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예수의 길, 노무현의 길

장백산-1 2009. 1. 9. 14:22

예수의 길, 노무현의 길
번호 192134  글쓴이 두 아들 아빠 (kkh6934)  조회 2050  누리 1128 (1136/8)  등록일 2009-1-8 17:37 대문 104 추천


예수의 길, 노무현의 길
(서프라이즈 / 두 아들 아빠 / 2009-01-08)


오랜 세월 동안 베스트셀러가 된 성경! 그러나 팔린 만큼 제대로 읽히지 않은 것도 성경을 따라잡을 책이 없다. 노무현에게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모습을 반추해 본다. 그래야만 세상의 눈으로 노무현이 이해되지 않은 부분을 그나마 어림잡을 수 있다.


보잘것없는 출신과 외모와 신분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는 폼 나는 곳의 출신이 아니고 나사렛이라는 시골 촌구석 출신이다. 복음서에 '나사렛 예수여!' 하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지금 말로 하면 '촌놈 예수야!'라는 뜻이다. 출신지가 로마도 아니고, 식민지인 유대국의 수도 예루살렘도 아닌, 촌에서 출신 한 이유는 뭘까? 더구나 육신의 아버지는 제사장도 아니고, 서기관도, 세리도 아닌, 하찮은 목수였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은 부산도, 김해도 아닌 봉하라는 벽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노판석 씨는 세상적 능력으로 보아 그리 유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출신지나 아버지를 미루어 보아 고액 홈스쿨링을 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당시 유대사회의 두 기득권 그룹인 사두개파나 바리새파에 속해 있지도 않았고, 은둔을 한 에세네파도 아니었다. 그냥 무지렁이 서민 출신이었다.

 

노무현 역시 출신지는 물론이거니와,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되고 나서 엄청난 멸시를 받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울 때는 그렇다 치고, 판사나 변호사를 할 때쯤엔 지방대학 졸업장 하나 따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을 터인데 말이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서울대는 아니더라도 차 순위 대학이라도 나왔으면 인정하겠는데…'

 

예수의 외모를 나타내는 성경 구절이 있다. "그는 주 앞에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 나온 줄기 같고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업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움도 없다."(사 53 : 2) 그런데 교회가 그려낸 예수의 모습은 훤칠한 키에 긴 생머리와 턱수염까지 멋진 모습이다. 이것만 보아도 이 세상이 성경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알 수 있다. 노무현! '노개구리'라고 비아냥거렸다. 설치류도 아니고 양서류에 비교했다.

 

노무현은 애초에 전통적 기득권과 그 하수인들과는 온도 자체가 달랐다. 뿐만 아니라 힘 앞에 적당히 타협하고 결국엔 굴복하고 마는 민초들과도 달랐다. 그들과 냄새가 다르기 때문에 양쪽에서 개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욕심 때문에 진리를 싫어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억압받고 있는 억울한 자들의 편에 서셨다. 그리하여 노예나 여성들이 많이 따랐고 개중에는 자기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자식 세대만큼은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예수를 끝까지 따르려고 했는데, 그 수가 상당한 적이 있었다. 이때 예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주인을 나 그리스도처럼 받들어라!" 이 말을 듣고 모두들 예수 곁을 떠났다. 판을 뒤집어도 인간은 또 지배와 피지배 계급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사람 중에 더러는 전통적 기득권을 와해시켜 그들의 재물을 나누어 받기를 원했던 이들이 있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뜬금없이 '원칙과 상식'을 외치고 나섰다. 義는 기본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원칙과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사람들은 그의 말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영혼에 똥이 묻은 이웃을 팔아먹은 친일의 세력들이 우리 사회 전체를 개똥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악인이 힘을 쥐게 되어 있고 그들의 일을 대신해 줄 세리 같은 앞잡이가 있어야 하며, 민란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 완충시켜 줄 집단인 바리세인들도 필요하고 대책 없는 집단인 민노당 같은 열성당원도 있어야 했다. 고통스러운 식민지 삶의 영혼을 달래줄 거룩한 척하는 제사장과 서기관도 필요했다. 그 나머진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일할 무지렁이 민초들만 있을 뿐이다.

 

2000년 전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강력한 하나님의 힘을 빌려 로마에 붙어먹고 사는 세리들과,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 열중하고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는 바리세인들 몰아내고 나아가서는 로마까지 멸하여 자기들의 억울함을 한꺼번에 풀어 주기를 원했다. 그런 메시아를 원했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는 자신들이 원하던 메시아가 아니었다.


온도가 전혀 다른 대통령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여야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그동안 해왔던 방식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었다. 반대편의 약점을 들춰내어 적당히 누르고 가진 자에게 더한 특혜를 주고, 놀고먹는 정치인의 지갑을 채워줘야 하는데 노무현은 그런 짓을 전혀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언론 권력과 각을 세우는 것으로 스스로를 묶어 그 모두를 원천 봉쇄시켰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청와대 안에서 그 누구와도 독대하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밀실 정치의 대가인 정대철이 독대를 신청했다가 비서관이 녹음기와 필기도구를 들고 옆자리에 앉자 별말도 못하고 나왔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를 두고 "정치도 모르는 대통령"이라며 정대철 스스로가 밝힌 적도 있다.

 

그뿐 아니라 국내외 정보를 다 가지고 있는 국정원장과의 연례 직접보고도 없애 버렸다. 인정받은 권력인 검찰이 바로 서길 원했다. 그래서 임명 초에 평검사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지만 그들은 헛소리만 해댔다. 이때 삼성과 BBK 특검이 별 볼일 없이 끝날 것을 미리 예견했으리라! 임기 마지막엔 방송사 PD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들에게 양심을 가지고 언론을 지켜 줄 것을 당부했다. 여기는 효과를 조금 보고 있다.


보복하지 마라! 네 이웃을 사랑해라!

예수를 직접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은 로마인이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들이었다. 예수를 고발한 사람은 예수의 제자였고, 로마 총독에게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부추기며 고한 자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교단의 어른이며 목사들이었다. 그들의 종들도 모멸을 주었다. 빌라도 총독은 민란이 두려워 예수를 처단하는 일에 오히려 겁을 먹었다. 하지만, 완벽한 합의를 보인 유대인 지도층 전체를 확인하고는 자기에게 협조하는 자들에게 '예수 죽임'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노무현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합의하에 탄핵당했다. 사과하면 탄핵만큼은 안 하겠다고 했지만 그 순간 식물 대통령을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탄핵 실패 이후 탄핵의 지도부는 앞으로 닥칠 칼바람을 피하려고 쥐구멍으로 숨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아무에게도 보복하지 않았다.

 

숨었다 나온 인간들은 자기들이 쓸데없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이 치욕으로 느껴서 더욱 미친개처럼 노무현을 물어뜯었다. 숨었던 쥐구멍에서 쥐 한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그때 권력의 개 노릇을 시키지 않은 노무현에게 감사해야 할 검찰이 오히려 칼을 들이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잔혹한 보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것인데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은 구약이 말하는 동해보복의 원칙도 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망신조차 주지 않았다. 원수라 할지라도 그들의 생명력을 손상시키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 이상을 따른 사람이다.

 

오히려 연정을 권했다. 이 사건이 노무현을 더욱 고립시키게 되었는데 노무현이 타고난 왕따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눈에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국민이 아닌 그저 자신과 소속 당을 위하는 정치꾼들이기 때문이었다. 자기 세력을 규합시키는 방법 중에 마초적이며 가장 고전적 방법은 주적을 두고 그들과 각을 세우는 일이데, 실제는 적이 아니라 파트너였다. 여야와 제도권 정치 밖의 진보로 나뉘는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서로를 비판하며 경쟁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실제는 국민을 팔아서 각자 자기 배 속을 채우는 자들이었다.

 

예수를 매달 듯이 결국엔 노무현을 매단 자들은 노무현의 탄핵을 피를 빨아 당선된 아직도 국회의원직을 가지고 있으며 생쇼를 하고 있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다.


권력을 나누는 권력자는 없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 둔 이유는 복음을 이 세상에 확장하기 위함이지 자신의 사역을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일을 시킬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그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독생자다.

 

노무현은 집권여당의 독립을 보장했다. 당에서 추천한 사람을 장관에 흔쾌히 임명도 했다. 권력기관인 검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 등에 압력을 가하거나 특별한 사건에 간섭한 적이 없었다. 이를 두고 무장도 하지 않고 싸우다 졌다고 하는데 그 반대로 했다면 역사의 진보는 있을 수 없었다. 오히려 악과 선이 구분도 되지 않을 만큼 혼돈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노무현과 계급장 떼고 맞짱 뜨자던 김근태는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는가?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 일부 넘겨주려고 애를 쓴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런데 당시 경찰은 상황과 주제 파악도 모르고 완전한 수사권을 요구했다. 이 세상에 어느 권력자가 한 집단만 휘어잡으면 될 일을 골치 아프게 또 다른 집단에 같은 권력을 쥐여 주겠는가!

 

경찰이 다 멍청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수사권 문제가 불거지자 검찰이 경찰의 수뇌부를 압박하거나 협박하여 논의 자체가 되지 않게 만들었을 확률이 크다. 장담하건대 다시는 경찰에 힘을 실어 줄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노무현 같은 공정한 심판관도 없이 경찰 스스로가 피 튀기게 싸워 쟁취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 경찰은 절대로 그렇게 못 한다. 권력의 개 노릇을 너무 오래했기 비굴한 습성이 뼛속 깊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균형을 이루고 있는 듯 보이는 속임수!

이 세상은 선인보다는 교언영색을 일삼는 악인이 힘을 쥐게 되어 있고 그들의 일을 대신해 줄 세리 같은 앞잡이가 있어야 하며, 민란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 완충시켜 줄 집단인 바리세인들도 필요하다. '나도 가만히 있는데 너희들이 왜나서' 하는 집단 말이다. 악인은 보험으로 그런 집단을 항상 키우게 되어 있다. 지금의 민주당이 딱 그 격이다.

 

소수이지만 로마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열성당원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민주노동당처럼 현실적 대안은 전혀 없는 집단이다. 순진한 노동자, 농민을 앞세우는데, 좀 배웠다는 자들 중에 순혈주의식 자기 만족감에 빠져서 그들과 함께 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자들이 있다.

고통스러운 식민지 삶의 영혼을 달래줄 제사장과 서기관도 필요했다. 그들 모두는 다름대로 자기 영역을 차지하고 배를 두드리고 있었고 그 나머진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죽도록 일만 할 무지렁이 민초들만 있을 뿐이다.

 

한국의 정당사는 여당과 야당이 있었으며 야당보다 더욱 진보적인 재야와 시민단체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민주주의는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반면에 국민들은 힘들지 않을 때가 없었다.

 

이는 강력한 힘을 지닌 전통적 지배 세력을 위시한 겉모습만 그럴 듯한 세력들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자기들 잇속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고, 어떻게 하면 그들 집단에 밥숟가락을 놓을까 노심초사하는 우매한 민중이 더 큰 문제다. 전통적 기득권 세력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존재들이어서 아무나 끼어들게 하지 않는다. 그곳에 자기 밥숟가락을 넣으려다 개망신을 당한 사람은 이런 메커니즘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 땅에 義를 세울 수 있을까!

무력으로 악의 세력을 제압하면 안 된다. 오히려 악의 더 큰 반발과 이로 인해서 민초들의 피를 부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악한 왕조를 피로 몰아낸 이후 또다시 민초들의 피바람이 분 것을 보아왔다. 그게 겁이 나서가 아니며 하나님의 아들이 힘이 없어서 복음전도를 한 것이 아니다. 복음은 기적이 아니고 말로 하는 교육이다.

 

인격자끼리는 말로써 소통하고 가르치며 배워야 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노무현은 '정치란 무엇으로 하는가?'라는 질문에 '말로 합니다.'라고 했다. 교육을 바로 세워 앞날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차별된 교육으로 교육의 진정한 힘을 무너트리고 있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시켰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죽음으로 그 누구도 속죄시켜 줄 수 없다. 그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김구와 링컨을 존경했지만 그들과 달리 끝까지 살아남아서 이상이 현실에 핍박받지 않는 세상을 세우겠다고 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죽는 그날까지 예수를 의심했다. 심지어는 부활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예수의 뜻에 따라 순교의 길을 차례로 걸었다. 아무런 비석도 종적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그런 길을 걸을 자가 대한민국에 나와야 한다. 아니! 나올 것이다.

노무현의 분명한 선함이 악의 완전한 실체를 드러나게 했기 때문이다.

 

ⓒ 두 아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