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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무엇이 나였던 것은 아닐까?

장백산-1 2024. 2. 16. 15:08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무엇이 나였던 것은 아닐까?



영화 한 편을 찍고 나서, 그 주인공 역할에 너무 깊이 몰두한 배우가 영화를 마무리 한 후에도 한동안 주인공의 아픔이 환영처럼 자신을 힘들게 했노라고 고백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배우가 아닌 관객이었음에도,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주인공의 마음에 공명하여 힘들어 하기도 한다.

이렇게 고통 받는 배우나 관객이 당신을 찾아와 고통을 호소한다면, 당신은 그것은 영화일 뿐이며, 그 배역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아주 쉽게 말해 줄 것이다. 아주 쿨하게 영화 촬영한 일을 잊으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당신이 바로 저 배우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떨까?

당신은 당신 삶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다. 배우가 영화 속 역할을 자신이라고 여기듯, 지나온 삶을 우리는 당연하게 '내 삶'이라고 동일시한다. 과연 그럴까? 내가 살아온 삶이라는 모든 경험들이 정말로 '내 것'이었을까? 내가 과거에 그 삶을 경험했어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삶을 경험한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삶을 지켜보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삶의 주체인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무엇이었던 것은 아닐까?

이 몸을 나라고 여기면, 사람들은 내가 그것을 경험한다고 쉽게 규정해 버린다. 이 몸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버리는 것일 뿐이지 않은가. 너무나도 당연시 해 왔던 내 몸이 나라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믿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관심을 기울인 채, 텅 빈 열린 마음으로 살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 때 그것이 일어남을 무언가가 안다. 그 일이 일어남을 지켜보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렇게 보지는 못한 채, '내가 삶을 경험해'라고 단정짓는다. 그럼으로써, 더 이상의 깊은 통찰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만다. '이 몸이 나'라는 착각으로 삶을 보면, 육체에 갇혀있을 뿐, 육체 너머의 진실에 가 닿을 수 없다. 나와 이 육체와의 동일시는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내가 습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을 뿐이다.

진실은, 내가 삶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나는 삶을 지켜보는 그 무엇일 뿐이다. 체험의 주체라는 '나'는 없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