고, 그 다음에 질문도 할 수가 없어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답변은 오직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쪽 면이 사라지면, 다른 쪽 면도 있을 수가 없다. 먼저 답변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 다음에 질문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질문과 답변이 사라지면, 그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초월(超越)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대는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누구인가를 자기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밖으로 꺼집어내어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누구인가를 자기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알고 있는 것은 삶의 지식이거나, 경전에 나오거나, 누구에게서 빌려온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자기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알고 있는 것은 그대 내면에서 저절로 일어난 앎이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러한 그대 내면에서 저절로 일어난 앎을 통해서 그대는 부처(각자/覺者, 깨달은 자)가 된다. 그때 그대는 애초부터 자신이 본래 부처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허허 웃기 시작한다. 그대는 그렇게나 깊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 그대는 계속해서 자기 내면이 아닌 바깥에서 방황하였고, 자기 집인 내면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서양 철학자인 쇼펜하우어가 인적이 없는 한적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반대 방향에서 다가오던 행인과 우연히 부딪혔다. 화가 난 그 행인이 쇼펜하우어에게 소리쳤다. “이보시오.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요?”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던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그걸 알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누구인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가 구도(求道)하는 여정의 시작이다.
오쇼의 <기적의 차크라> 중에서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괴로움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괴로움을 잊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0) | 2022.03.24 |
---|---|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 (0) | 2022.03.15 |
사상(四相)은 내가 다른 것과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착각(錯覺) (0) | 2022.03.12 |
5. 뇌신경회로 – 역동적인 마음근육 (0) | 2022.03.10 |
잡된 생각을 내려놓아라 (0) | 2022.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