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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중중무진의 연기의 세상 속에서 삶은 저절로 살려진다.

장백산-1 2023. 12. 24. 15:40

무한한 중중무진의 연기의 세상 속에서 삶은 저절로 살려진다.


깨어있는 자, 깨달은 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까?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도인의 삶이 따로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 사람들의 삶과 깨어있는 자의 삶, 깨달은 자의 삶, 도인의 삶은 똑같다.

사실 삶은 인연 따라 펼쳐지기 때문에, 연기법대로 인연 따라 펼쳐지는 모든 것들은 나라는 주체성 없이, 무아로써 그저 인연따라 생겨났다가 인연따라 변해가고 인연따라 사라질 뿐이다. 이 연기법이 진리다.

무수히 많은 상호연결성, 중중무진의 연기법에 따라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매 순간 그 인연은 새롭게 변해간다. 그 인연을 내가 주도하고,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여기겠지만, 그같은 생각은 아상, 에고일 뿐이다.

우주법계 전체가 중중무진의 연기법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원인과 조건이 불가설불가설 무수한 연결성을 통해 이 평범해 보이는 눈앞의 현실을 만들어낸다. 내가 현실을 만들어 낸다고 느끼겠지만, 우주법계 이 온 세계가 연결됨으로써 크고 작은 무수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무아다. 연기법의 세계에 '나'가 개입될 여지는 추호도 없다. 무한한 중중무진의 연기 속에서 삶은 저절로 살려진다. 우리가 통상 깨달은 자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러한 연기법의 세계 속에서 온전히 연기법과 하나가 되어 연기된 삶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산다. 그렇게 살다 보니 자기 주장, 자기 고집, 자기 집착이 없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되어야 해, 저렇게 되어야 해, 안 되면 절대 안 돼 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나가 없이, 그저 연기법의 흐름을 타고 저절로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똑같이 그렇게 연기법대로 저절로 흘러가고 있으면서도 자기 머리속에서 '내 인생은 이렇게 되면 안 돼', '저렇게 되어야 해', '저 녀석에게는 꼭 이겨야 해' 이런 식의 자기 생각으로 법계의 연기와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과 삶이 다르면, 괴로워하며, 삶을 내가 바꾸겠노라는 야심찬 어리석은 생각을 품고는 삶과 싸우기 시작한다. 삶과 싸우고, 내 식대로 삶을 살겠다는 것은 우주 전체와 싸우겠다는 것이다. 연기법을 거스리겠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주어진 삶이 진실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진실이다. '지금과 다르게'가 아니라, '지금처럼'살라.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