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보시하되 보시했다는 상에 걸림없이, 해도 한 바가 없이 행해야 합니다.

장백산-1 2023. 12. 23. 13:29

보시하되 보시했다는 상에 걸림없이, 해도 한 바가 없이 행해야 합니다.


예수는 도마복음에서 말합니다. '너희들이 금식을 하면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 죄를 짓는 행위이다.
너희들이 기도를 하면 너희들은 죄를 선고받을 것이고, 너희들이 자선을 베푼다면 그것은 너희의 정신에 해를 끼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의 선사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달마스님도 말하셨습니다.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은 경을 읽고 염불하고 늘 배우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하루 종일 도를 행하고, 늘 배우면서 앉아서 눕지 않고, 두루 배우고 많이 듣는 것을 불법으로 삼는다. 이러한 어리석은 중생들은 모두가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제 이 땅에 와서 오직 돈교(頓敎) 대승(大乘)의 즉심시불(卽心是佛)만을 전할 뿐, 지계(持戒)나 보시(布施), 정진(精進)과 고행(苦行)은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도하고 염불하고 금식하고 보시를 해야만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나 선사스님들은 그와 반대로 말하는 듯 보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행하더라도 그것이 방편(方篇)임을 모르고 방편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방편을 행하는 '나'가 있어서 아상과 아집으로 방편을 행한다면 그것은 참된 공덕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되 하는 바 없이 하라'거나, '집착 없이 행하라거나', '강을 건너면 뗏목은 버려라'라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방편의 가르침에 집착해 사로잡힌 채 그 방편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그속하고 옭아맵니다.
기도하고 보시하고 수행하는 것은 우리를 기도와 보시와 수행으로부터 자유로와지도록 해 주기 위한 것이지, 거기에 사로잡혀 평생을 기도와 보시와 수행의 노예로 살기를 강요하기 위해 주어진 것들이 아닙니다.

보시 수행 기도 그것을 통해 보시 수행 기도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어야 모든 성인의 가르침을 올바로 새기는 것입니다.
보시하되 보시했다는 상에 걸림이 없이, 해도 한 바가 없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시하고 기도하고 수행을 하면서도 '내가 했다', '잘 했다'고 하는 아상에 머물지 않고, 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