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알래스카 인디언
(서프라이즈 / 오컴 / 2008-12-19)
1.1823년,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존 마셜(J. Marshall)이 눈에 띄는 판결문을 하나 썼다(* J. Marshall - 미국의 법학자이자 정치가. 미국 헌법의 틀을 만들었고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연방 대법원 판사로 재직했다).
사람들이 대체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그는 무척 솔직하게 접근했다. 미국 정부,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유럽식 미국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 대륙을 차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청교도들과 식민 지배자들이 여기에 상륙했을 때 이 대륙에 아무도 안 살고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원래 살던 사람들, 즉 인디언들이 이 땅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도 거의 없다.
오늘날 연방 정부는 미국 땅의 33퍼센트는 협정에 의해 양도받은 적이 없고, 따라서 불법적으로 전유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리고 원주민이 아닌 우리는 어떻게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해 마셜은 이렇게 말했다. 존슨 대 매킨토시 소송 재판의 판결 내용이었다.
"발견한 것으로 자격이 생긴다. 그 자격은 점유로써 완성될 수 있다.""사람 사는 땅을 발견해서 정복지로 바꾼다는 주장이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인다 해도, 처음부터 그 원칙이 주장되었고 그 후로 계속 유지되어왔다면, 그 원칙 아래에서 나라가 세워졌고 유지되어왔다면, 그 공동체 대다수의 재산이 그것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원칙이 토지 소유의 법이 된다. 그것은 의문시되어서는 안 된다."그 말을 번역하면 이렇다.
정복이 공동체의 기초가 되었다면, 그것이 없이는 공동체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면, 정복은 의문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더욱더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천부 인권에 반한다 하더라도, 또 문명국가의 관습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제도에 필수적인 것이어서 그것 아래에서 나라가 자리 잡아왔다면, 그리고 인권과 관습 양쪽의 실질적인 조건에 맞게 적응해왔다면, 그것은 이성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법정에 의해 거부되어서도 안 된다."
"개인들의 자의적인 견해나 억측이 어떠하든, 정복으로 인해 부여된 자격을 정복자의 법정이 부인할 수는 없다."
이것도 번역해보자.
"제도 전체가 부정의에 기초하고 있으면 대법원은 이 부정의를 법률로 만드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좀 더 의역을 하자면 이렇다. 인디언 한 명 죽이는 것은 증오범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 전체를 빼앗는 것은 "이성의 지지를 받는 것이고, 법원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데릭 젠슨의 『거짓된 진실』중에서 p.23~>
2.
1968년, 알래스카 북극권의 프루도 만에서 세계 최대급 유전이 발견되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유전 개발의 파도는 어느새 북극권 야생 생물 보호구역까지 밀려와 있었다. 그 유전 개발은 미국 전역에 대대적인 자연보호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현대 문병을 유지시키는 생명선인 에너지와 소중한 자연의 관계라는, 인류가 직면한 환경문제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논쟁의 핵심 사안은 유전 개발이 카리부(Caribou)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또한 그 상황은 카리부 사냥에 의존하는 내륙 에스키모와 아사바스칸 인디언의 생활과도 깊은 관계가 있었다.
발견과 망각이 거듭되어온 알래스카에서도 원주민이란 존재는 늘 잊혀지고 소외되어왔다. 유전 개발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가 되자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알래스카는 과연 누구의 땅인가, 라는 소박한 의문을 던졌다. 이 움직임은 알래스카의 미래를 크게 바꾸었다.
1971년에 성립된 법안은 오랫동안 애매하게 내려오던 알래스카의 토지문제에 한 가지 결론을 내놓았다. 알래스카는 국가, 주, 그리고 원주민 사이에서 분할되고, 지도 위에는 그물눈처럼 경계선이 그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보다 심각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만들어내게 된다.
원주민은 이 법안으로 알래스카 전역에 미치던 토착적인 권리를 잃고, 10억 달러의 보증금과 16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을 지정받았다. 사유재산으로 지정된 이 땅은 원주민들로 조직된 각 지역법인이 운영한다. 즉, 원주민 모두가 주주가 된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내용을 가진 이 법안은, 본래 전통적인 수렵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분배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내도록 규정해놓았기 때문에, 사실은 개발사업이라도 벌이지 않으면 토지를 유지, 건사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사업 경험이 없는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법인조직은 대개 경영이 악화되었다.
또 마을공동체의 구조도 변하고 있다. 원주민들에게는 애초에 땅을 소유한다는 관념이 없었다. 땅은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수렵생활 속에서 모두가 공유하는, 막연하고 경계선이 없는 세계였다.
새로운 법안에 따라 거액의 자금과 땅이 원주민 법인조직에게 주어지고 미국 자본주의 경제에 편입되었지만, 원주민들의 중심을 이루는 생활은 변함없이 수렵이었다. 그들은 땅을 사유재산으로 보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주위에 그어진 그물눈 같은 경계선에 커다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들 소유로 지정된 땅 위에 카리부 떼가 지나간다. 그러나 어느 날에는 경계선 밖을 지나갈지도 모른다. 만약 그곳이 국립공원이라면 원주민들은 카리부를 찾아 경계선을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원주민들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사고가 자연의 불확실한 순환주기에 대하여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라는 사유재산과 땅에 그어진 경계선은 그들의 유연한 세계관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카리부가 광대한 땅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서로 다른 공간 개념을 가진 세계에서 살아온 것이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중에서 pp.58~62>
3.
알래스카 원주민이 안고 있는 알코올 중독 문제는 그 뿌리가 깊다. 이상할 정도로 높은 자살률, 폭력, 가정 붕괴... 많건 적건 그 모든 것에 알코올이 관계되어 있다.
전통적인 삶과 파도처럼 밀려오는 서구 문화 사이에서 흔들리며 정체성을 잃고 자신감을 상실해가는 그들에게, 알코올은 도저히 어찌하지 못하는 배출구 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나로서는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약간 망설여진다. 자칫 알래스카 원주민 사회 전체에 어두운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소소한 일상생활을 꾸려가며 사는 수많은 에스키모와 인디언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알래스카 원주민 소년이 15세에서 25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열 명 중에 한 명이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있다는 것, 실제 자살률도 같은 연령대의 백인에 비해 10배나 많다는 ……. 이는 못 본 척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문제였다.
1985년 3월 21일, 유콘 강 유역의 에스키모 마을 알라카나크. 그날 한 젊은이가 마을 밖 툰드라로 걸어가 제 가슴에 직접 총탄을 쏘았다.
'내내 이래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겨우 찾았다….' 라는 글을 휘갈겨 써놓고….
루이스 에드먼, 스물두 살. 루이는 증거 없는 절도 혐의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겨우 찾아낸 이유란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일까? 갈겨쓴 글은 이렇게 계속된다.
'장래는 캄캄하다.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나는 점점 쓸모가 없어져 간다. 아등바등 발버둥쳐서 따라가려고 했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 아이가?" 고교 시절, 루이스는 그 마을에서 가장 우수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고교를 졸업한 루이스는 마을을 떠나 페어뱅크스의 알래스카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인구 550명밖에 안 되는 알라카나크 마을에서 16개월간에 걸쳐 펼쳐진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젊은이들의 자살이 이 작은 에스키모 마을에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나간다.
멜빈 토니 23세, 10월 22일
스티븐 캄메로프 19세, 1월 22일
줄리 오글린 21세, 3월 18일
카렌 조지 17세, 5월 18일
벤자민 에드먼드 21세, 5월 22일
티모시 스타니슬라스 25세, 6월 25일
앨버트 하리 29세, 6월 25일
1년 4개월 동안 한 마을의 젊은이 8명이 잇달아 생명을 끊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다짜고짜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그 젊은이들에게도 저마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중첩되는 회색지대가 어딘가 있지 않을까.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중에서 pp.89~91>
4.
유럽인들이 도래하기 전, 남아프리카는 안정되고 조화롭고 오래된 공동체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그 중에는 산(San) 족도 있는데, 그들은 거의 200만 년 전부터 대대로 그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지속한 인류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코이코이 족도 있었는데 네덜란드 이주자들은 경멸의 의미를 담아 그들을 호텐토크 족(말 더듬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불렀다. 또 반투 어족이라고 묶이는 언어권의 여러 종족들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에 온 유럽 탐험가와 이주민들의 악행이 더 심했는지, 다른 모든 곳의 유럽인들이 저지른 짓의 되풀이였을 뿐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들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했을 뿐 자신들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네덜란드동인도회사는 지금의 케이프타운 부근에 교역소를 세우고 매년 확장해갔다.
그곳의 사령관이었던 얀 반 리벡은 "네덜란드에 들어갔어도 그런 식으로 할 수 있었겠느냐"는 질문에 마셜보다 160여 년 앞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전쟁으로 칼에 의해 정당하게 획득한 것이고 그것을 계속 보유하려는 것뿐이다."
코이코이 족이 계속해서 항의했지만, 그는
"그들에게 진정 우리를 몰아낼 용기가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의 정복에 대한 대가로 그들은 더 많은 땅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이코이 족은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노예로 전락했고 종국에는 멸족에 이르렀다. 산 족도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 반투 족은?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곳이 반투 족 영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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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과 제도. 남아프리카에서는 17세기 전부터 소수의 백인을 정치. 경제적으로 차별했으며, 이러한 인종차별주의는 1948년 국민당의 단독 정부 수립 후 제도로서 확충. 강화되었다.)는 범죄가 아니었다. 그것은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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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들은 노동자가 다이아몬드를 몰래 숨겨 나갈까 봐 걱정스러웠고 패스 법은 자유로운 노동 시장 형성을 막는 데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용기간 동안 회사의 '컴파운드(울타리를 친 원주민 노무자의 주택 지구)'에 아프리카인 노동자들을 가두어두기 시작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죄수 노동에 기원을 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몇 년씩이나 되는 계약 기간 동안 가족과 모든 외부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접촉 불가 규칙에서 예외를 인정받은 사람들은 선교사들뿐이었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마음에 간단한 기독교 윤리 두 가지를 심어주라는 명을 받았다. 그것은 '복종의 미덕과 노동의 고귀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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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은 그 후로 더 많이 제정되고 통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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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들의 목적은 "이 불쌍한 어린이들을 나태와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들이 세상으로 나가서 노동의 고귀함이 깃든 어떤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부드러운 자극 같은 것을 주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주인과 노예 법안'을 발의했는데, 그 법안은 일반적으로 '자기 검둥이 때리기 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 퍼즐의 마지막 조각으로, "특별 보류지를 제외한 토지의 소유권이 백인들의 손에 들어가도록 영원히 확립하는 정책이다. 남아도는 젊은 인력이 게을리 땅에 웅크려 있는 대신 임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토지 소유주가 아닌 백인 남자들이 모두 그렇게 하듯이 말이다."
이로써,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탈취와 절멸, 전국적 규모의 인종 분리가 일어난 후 '광산은 필요한 노동자들을 얻었다.'
<데릭 젠슨의 『거짓된 진실』 pp.29~32> 발췌.
5.
가혹한 자연 속에서 수렵으로 살아온 알래스카 원주민(에스키모, 아사바스칸 인디언, 알류트)들은 지난 1백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현대화라는 파도를 겪었다. 그 땅에 처음 찾아온 사람들... 모피업자, 선교사, 교육자...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을 이 땅에 고스란히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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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경제가 침투하고, 전통의 샤머니즘이 추방되고, 학교에서는 새로 영어를 가르치고, 토착 언어를 말하면 비누로 입을 씻어야 하는 시절이 시작되었다.
미국이 동화정책이라고는 해도, 태고적부터 그들의 삶을 엮어주고 서로를 맺어주었던 보이지 않는 끈은 가차없이 잘려나갔다. 그 보이지 않는 끈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문화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화의 세례는 에스키모 가족에서 남자의 지위를 시나브로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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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편해지는 한편에서 남정네들은 점차 자신감과 긍지를 잃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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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젊은이들 사이에 불러일으킨 물질문화에 대한 동경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그렇다고 수렵생활이 전부였던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 속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유랑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여기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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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사회에서 그 꿈을 실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백인사회에서는 알력을 겪어야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도 능력을 살릴 일터를 찾지 못하는 현실. 그 결과 교육을 받고서도 사회에서 탈락해가는 젊은이가 적지 않은 것이다.
알래스카 원주민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한편으로는 현재의 학교 교육이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교육이야말로 그들이 살아가기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패러독스 또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모순 속에서도 알래스카 원주민 사이에서는 지금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에스키모, 아사바스칸 인디언, 알류트... , 서로 다른 부족들이 손을 잡고 문제점을 직시하고 조금씩 일어서려 하고 있다. 시대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그것은 미미한 움직임일지도 모르지만, 한 줄기 희망인 것이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pp.91~97> 발췌함.
6.
침탈이 어떤 정책을 업고 어떤 수순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관철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적나라한 사례를 두 권의 책에서 보았다.
선교사란 미소 짓는 가면을 앞세우고 등 뒤에 칼을 감춘 그들의 가공할 폭력이 있어 소외와 배제가 생성됐으며, 오늘, 이 땅에서 벌이는 광란의 1%의 작태와 별개가 아니기에 함께 생각해보고자 발췌해 올린다.
근대화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층의 절대빈곤과, 그 빈곤의 대물림 또한 이와 유사하다.
오늘, 원주민을 밀어내는 뉴타운을 공약한 한날집단에게 몰표를 안겨준 천박한 이기 또한 이들과의 야합이란 점에서, 시민의 각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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