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모든 존재, 상호 의존관계서 생성 · 소멸

장백산-1 2024. 9. 23. 23:22

18. 의타기상

 모든 존재, 상호 의존관계서 생성 · 소멸


마음  빼고 연기 성립 못하듯  마음 역시 연기서 못 벗어나
일체는 단일체 아닌 복합체  ‘유’도 ‘무’도 아닌 공한 존재

 

다음은 유식의 삼상 즉 마음이 지닌 세 가지 모습 중에 의타기상(依他起相)에 대한 말씀이다.

“어떤 것이 제법의 의타기상인가? 모든 법의 연에 의해서 생기는 자성이니,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는 것으로써, 이른바 무명을 연으로 행이 있고, 나아가 순전히 큰 고통의 덩어리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니라.”

제법의 의타기상이란 모든 존재는 공히 다른 것에 의지해서 생기고 일어난 모습들이라는 의미이다. 거듭 언급하였듯이 제법은 세상의 모든 존재를 가리키는 용어이지만, 유식학에서는 이들은 단지 마음의 모습에 불과하기에 제법의 의타기상은 곧 마음의 의타기상이 된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다 보면 불경 가운데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용어가 등장하면서 갖가지 가르침들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불교 경전에 나타난 용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연기(緣起)’라고 생각한다. 연기는 불교의 근간이며 핵심이다. 부처님은 연기를 깨달아 부처가 됐다. 초기 경전에서도 ‘여래는 곧 연기’라고 하실 만큼 연기의 교설은 중요하다. ‘연기를 보는 자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 여래를 본다’는 맛지마니까야의 가르침과, ‘연기를 보는 자는 여래를 보고, 여래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는 상윳따니까야의 가르침이 이를 뒷받침한다.

불교에서 세상은 하느님 같은 신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법이 지배한다. 한 생각, 한 티끌조차도 연기법을 벗어나 있지 않는 것이다. 이 연기법은 상호 연기와 인과 연기로 구분하여 설명된다. 상호연기란 모든 존재는 갖가지 의존관계에서 발생하고 소멸하며, 인과 연기란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연기의 측면에서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연도 아니고, 운명도 아니며, 예정도 아니다. 세상은 거대한 연기의 장(場)이며, 여기에 신과 같은 주재자는 없다.

본문의 가르침대로 세상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발생하므로 저것이 발생한다. 이는 고통의 발생과 소멸도 똑같이 적용된다. 중생의 근원적 어리석음인 무명(無明)을 원인으로 형성된 행(行)이라는 결과가 있게 되고, 나아가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의 연쇄적 인과가 발생하여 마침내 중생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발생한다. 이른바 십이 연기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핵심 교리로서의 연기라는 용어를 유식학에서는 의타기라는 말로 대신한다. 불교 용어상의 연기(緣起), 연생(緣生), 의타기(依他起)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일체 만법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자력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반드시 다른 것들이 결합해 모습을 이루고 성품을 이룬다. 일체 만법은 단일체가 아닌 복합체이며, ‘유’라고도 ‘무’라고도 할 수 없는 공한 존재들이다. 

유식에서는 이렇게 의타기 된 공으로써의 세계는 ‘마음의 나툼’이라고 가르친다. 유무를 벗어난 공의 세계를 중생 각자의 마음이 개입하여 재구성했다는 것이 유식사상이다. 이렇게 본다면 세계는 연기이며, 연기는 마음에 의해 펼쳐지므로 결국 연기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을 빼놓고는 연기가 성립하지 못하고 마음 역시 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교묘한 사상이 유식사상이다.

제법(諸法)의 의타기(依他起)란 곧 제식(諸識)의 의타기(依他起)가 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말한다. 마음 하나만 깨달으면 곧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알게 되고, 온갖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된다고도 말한다. 이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도 연기된 것이며, 의타기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음은 의타기라는 진실에 비추어 마음을 절대화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이전의 마음, 영원히 없어질 수 없는 마음,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 따위의  현혹하는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대승에서 가르치는 불성이란 무엇인가? 다음의 원성실상에서 설명하겠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45호 / 2024년 9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