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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우 '시카고' VS 헬 '청계천'

장백산-1 2008. 11. 7. 16:12

오바마 연설에서 4년후를 생각한다.
번호 176946  글쓴이 가을들녘  조회 981  누리 502 (502/0)  등록일 2008-11-7 05:43 대문 29 추천


오바마 연설에서 4년 후를 생각한다
(서프라이즈 / 가을들녘 / 2008-11-07)


어제 쓰려고 했는데, 일이 있다 보니 늦게야 씁니다.

오바마의 당선연설(Victory speech)은 그야말로 명연설이었습니다.

'지독한 노빠'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거의 모든 연설을 다 보고 읽어봤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연설들을 꽤 많이 봐왔지만, 그저께 오바마의 당선연설은 그 모든 위대한 연설에 절대 빠지지가 않더군요.

링컨과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이 버무려져 있어서 감동은 더했습니다.

보도를 통해 다 아시겠지만, 그 유명한 링컨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 중 한 대목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a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라는 문구는 그대로 인용을 했고,

 

연설 후반부에 한 번 더 링컨 대통령을 멋지게 언급합니다.

우리 모두 기억합시다. 바로 이곳 일리노이주에서 공화당의 깃발을 앞세우고 백악관에 들어갔던 한 사람이(링컨을 말합니다.) 있었습니다.

그가 속한 공화당의 기본이념은 바로 자립(Self-reliance), 개인의 자유, 그리고 국가통합입니다. 이 가치들은 우리가 모두 함께 공유하는 가치들입니다.

비록 오늘 밤 민주당은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우리는 겸양과 함께 우리의 성취들을 되돌릴지 모를 분열을 극복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해야 합니다.

 

(Let's remember that it was a man from this state who first carried the banner of the Republican Party to the White House, a party founded on the values of self-reliance and individual liberty and national unity. Those are values that we all share. And while the Democratic Party has won a great victory tonight, we do so with a measure of humility and determination to heal the divides that have held back our progress. )

 

민주당 출신 대통령의 승리연설에 링컨의 발언과 링컨의 생각, 그리고 공화당의 이념에 대한 인정이 절절히 묻어나옵니다.

일상적인 연설이 아닌,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선거에서 승리한 날 밤 민주당 지지자들 앞에서 오바마는 링컨과 공화당과 함께 걷기 위한 겸양을 말합니다.

막바지에 한 번 더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다(We are not enemies but friends)"라는 표현도 링컨의 입에서 그대로 빌려왔습니다.

마틴 루터 킹Jr.의 연설 대목 역시 살짝 빌려왔습니다.

연설 앞부분에 있더군요.

 

오늘 밤 여러분이 보여주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에 대하여 냉소적이고 두려워하며 의심을 가졌던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의 수레바퀴에 손을 얹게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의 길로 그 방향을 바꾸도록 만들게 하였습니다

(It's the answer that led those who've been told for so long by so many to be cynical and fearful and doubtful about what we can achieve to put their hands on the arc of history and bend it once more toward the hope of a better day.)

 

여기서 '역사의 수레바퀴~'하는 부분이 바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중 한 대목을 살짝 빌려온 부분입니다. (마틴 루터 킹: I'm convinced that we shall overcome because the arc of the universe is long but it bends toward justice)

제가 한국인이다 보니, 아무래도 오바마 연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꼽자면 이 부분이었습니다.

 

좌절과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으로서 제가 내리게 될 결정과 정책들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하게 될 모든 도전들 앞에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항상 정직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일치하지 못할 때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지난 221년 미국 역사에서 늘 그래 왔듯이 조국을 다시 만들어가는 이 과업에 함께 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There will be setbacks and false starts. There are many who won't agree with every decision or policy I make as president. And we know the government can't solve every problem.But I will always be honest with you about the challenges we face. I will listen to you, especially when we disagree. And, above all, I will ask you to join in the work of remaking this nation, the only way it's been done in America for 221 years — block by block, brick by brick, calloused hand by calloused hand.)

 

항상 정직하겠다는 저 약속, 당신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약속하고, 당신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하는 저 호소. 그리고 당신의 든든한 대통령이 되어서 당신을 지켜주겠다는 약속. 감동적이더군요.

정말 정직한 대통령을 갖는다는 것, 이런 말을 이렇게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연설 말미를 애틀랜타에 사는 '앤 닉슨 쿠퍼'라는 106살 할머니의 이야기로 끝맺습니다.

그녀는 엊그제 생애 첫 투표를 했나 봅니다(생애 첫 투표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명확하진 않습니다만, 전체 문맥상 그렇게 읽힙니다.).

여성과 흑인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게 수십 년 전이지만, 그녀는 왜 단 한 번도 투표를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왜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중장년층의 흑인들이 그동안 한 번도 투표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지독한 패배감과 증오, 절망, 좌절, 공포를 우리가 얼마만큼이나 짐작할 수 있을까요?

 

혹시나 오바마 연설을 보지 못하신 분들 계신다면 꼭 인터넷을 통해 접해보시기 바랍니다. 잘 된 번역을 올려드리고 싶습니다만, 이미 꽤 그럴듯한 번역들이 많이 있더군요.

여담으로, 오바마의 엊그제 연설에는 많은 미국의 지명들이 나옵니다. 그 어느 하나 허투루 언급된 것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첫 인사가 Hello! Chicago! 아닙니까?

 

1. 시카고: 1871년 시카고는 대화재로 온 도시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됩니다. 지금의 시카고는 그 이후 재건된 도시이고요. 지금 대공황에 맞먹는 경제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미국의 새 대통령의 당선연설이 바로 시카고에서 있었다는 것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요?

 

2. 스크랜튼, 델라웨어: 부통령 당선자 조 바이든의 고향이 바로 펜실베이니아주의 스크랜튼(Scranton,PA)이고 그의 정치적 고향이 바로 델라웨어주입니다. 지금 조 바이든이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으로 있습니다.

 

3. 워싱턴 vs 드모인, 콩코드, 챨스턴: 이 대목은 연설문을 좀 옮겨놓고 말씀을 드려야 할 듯싶네요.

저는 절대로 이 자리에 설 가능성이 가장 많았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애초에 많은 돈을 갖고 있지도 못했고 많은 지지선언을 이끌어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의 선거캠페인은 워싱턴의 멋진 홀이 아닌, 드모인의 뒷마당, 콩코드의 어느 거실, 그리고 찰스턴의 처마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I was never the likeliest candidate for this office. We didn't start with much money or many endorsements. Our campaign was not hatched in the halls of Washington. It began in the backyards of Des Moines and the living rooms of Concord and the front porches of Charleston.)

 

 

저는 이 대목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광주경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돈도 없고, 지지하는 현역의원이라고는 천정배 의원 하나뿐이었던 당시의 노무현 후보가 말이지요. 미국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이 아닌 시카고에서 경선준비를 시작한 오바마에게 민주당 후보경선은 그야말로 오바마 돌풍의 진원지였습니다.

 

민주당의 첫 번째 경선지가 바로 아이오와주 드모인이었습니다. 첫 번째 경선이었고 과연 떠오르는 샛별 오바마가 도대체 몇 등을 할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었죠. 여기서 오바마가 1등을 해버렸습니다. 그 뒤로, 아이오와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마치 우리가 광주의 선택을 그 어떤 지역경선 결과보다 더 감동적으로 받아들였듯이 말이지요.

 

뉴햄프셔주의 콩코드는 드모인에서의 프라이머리 직후에 열렸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압승이 예상되었던 이곳에서 오바마는 비록 2.6% 차로 석패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엄청난 역량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은 민주당 경선의 네 번째 지역이었지만 그보다는 첫 번째 남부 주라는 의미를 갖는 곳입니다. 흑인 민주당원들이 대거 투표에 나선 이곳에서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을 더블스코어 차이로 누르며 완벽히 대세를 장악해 들어가기 시작한 곳이지요.

 

4. 몽고메리, 버밍햄, 셀마, 애틀랜타: 이 네 지역은 '흑인인권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역들입니다. 역시 문장을 옮겨놓고 말씀드리지요.

그녀(앤 닉슨 쿠퍼 할머니)는 몽고메리의 버스에, 버밍햄의 호스 앞에, 셀마의 다리 위에, 그리고 애틀랜타에서 '우리가 극복할 것이다.'라고 말한 한 목회자 앞에도 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She was there for the buses in Montgomery, the hoses in Birmingham, a bridge in Selma, and a preacher from Atlanta who told a people that We Shall Overcome. Yes we can.)

 

 

몽고메리: 1955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일어났던 흑인들의 '버스 보이코트' 운동을 말합니다. 당시 몽고메리에서는 백인들은 앞좌석부터 앉고 흑인들은 뒷좌석부터 앉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날 버스가 앞에는 백인들만, 뒤에는 흑인들만으로 모든 좌석이 꽉 채워졌는데, 백인 한 명이 버스에 타게 되었고 당시 몽고메리시 규정에 의해 버스 운전기사는 흑인들 중 가장 앞쪽에 앉은(즉 백인들이 앉은 줄의 바로 뒷줄에 앉은) 흑인들에게 모두 일어나서 서서 갈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한 여성이 거부를 했고 이로 인해서 흑인들이 '버스 보이코트' 운동을 1년 넘게 진행하고 결국 연방대법원이 앨라배마주의 이런 반인권적인 좌석규정에 대해 연방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게 됩니다. 해결과정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버밍햄: 1963년 앨라배마주 버밍햄은 당시 미국에서도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 중에 하나였다고 합니다. 당시 버밍햄의 흑인인권운동가들이 마틴 루터 킹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흑인들은 불매운동, 버스보이콧, 연좌, 비폭력행진운동을 전개합니다. 이에 대해 버밍햄시는 마치 어청수가 그랬듯이 물대포를 쏘고 무려 3천 명을 잡아 가두는 짓거리를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바마가 바로 그 '버밍햄의 (물대포) 호스'라는 표현을 사용한 거지요.

 

 

 

 

 

(무식한 청와대 놈들은 오바마의 승리연설을 전혀 이해를 못 했습니다. 오바마가 버밍햄을 언급했다는 것은 정조대왕이 즉위 일성으로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라고 한 것처럼 당선된 날 밤, ‘나는 (저 위의 사진에서처럼) 물대포를 맞은 흑인의 아들이다! ‘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명박이가 오바마를 닮았다고요?

지나가던 개새끼가 다 웃습니다. 듣고 있는 어청수는 살이 떨려야 맞습니다.)

 

 

셀마: 1965년,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흑인들은 행진을 하며 흑인들의 선거권확대를 주장했습니다. 앞에 언급한 버스보이코트 운동이 있었던 몽고메리까지의 행진은 의미가 있지요. 그 행진대열 중, 에드먼드페트스 다리에서 경찰은 마치 어청수가 그랬듯이 최루액(소화분말)과 몽둥이를 휘둘러 수백 명을 다치게 했답니다. 그래서… '셀마의 다리' 이야기를…

 

 

 

 

 

애틀랜타: 바로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Jr 가 목회활동을 한 곳이 애틀랜타 입니다. 이번 개표과정에서도 미국 방송사들은 수시로 애틀랜타의 마틴 루터 킹Jr의 교회를 연결해 보여주더군요.


 

4년 후, 우리의 새 대통령이 촛불과 시청 앞 광장을 말하며 우리의 한을 풀어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는지요….

4년 뒤, 우리는 반드시 정권을 되찾아 와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 8개월을 지켜본 지금, 저는 이제 정권탈환이야말로 우리 진보개혁세력의 절체절명의 과제이며 국가의 명운이 걸린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저런 거짓말과 폭력이 아니면 나라를 운영할 능력도 없는 얼치기 사기꾼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겨놓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4년 후, 우리는 촛불을 들고 모일 것입니다.

 

엊그제 시카고 그랜트파크에 12만 명이 모였다는데, 시카고 인구수가 서울 인구수 보다 못합니다.

우리는 광화문 네거리를 촛불로 뒤덮고 그날의 승리자와 함께 '민주주의 회복'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 글과 사진은 위키피디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 가을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