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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의 8정도 수행 중 정명(正命)의 수행

장백산-1 2024. 6. 13. 14:31

초기불교의 8정도 수행 중 정명(正命)의 수행


정명은 ‘바른 생활’ ‘바른 생계’, ‘바른 직업’ 등을 의미하고, 그릇된 생활태도를 버리고 정당하고 바른 생활을 정당한 직업과 생계로써 해 나가라는 것이다. 정명은 출가 수행자에게는 바른 생활수단을 의미하고, 재가자에게는 바른 직업을 의미한다.

주로 출가자들이 행해야 할 바른 생활, 바른 생계에 대해 『중아함경』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여러 가지 축문을 써서 삿된 생활을 존속하지 말라’고 했고, 『맛지마 니까야』에서는 ‘점을 치며 살아가는 것’ 또한 바른 생활수단이 아님을 설하고 있고, 『잡아함경』에서는 ‘정명이란 의복, 음식, 침구, 탕약을 법에 맞게 구하고 법에 맞지 않는 것은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부적을 써 주거나, 점이나 사주, 관상을 봐 주는 등의 행위를 경제적 생활수단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출가자의 정명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왜 부적이나 사주나 관상을 보지 말라고 하셨을까? 이 또한 정명에서 ‘바른 생활’의 ‘바르다’는 뜻이 연기, 무아, 중도, 자비 사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과응보와 연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라는 업 지은 바대로 업보를 받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행위를 하고 살았느냐에 따라 과보를 받는 것일 뿐, 부적을 써서 지니고 다니는 등의 요행을 바라거나, 사주를 보고 피해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인과응보를 모르는 삶일 뿐이다.

보통 초기불교 때는 재가자가 출가자에게 보시하는 것으로 의복, 음식, 침구, 탕약 네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출가 생활을 위해 재가자에게 받는 보시에 대해서도 법에 맞게 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에 맞는다는 것은 곧 연기적으로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나에게 온 것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억지로 보시 받기 위해 재가자에게 요구하거나, 구걸하거나, 점이나 관상을 나쁘게 봐 줌으로써 복을 지어야 한다고 겁박하거나, 자신의 깨달음이 높은 것처럼 꾸며 보시를 하도록 유도하는 이런 것들은 모두 법에 맞지 않는 것이다.

출가자 뿐 아니라, 재가자를 위한 정명도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에는 ‘무기를 사고파는 것’, ‘술이나 고기나 독극물 등을 사고파는 것’ 등이 정명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으며, 『맛지마 니까야』에는 ‘사기를 치는 것’, ‘남을 배신하는 것’ 등을 설하고 있다. 무기를 사고파는 것은 생명을 해치는 도구이기 때문이고, 술이나 고기, 독극물 또한 지혜와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기를 치는 것과 남을 배신하는 것 등을 생활수단으로 삼는 직업들 또한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설해지고 있다.

바른 생활은 결국 연기법을 생활화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인연 따라 스스로 정직하게 노력하여 얻은 의식주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인연법을 안다면, 복권이나 대박을 꿈꾸는 등의 요행을 바라거나, 투기, 고리대금 등의 바르지 못한 생활을 저절로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연기법에서는 일체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가 곧 나이며, 상대가 잘 될 때 나 또한 잘 될 수밖에 없는 상의 상관적인 자비사상을 설하고 있다. 요즘 기업에서도 함께 성장, 발전해야 할 동반자로 생각하는 상생경영, 동반성장이 많은 대기업들의 주요 경영 방침이 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연기적인 직업윤리이며, 정명의 실천이 아닐까.

이러한 정명의 가르침은 『법구경』의 “마치 저 벌이 꽃의 꿀을 모을 때 그 꽃의 빛과 향기를 다치는 일이 없이 다만 그 맛만을 가져가는 것처럼 비구가 마을에 들어갈 때도 그러하다”라고 한 것처럼,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모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의식주에 만족하며, 나를 위해 상대를 헤치거나 빼앗는 일 없이 모두 함께 공존 공생하는 조화로운 삶의 실천이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