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오늘 하루 - - 나태주
만족이야말로 가장 큰 재산
별 탈 없느냐는 인사 ‘안녕’ 에는 세상살이 녹록지 않음 내포
누구에게나 인생엔 고비 찾아오게 마련 오늘 하루 무탈함에 만족해야
자 오늘은 이만 자러 갑시다
오늘도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충분했습니다
아내는 아내 방으로 가서
텔레비전 보다가 잠들고
나는 내 방으로 와서 책 읽다가 잠이 든다
우리 내일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자 오늘도 안녕히!
아내는 아내 방에서 코를 조그맣게 골면서 자고
나는 내 방에서 꿈을 꾸며 잠을 잔다
생각해보면 이것도 참 눈물겨운 곡절이고
서러운 노릇이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오늘 하루 좋았다 아름다웠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 동안
이런 날 이런 저녁을 함께할 것인가!
(나태주 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열림원, 2022)
“안녕하십니까?” ‘안녕(安寧)’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아침에 이 인사를 한다면, 이 인사는 밤새 별일 없었느냐는 의미가 될 것이고, 오랜만에 만난 이에게 이 인사를 건넨다면, 그동안 별 탈 없었느냐는 뜻이 된다. 아침에 이 인사를 건네는 것은 그만큼 밤새 안녕하기가 힘들었다는 뜻이고, 오랜만에 만난 이에게 이 인사를 건네는 것은 풍진 세상 살기가 녹록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시인은 저녁에 자기 방으로 자러 가면서 아내에게 “오늘은 이만 자러 갑시다/ 오늘도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충분했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이 인사에는 만족이야말로 가장 큰 재산(‘법구경’ 204송)이라는 부처님의 사상이 담겨 있다. 시인은 아침에 밤새 안녕했다는 것에 만족했듯이, 저녁에는 낮 동안에 안녕했으니 만족스럽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 말 속에는 내일도 오늘처럼 우리 만났으면 한다는 아주 소박한 바람이 포함되어 있다.
“내일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평범한 말은 그러나 시인에게 ‘참 눈물겨운 곡절’이고, ‘서러운 노릇’이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도대체 왜 그런가? 시인은 언젠가 필자와 만나는 자리에서 당신은 네 번이나 큰 수술을 했고, 부인도 세 번인가 큰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그 말 속에서 나는 당신이 네 번이나, 부인도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의미를 읽었다. 그래서 부부가 하루하루를 안녕하면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을 넘어서서 ‘눈물겨운 곡절’이고 ‘서러운 노릇’이고 ‘안타까운 노릇’이라고 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번도 수술하지 않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루하루는 눈물겨운 곡절이고, 서러운 노릇이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고비가 찾아오게 마련이라면, 지금까지 그런 고비가 없었던 사람에게 오히려 앞으로 그런 고비가 올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기고 되새겨야 한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내일을 믿지 말라, 오직 현재에 충실하라(라틴어로 ‘carpe diem’)”라고 노래했다.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면, 과연 지금 이 시간을 대충 넘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너무 잘하려고 애쓸 것은 없다. 오늘 하루를 무사하게 살아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만족이야말로 가장 큰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제의식이 없으면 발전도 없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 문제의식이 곧 시이다. 다시 말해, 오늘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리하여 평범한 듯하지만 아름다운 우리의 생활이 실은 눈물겨운 곡절이요, 서러운 노릇이요, 안타까운 노릇임을 깨닫는 것이 곧 시이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738호 / 2024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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