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대신 징계받은 나를 감옥까지...김용현 용서할 수 없었다"
▲ 2011년 101연대장 재임 시절 이상훈 대령(앞줄 맨왼쪽)과 김용현 17사단장(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
ⓒ 이상훈씨 제공 |
지난 17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예비역 육군 대령 이상훈(학군 26기)씨는 김 전 장관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이씨는 한때 김 전 장관을 상관으로 모신 적이 있다. 악연이었다.
육사 38기였던 김 전 장관은 임관 후 언제나 동기생들 중 선두 그룹을 유지했다. 준장, 소장, 중장도 모두 1차 진급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장성 인사를 앞두고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었던 그는 가장 유력한 합동참모의장 후보로 거론됐다.
단순 익사 사고를 의로운 죽음으로 미화
그러나 그해 9월 6일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김용현 중장이 과거 사단장 시절 익사한 병사의 죽음을 미담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사건은 2011년 8월 27일 발생했다. 당시 육군 17사단 101연대 3대대 소속 병사들이 한강에서 사계청소(효과적인 사격을 할 수 있도록 사격 진지 전면의 방해물을 제거하는 작업)를 하던 중 임아무개 병장이 실족해 물에 빠졌다. 단순 익사 사고였다.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숨진 병사가 현충원에 안장된 직후 사고 현장에 있었던 병사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조작됐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사고 원인을 놓고 사단 자체 조사에 이어 상급 부대인 수도군단의 합동조사가 진행됐다. 조사 결과 임 병장은 사계청소 작전 중 후임병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임병이 휴식 시간에 한강에 들어간 임 병장을 구하려다 손을 놓치는 바람에 숨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용현 사단장이 '네가 했다고 해달라' 회유"
그런데, 군 당국은 미담 조작의 책임이 김용현 사단장이 아니라 이상훈 연대장에게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연대장이 사단장에게 허위 보고를 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미담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2011년 11월 수도군단 징계위원회는 연대장을 보직 해임하고 '감봉 2개월' 중징계를 내렸다.
이씨는 미담 조작 사실이 들통나고 군단 조사가 시작되기 직전 김용현 사단장이 전화를 걸어와 "네가 '선임병이 구하다 죽었다' 보고했다고 해달라"는 취지의 회유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제가 어떻게 사실과 다른 내용을 꾸밀 수 있겠느냐?"고 난색을 표했지만, 사단장은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를 압박으로 느낀 이씨는 결국 사단장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사단장은 몇 시간 후 "목에 칼이 들어와도 네가 나에게 그렇게 보고했다고 할 거지"라고 확인 전화까지 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군단 법무참모와 함께 온 젊은 검찰관이 "이건 우리가 조사한 사실과 맞지 않는다. 진실되게 말하라. 그것이 정의고, 장교로서 올바른 일 아니냐"라고 충고했을 때였다. 마음을 고쳐먹은 이씨는 앞서 군단 합동조사를 받기 전 김용현 사단장의 회유와 압박이 지속될 때 미리 작성해 두었던 8장 분량의 진술서를 제출했다.
부하들까지 시달리자 징계 수용
그런데, 얼마 후 김용현 사단장이 그를 호출했다. 그리고선 대뜸 "왜 약속과 다른 말을 했느냐"라고 추궁했다. 한참을 윽박지르던 사단장은 "네가 군단장님을 찾아가서 무릎 꿇고 거짓말했다고 말을 하라"고 강요했다. 사실을 털어 놓으면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 생각했던 이씨는 절망감을 느꼈다.
또 사단장은 이씨의 부하였던 연대 인사과장, 작전과장, 작전장교를 이씨도 모르게 불러내 압박했다고 한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군 조직 내에서는 진실을 밝힐 가능성이 없다고 체념했다. 사단장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부하들까지 계속 시달림 당할 거라 생각한 이씨는 의무대장에게 주사기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피를 빼 한자로 '믿을 신(信)'자를 써서 사단장을 찾아 가 이 혈서를 건네줬다.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테니 자신과 부하들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의도였다고 한다.
이씨는 사단장이 시키는 대로 군단장을 찾아가 잘못을 덮어쓰려고 했다. 그런데 군단장을 찾아갈 것도 없이 군단장이 부군단장을 17사단으로 보내 사단장실에서 부군단장을 독대하게 됐다. 이 자리에서 이씨는 사단장에게 약속한 대로 자신이 거짓 자백을 했다고 했다. 이 말이야말로 거짓이었다.
이후 이씨는 징계를 수용하고 다른 부대로 전출됐다. 연대장으로 부임한 지 5개월 만이었다. 통상 18개월~24개월 사이인 연대장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데다 징계 기록까지 남게 되어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 그래도 1988년 임관 후 30년 가까이 묵묵히 걸어 왔던 군인의 길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권익위에 고충 민원 냈다가 구속·수감까지
2017년 서울의 한 대학 학군단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그렇게 잊고 싶었던 김용현 중장 소식이 들려왔다. 하반기 장성 인사를 앞두고 유력한 대장 진급자로 거론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합참의장 물망에까지 오르고 있었다.
이씨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단순 익사 사건을 미담으로 조작했을 뿐 아니라 그 책임을 부하에게 뒤집어씌운 사람이 군의 수장이 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고민 끝에 이씨는 2017년 7월 17일, 국민신문고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요지의 고충 민원을 제기했다.
▲ 서울 용산 국방부 내 고등군사법원 대법정 내부. 2004.7.23 |
ⓒ 연합뉴스 |
이씨는 '고충 민원을 낸 목적이 인사 검증에 있고, 누구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자 군 검사는 '그런 나쁜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계속 이씨를 설득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미 7시간이 넘는 긴 조사를 받고 심신이 지쳐 있었던 이 대령은 "목적은 김 중장이 합참의장이나 육군참모총장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김 중장에 대한 고소나 고발은 추후 변호사와 상담해 결정하겠다"라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자 군 검사는 조서 뒷부분에 "진술인은 김용현 중장의 형사처벌을 원하는가요"라는 질문과 "네, 원합니다. 다만, 현재까지는 김용현 중장이 합참의장 및 육군참모총장이 되지 않게끔 하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따라서 고소나 고발은 차후에 변호사와 상담하여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란 이씨의 의사를 추가했다. 결국 이 답변은 이씨가 무고죄 피의자로 입건되는 빌미가 됐다.
국방부 검찰단은 8월 3일 김용현 중장을 한 차례 조사한 후 이튿날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자 김 중장은 기다렸다는 듯 이씨가 자신을 무고했다며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씨는 진정 사건 참고인에서 무고죄 피의자 신분이 됐다. 진정 사건을 조사했던 군 검사가 그대로 이씨를 조사했다. 이씨의 주변을 샅샅이 턴 군 검찰은 일사천리로 그를 기소했다.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기 전이어서 1심과 2심 모두 군사법원에서 진행됐다. 결과는 모두 유죄. 이씨는 2018년 9월 26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이 "징역 1년 6월" 유죄 선고를 한 직후 구속·수감됐다. 이듬해 2월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
공사장 노동부터 배달 일까지 닥치는 대로 일해
이씨는 경기도 이천의 국군교도소에서 복역했다. 2~3평 남짓한 감방에서 5명의 수용자들과 함께 살았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죄를 지었다면 달게 받을 테지만, 자신을 대신해 징계까지 받았던 나를 무고죄로 엮어서 감옥까지 보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매일 새벽마다 다른 재소자가 깰까 봐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울부짖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쌍둥이 딸들과 미담 조작 사건 직후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한 아내 걱정에 이씨는 더 힘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그는 교도소에서 청소와 사역 등 무슨 일이든 남보다 열심히 했다.
▲ 이상훈씨는 "내가 권익위에 진정을 낼 때 이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을 사람이라고 했다. 이 사람은 높이 올라갈수록 위험한 사람이라 고 했는데, 이번 내란 사태가 보여주듯 결과적으로 내 말이 맞았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 |
ⓒ 연합뉴스/AFP |
같은 시기 김용현은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머물며 정권 실세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간혹 이씨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물었다. "속상하지 않느냐고." 그때마다 이씨는 "내가 권익위에 진정을 낼 때 '이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을 사람'이라고 했다. '이 사람은 높이 올라갈수록 위험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번 내란 사태가 보여주듯 결과적으로 내 말이 맞았다"라고 허탈하게 웃었다.
국방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연대장에게 책임 돌린 김용현
지난 9월 2일 열렸던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이씨는 야당 의원들의 전화를 받았다. 이씨는 증인이든 참고인이든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여당이 증인 채택에 극구 반대하면서 이씨의 청문회 출석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씨는 TV로 청문회를 지켜봤다.
▲ 김용 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9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계엄 의혹 등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 유성호 |
인사청문회에서는 새로운 사실도 확인됐다. 병사 익사 사고와 관련해 시종일관 사단장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던 사단 부관참모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대통령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청문위원이었던 조국 당시 조국혁신당 대표는 "현재 이OO 중령이 공식적으로는 의전비서관실에 근무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직체계에는 없는 2부속실, 즉 여사님 행정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이 중령이 실제로는 2022년 8월부터 대통령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기록상으로는 2023년 8월부터 근무한 것으로 나와 있어 1년간 불법파견 상태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씨는 기자에게 2017년 권익위에 진정을 낸 직후 조사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언급했던 내용도 털어 놓았다. 이 관계자는 2011년 8월 김용현 당시 사단장이 안전사고를 미담으로 조작한 이유에 대해서 "사고 한 달 전 강화도에서 발생한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군을 불신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방향 전환이 필요했는데, 사단장이 훼손된 군 이미지를 바꾸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미담을 꾸며낸 것 같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최근 자신의 재심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가 확인한 사실 중에는 충분히 재심 사유가 될 만한 증거들도 있다고 했다. 이씨는 13년 전 자신의 선택에 대해 "용기가 없었다. 처음부터 사실과 다른 점을 바로 잡도록 목숨을 걸고서라도 용기 있게 나서지 못한 점이 정말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한 가지 위안으로 삼는 것은 그런 사람이 별 하나를 더 달고 대장이 되는 일은 막았다는 점"이라고 했다.
[관련 기사]
- 국민신문고 민원 때문에 교도소 간 대령을 아십니까(https://omn.kr/1m8gq)
- '국방부로 보내지 말라'는 대령 민원을 왜 국방부로?
(https://omn.kr/1m8ii)
- '선임병의 의로운 죽음' 막전막후... 대령-사단장의 엇갈린 주장(https://omn.kr/1m8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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