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나는 어디에서 여기로 온 것도 아니며 여기에서 어디로 갈 것도 아니다

장백산-1 2024. 2. 14. 15:33

나는 어디에서 여기로 온 것도 아니며, 여기에서 어디로 갈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어디에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로 왔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얼마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일까?
그런 삶의 목적, 삶의 방향성이 정해져 있는데, 내가 그것을 못 찾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삶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삶의 방향성은 전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 그것이다, 삶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구나가  어디에서 지금 여기로 왔거나, 또 어디로 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언제나 내누구나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늘 있을 뿐이다.

늘 매 순간 순간 삶의 목적은 여기 이 자리에서 완전히 달성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이것이 삶의 목적이니까.
르러니 삶의 목적을 찾느라 방황할 필요는 없다.
어디로 가야 할 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애쓸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모든 추구와 삶에 대한 답을 찾던 마음을 멈춰 세우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본래부터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그저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나를 내 삶의 주재자라고 착각하지 말라. 몸을 나와 동일시하면 이 몸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만 할 것 같고, 이 몸의 삶의 목적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망상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고 야 할 '나'는 없다. 그래서 부처님의 명호 중 하나는 여래여거(如來如去), 즉 여여하게 오고 가시는 분, 
즉 오거나 감이 없는 분임을 뜻한다.

우리들 모두는 어디로부터 온 것도 아니며 어디로 갈 곳도 없다. 아니, 그럴 만한 '당신'이나 '나'가 없다.
이러한 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보라.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럴 때, 조금씩 깨달음의 길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나라고 아상과 분별과 망상과 자아관념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내가 삶을 산다', '내 인생을 멋지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목적성을 상실하게 되며, 그렇듯 자아가 붕괴되는 고통 너머에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것이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