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여시(如是) 여시(如是)!

장백산-1 2024. 7. 29. 14:19

여시(如是) 여시(如是)! 

 감각을 비롯한  세상 모든 건  경험되지만 실재하지는 않아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일치  본질을 보는 지혜의  눈 필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지 500년이 흘렀지만, 우리의 감각 속에 여전히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진다. 방 안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정지되어 있다고 느끼지만, 그 순간도 지구는 초속 29.8Km으로 공전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감각은 진실이 아닐 때가 많다. 손가락이 문지방에 걸려서 아플 때 우리는 손가락을 호호 불며 아픔을 달래지만 사실 통증을 느끼는 부분은 손가락이 아니라 뇌의 영역이라고 하니 눈 뜨고 속는 격이다. ‘나 지금 우울해’라고 말한 순간 이미 새로운 지금이다. 스쳐 지나간 느낌일 뿐이고 나름 각색되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생각이 만드는 가상세계의 질료가 된다. 이렇듯 우리의 세상은 경험되지만 실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모순된 말이지만 존재론적 진실이다. 

한여름 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을 때 머리 위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은 거문고자리의 베가(직녀성)다. 이 별은 지구로부터 25광년 떨어져 있다 하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은 25년 전 출발한 빛이다. 오리온자리에서 제일 밝게 빛나는 오른쪽 겨드랑이 베텔기우스는 현재 초신성으로 수명이 다해 폭발을 앞두고 있다. 지구와의 거리가 640광년이니까 폭발하더라도 우리는 640년 후에나 관측할 수 있다. 그러니 반짝이는 별빛에 대한 경험은 실재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시선을 가까이 당겨오자. 지금 옆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 친구의 피로감으로 살짝 부은 얼굴을 바라본다. 동시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세밀히 따져 본다면 사실은 백만분의 일초 전 모습을 지금의 너라고 이름했을 뿐이다. 60조개 이상 세포의 명멸과 진동의 춤을 ‘지금’ ‘여기’ ‘너’라고 고정 지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니 잘 들여다보면 도저히 실재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로 삶은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의 도움을 받아 객관이라고 생각되는 물질의 존재 형태, 무엇을 실체라고 하는지 살펴보자. 양자물리학자들은 물질의 근원적 존재 형태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어떤 실험방법을 쓰느냐에 따라 입자 또는 파장으로 나타난다고 밝혀냈다.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서는 파장으로, 광전효과 실험을 통해서는 입자로 밝혀진다니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물질이기도, 비물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는 붓다가 2500년 전 말한 물질의 존재 형태와 신기하게도 일치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물질 또는 존재의 근원은 유(색/色)이기도 무(공/空)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방송에서 윤회가 있다·없다 논쟁이 붙었었다. 윤회를 전제로 한 K드라마가 전 세계로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 어느덧 윤회사상은 우리의 사회와 매우 가깝다. 다수의 게임에도 환생 시스템이 있고 “다시 태어나도 같은 사람과 결혼하겠냐?” 또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 등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윤회 또한 모든 물질의 존재 형태처럼 있다·없다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험되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우리는 매일 밤 꿈을 꾼다. 꿈에 낱낱이 실체로 나타났던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이 꿈을 깨면 단지 꿈이었을 뿐임을 우리는 안다. 윤회도 그와 같다. 나라는 주재자가 있다는 설정, 천년 묵은 꿈을 매 순간 꾸지만 그 기반은 사상누각이다. 앞의 원인에 의해 뒤의 결과가 되는 인연의 고리는 존재하는 현상이다. 현상은 빛의 명멸처럼 반짝여도 실재는 없다. 이것이라고 어디에 점 하나 붙일 데가 없다. 순일한 허공성, 그것이 찐 불법 아니겠는가? 순일한 허공성 이 말은 개념적으로 모순이지만 존재의 진실이다. 드라마인 줄 알면서 드라마를 보며 환호하고 애달파하는 것, 꿈인 줄 알면서 좋은 열매를 맺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실체인 줄 알고 허겁지겁 사는 것과 그 본질을 알고 유유자적하는 것의 차이, 그것이 지혜의 눈 아니겠는가? 

선선해지는 아침 바람에 잠깐 눈을 감으면 어느새 깨어있음이 가까이 있다. 비 온 뒤 산안개가 앞산의 허리를 휘감다가 이내 사라진다. 경험되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들. 여시(如是) 여시(如是 )! 모든 것이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선우 스님 부산 여래사불교대학 학장 bababy2004@naver.com

[1739호 / 2024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