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불교의 사마타 명상 - 하
서양 문화 맥락서 삼매수행 전하다
‘청정도론' 기반 사마타 수행 평정심 · 고요함에 주의 집중
새로운 일상에도 적용하며 전통적 불교 복원토록 노력
1973년 영국 웨일스의 작은 마을에 테라와다 불교의 좌선을 가르치는 사마타 트러스트(Samatha Trust)라는 자선단체가 설립되었다. 사마타 트러스트는 태국의 승려였던 분만 푼야티로(Boonman Poonyathiro, 1932~)가 태국불교의 사마타 명상을 영국인에게 전하겠다는 취지로 세운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50년대부터 미얀마와 태국 전역에서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좌선 수행이 깨달음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새로운 버마식 위빠사나’ 운동과 함께 수 세기 동안 태국과 미얀마에서 이어져 내려오던 좌선 삼매 수행법을 광범위하게 억압하는 일이 있었다. 특히 찰나삼매를 강조하는 위빠사나 운동 안에서는 전통적인 삼매 수행이 설 자리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구전되어 내려오던 좌선 중심의 삼매 수행법은 민간에서는 물론 수도원에서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1970년대의 영국 불교도들도 위빠사나를 주된 수행법으로 삼고 있었는데, 분만(Boonman)은 자신이 스승에게서 배웠던 명상을 그대로 ‘서양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이 당시에 영국에 불교를 가르치기 위해 온 동남아시아 불교 지도자 중에는 오히려 사마타 수행을 강조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서 온 사다티싸 스님(Ven. Saddhatissa, 1914~1990)은 서양인은 위빠사나 기법을 배우기 전에 먼저 사마타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사다티싸 스님은 스리랑카 출신으로 에든버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이자 작가로서 영국의 일반대중을 위해 불교를 알리고 있었던 영향력이 큰 불교 지도자였다. 이처럼 영국의 사마타 수행 전통은 불교 수행과 서양 문화를 모두 잘 알고 있는 경험 많은 불교 지도자들이 영국 불교도에게 사마타 수행을 권하는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사마타 트러스트는 빨리어 경전과 ‘청정도론’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에게 대체로 동일한 방식으로 사마타 수행을 가르친다. 특히 ‘청정도론’에서 해설하는 호흡명상을 중심으로 사마타 수행을 진행한다. 사실 호흡명상은 사마타와 위빠사나 두 가지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수행법인데, 사마타 트러스트에서는 마음의 평정과 고요함에 더 무게를 두고, 명상 수행자가 위빠사나로 정식으로 나아가기 전에 평온함의 토대가 확립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다. 이 명상 센터에서 불교 명상을 배우는 입문자는 처음에는 호흡의 움직임과 변화하는 본성을 관찰하면서 가끔 일어나는 불만족스러운 느낌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호흡 관찰에서 일어나는 즐거움을 얻는다. 수행이 깊어짐에 따라 명상 수행자는 ‘청정도론’에서 제시하는 수식관의 8단계를 따르면서 사마타를 발달시킨다. 그중에서 초기 단계인 ①호흡 세기(ganana), ②호흡세기를 놓고 들숨 날숨을 마음챙김으로 연결함(anubadhana), ③숨이 닿는 부분에서 들숨 날숨에 마음챙김 하는 접촉(phusana), ④호흡에만 집중하여 마음을 고정하는 안주(thapana) 등의 4단계에 중점을 두고 반복 수행하여 사띠와 삼매를 일깨우고, 니미따를 배양하여 더욱 깊은 집중력을 얻는다.
사마타 트러스트는 누구나 명상을 환영하고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사마타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숙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이 단체는 위빠사나 운동과 세속적인 마음챙김 단체의 대규모의 국제적인 움직임과는 현저히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광범위한 홍보나 대중화를 지향하기보다는 현대 서양 불교가 놓치고 있는 불법(dharma)에 대한 헌신, 불교적 신화와 상징과 같은 전통적인 요소를 복원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마타 트러스트는 사마타를 통해 이러한 원리를 새로운 환경에 적용하고, 사마타와 함께 전통적인 불교를 복원하고자 한다. 사마타 트러스트의 후원 아래 영국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국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삼매 중심의 수행법은 동남아시아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과 직접 연결된 동시에 새로운 서양 문화의 맥락에서 발달한 독특한 수행법이다.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cherryhill2736@gmail.com
[1741호 / 2024년 8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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