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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정치' <>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장백산-1 2008. 12. 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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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정치가 내게 처음 왔을 때
번호 184367  글쓴이 블로거뉴스  조회 492  누리 202 (202/0)  등록일 2008-12-6 12:36 대문 13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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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정치가 내게 처음 왔을 때
(블로거뉴스 / 拂路車 / 2008-12-06)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가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아직 재판은 시작도 되지 않았으니 혐의와 유무죄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은 별로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노건평 씨를 옹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런 검찰 수사의 저의가 의심스러운 것이고, 자기들 멋대로 소설을 쓰는 언론사들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다른 정치인 관련 수사와 형평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공천 헌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어 의원직 박탈 위기에 놓였고, 미국에 있던 이재오 전 한나라당 대표는 귀국을 서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촛불 집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광우병대책회의 관계자들은 경찰의 귀신같은 체포 작전으로 구속되었습니다. 또 인터넷에서 특정 신문사에 대한 불매 운동을 권하고, 그들 신문사에 광고를 게재하는 기업들의 상호와 전화번호 등을 올린 누리인 20여 명에 대해 검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고 일부 기소한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한나라당 의원과 관련한 수사나 재판은 거의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네요. 대통령의 인척의 사촌 언니 게이트는 어떻게 되었다 말았다 하는 말도 없이 그냥 유야무야 묻히고, 대통령 사위 관련 사건은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선 직후 바로 부정 선거와 뇌물 수수 등으로 기소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 관련 재판은 8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진척이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해당 의원들은 하는 일도 없이 국세만 받아먹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통령은 인자한 모습으로 가락동 시장에 나타나 시장 상인들에게 자상한 대통령의 모습을 과시하였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가락동 시장 출현을 정부에서는 '민심 행보'라고 말하지만, 그런 대통령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쇼를 해라.' 라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시장 상인에게는 그렇게 인자한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에게는 어찌 그리 무섭고 인색한 아버지가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공안(公安)이라는 말은 영어로 하면 'Public Peace' 입니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편안히 유지되는 상태'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검찰이나 경찰이 공안 기관인 이유는 바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편안히 유지하는 선봉적인 국가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안 정국'이라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사전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을 '공안 정국'이라 부르는 데에는 당연히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정부와 집권 세력이 국민들의 저항과 성난 민심을 제압하기 위해 공안 기관을 동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국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공안 정국'이라는 말은 원래가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공안 정국'이라는 이 오래된 표현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말 그대로 '공포 정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이 끝나고 왕과 귀족들은 끌어내려졌지만,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용돌이치는 프랑스의 혼란상을 극복하겠다고 나선 '쟈코뱅당'의 로베스 피에르는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기요틴(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었죠. 그 유명한 '공포 정치'입니다. 프랑스 시민들은 '공안(公安)'을 원했지만, 로베스 피에르는 '공포(恐怖)'를 원했습니다.

 

 

그가 만든 것은 '공안위원회'였지만, 그가 행한 정치는 '공포 정치'였습니다. 프랑스 시민들은 국민들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합의할 수 있는 정치를 원했지만, 로베스 피에르는 국민들이 자신을 두려워하여 복종하는 정치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공포'를 통해 이루어진 권력과 권위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으며, 로베스 피에르 그 자신도 결국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 끌어내려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올해 초 '공공의 적' 시리즈인 영화 '강철중'이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세우며 흥행 가도를 달렸습니다.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는 경찰과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를 상당 부분 개선시켜 주었으며, 검찰과 경찰이 '공공의 적'들과 싸우는 진정한 공안 기관이라는 믿음도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지금, '공공의 적' 속의 경찰과 검찰을 기다리는 시민들은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공공의 적'에 나오는 경찰과 검찰의 모습이 '현실'이라기보다는 '바람'일 뿐이라는 회의가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잔혹한 살인 사건과 엽기적인 사건의 범죄자는 번번이 놓치고 잡지 못하는 경찰이, 높으신 양반들의 파렴치한 범죄에는 한 없이 관대한 검찰이 전단지를 붙인 시민들과 실랑이하다가 '공무집행방해죄'로 잡아넣고, 불매 운동을 벌이는 소비자를 출금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지금 누가 '공공의 적'이고 누가 '공공의 수호자'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지금의 '공포 정국'에 대해 우리나라 수만의 경찰과, 수천의 검찰들이 도매급으로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직은 정의감과 국민에 대한 봉사 정신으로 무장한 검찰과 경찰도 많을 것이고 아직은 더 많다고 믿고 싶습니다.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방패를 찍어야 하는 말단 경찰들과 전, 의경들 역시 대부분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공권력을 집행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에 대한 봉사'보다 '권력에 대한 봉사'가 먼저인 정치 검찰과 정치 경찰들입니다.

 

자신의 출세와 안위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정치 검찰과 정치 경찰로 인해 검찰과 경찰 모두가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으며 '공공의 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검찰과 경찰 내부에 '바른 목소리'를 내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없어서 더 슬픕니다. 토론과 합의를 중요시 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던 그 검찰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요? 참여정부 시절 수사권 독립과 경찰 개혁을 외치던 '경대생 출신 간부'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가장 먼저 불의에 저항해야 할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공포에 굴복한 것은 아닌가요? 진정한 의인은 언제나 '난세'에 그 실체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공무원의 권익을 높여주고 공무원들을 존중해 주던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의인의 행동으로 존경 받을 일이 아닙니다. 지금 공포 정치로 국민들을 겁주고 굴복시키려는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당당히 'NO'라고 외치는 검찰이나 경찰 내부의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결국은 한 통속이구나'하는 절망에 빠집니다.

 

'권불십년'이고 '화무십일홍'이라 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권력은 없습니다.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하고 '교언영색'하는 자들은 그 권력이 다 했을 때, 권력과 함께 사라지고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공포 정치'는 국민들의 입을 닫을 수는 있겠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열 수는 없습니다. 민초들은 밟으면 밟을수록 잡초처럼 강인해지고 용감해집니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을 겁주고 옥죌수록 전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인기는 더욱 커져만 갈 것입니다.

 

한 때 청와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던 시민들을 향해 정부는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민들이 청와대를 등지자, 갑자기 어깨죽지를 잡아채며 말을 잘 들으라고 겁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을 멱살을 잡고 '너희가 말을 안 들어서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며 해코지만 하고 있는 이 정부가 절망스러운 이유입니다. 국민들을 세뇌시키고 공포 정치를 일삼는 북한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열심히 북한의 독재자를 닮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정말 북한처럼 살자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권력을 얻는 것은 쉽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 권력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점점 더 정보화 되고 현명해집니다. 대통령이 시장에 나가 목도리 한 번 둘러준다고 세상 민심이 변하지 않습니다. 이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눈과 귀로 다 보고 듣고 알게 된 시민들의 입을 막는다면 시민들은 저항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공포정치 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면, 언젠가는 그 서슬 퍼런 공포정치의 몽둥이가 당신을 덮칠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 마르틴 뉘멜러

 

나찌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가둘 때, 나는 잠자코 있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조에게 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조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태인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내게 왔을 때는, 아무도 항의해 줄 이가 남아있지 않았다.


※ 출처 - http://blog.daum.net/lavie75/17039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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