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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란도에 숨은 뜻은 --- 도올 씀

장백산-1 2009. 1. 2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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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란도에 숨은 뜻은 - 도올 씀
2009.01.16 17:14 | 다불어 | 조회 784 | 추천 25 | 반대0 |
 

벽란도에 숨은 뜻은

 

북녘은 우리가 품어야 할 고향
남북 경협은 불황 이겨낼 발판

 

 

우리는 군사분계선이라는 정치적 단절로 인해 엄연히 연속되고 있는 국토까지 의식 속에서 단절시키고 있지만, 강화도 북단 철산리 철곶돈대만 가봐도 북녘땅이 코앞에 닿아 있다.

예성강이 흘러나와 한강과 마주치는 서해 하구에 벽란도(碧瀾渡)라는 매우 유서 깊은 나루터가 있다. 개성이 수도였던 고려시대, 이 벽란도라는 하항(河港)은 지금의 부산을 연상시킬 정도로 당시로서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제항구였다. 중국의 송나라 상인뿐 아니라 일본을 비롯하여 멀리 남양지방과 아라비아·페르시아 해상들까지 자주 드나들며 교역을 하던 곳이다. 육로로서도 중국에서 개성을 오자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나루터였고, 조선시대에도 대륙을 가자면 반드시 지나갈 수밖에 없는 황해우도(黃海右道)의 교통요지였다. 이러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예부터 고구려와 백제는 이 땅을 놓고 싸우기도 하였던 것이다. 무협영화에 나오는 긴 저잣거리가 뻗쳐 있는 나루터의 풍광을 생각해 보면 벽란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연상될 것이다. 이 항구 언덕 위에 벽란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었는데 송나라 사신 일행이 오면 반드시 묵는 관사였다. 벽란도라는 이름은 기실 이 벽란정 때문에 생겨난 별명이 고착된 것이다. 원래는 예성항이라 불렀다.


벽란도에 배를 대고 개성상인들과 거래를 하던 송나라 거상 중에 하두강(賀頭綱)이라는 호방한 인물이 있었다. 어느 날 벽란도의 저잣거리를 걷다가 스치는 여인의 호리호리한 미모에 그만 홀딱 반해버리고 만다. 그 절세미녀는 개성상인의 부인이었다. 거간꾼들을 통해 뒷조사를 해보니 그 남편은 바둑을 심히 좋아했다. 어렵게 다리를 놓아 그 남편과 내기 바둑을 두게 되었다. 하두강은 송나라에서도 내로라하는 바둑의 명수였다. 그는 자기의 실력을 속이고 처음에는 져주고 많은 재물을 내던졌다. 그러다가 슬금슬금 본 실력을 발휘하여 남편의 재물을 거의 다 빼앗아 버린다. 악에 북받친 남편은 마지막으로 미모의 부인까지 걸고 내기 바둑을 둔다. 어찌 당해낼 수 있으리오?

그토록 사모하던 여인을 손에 넣은 하두강은 그 아리따운 미녀를 배에 싣고 흥겹게 뱃노래를 부르며 송나라로 떠난다. 속임수 바둑에 걸려 아내를 빼앗긴 어리석은 남편은 벽란도 부둣가에서 울며불며 한탄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것이 바로 고려가요 ‘예성강곡’의 전절이다.

남편의 부덕함으로 송나라로 팔려가게 된 여인은 배 안에서도 절개를 지키고, 빠져 죽겠다고 협박하면서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배가 황해 복판에 이르렀는데 도무지 빙빙 돌면서 전진을 하지 않았다. 배에 탄 점복사가 이르기를, “이 배 안에 한 맺힌 절부(節婦)가 있노라. 이 여자를 데리고 더 지체하면 배가 뒤집힌다”고 신탁을 전하니, 하두강은 하는 수 없이 뱃머리를 돌려 벽란도에 이 여인을 내려놓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배에서 내린 여인이 야속한 남편을 원망하며 한 맺힌 심정을 노래한 것이 ‘예성강곡’의 후절이다.

왜 내가 지금 한가롭게 고려가요의 구절을 운운하고 있겠는가? 예부터 황해도 사람들을 ‘석전경우(石田耕牛)’라 일컬었다. 자갈밭을 묵묵히 갈고 있는 소, 잇속을 타산하지 않고 우직스럽게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북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남북 간의 경색된 국면을 소통시키려고 노력하다가 비명에 가고 만 황해도 해주 사람 김구(金九)를 생각하면 석전경우의 덕성이 구체적으로 연상될 것이다.

내가 ‘예성강곡’을 운운한 것은 북녘의 산하, 인물, 전설, 노래, 역사 그 모든 것이 결코 나로부터 소외될 수 없는 나의 실존의 일부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독도가 지켜야 할 우리 땅이라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북녘의 산하도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의 고향이라는 여유로운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진보와 보수를 운운할 때가 아니다. 빨갱이·파랭이를 논할 때도 아니요, 좌·우를 가르고 앉아있을 여유도 없다. 좌·우 할 것 없이 경제를 운운하며 잘살기를 희망한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세계경제의 불황을 타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불황이 닥칠수록 그 불황이 우리에게는 호황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축적된 남북교류의 성과를 활용하여 중소기업이 흥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 제조업을 진작시켜야 한다. 제조업의 바탕이 없는 허황된 금융기법에 의한 거품경제는 더 이상 추구해야 할 경제 모델이 아니다. 미국이 오늘날 위기에 봉착한 것도 제조업을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바탕이 살아있는 독일이나 일본은 불황에 대처하는 저력의 차원이 다르다.

때마침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북한의 교육받은 질 좋은 인력, 그리고 그들의 섬세한 손길, 그리고 개발 가능한 저가의 광활한 토지, 자원, 유리한 물류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엄청난 도약의 계기이다. 저임금에 의한 개발정책이라는 초보적 발상을 초월하여 남북한의 영토와 인력은 민족의 공영(共榮)을 위한 공동의 자산이라는 고차원의 사유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공영의 임팩트는 작은 일보(一步)라도 일파만파의 긍정적 효과를 지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을 차단한 채 경제활성화를 운운하면, 기껏해야 있는 자들에게 국고 털어 푼돈 나눠주는 정책이나, 대운하식 토목공사적 발상의 원초적·소모적 부양책밖에는 매달릴 것이 없게 된다.

북한 당국자들에게도 당부한다. 그대들은 큰마음을 지니고 민족의 미래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본질적인 문제 해결의 노력 없이 대결을 밀어붙이는 소아병적 발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여태까지 남북화해를 위하여 힘쓴 사람들의 땀방울, 민족의 공영을 위해 남한 재산을 다 정리하면서까지 민족사업에 헌신한 중소기업인들의 핏방울이 결코 정치적 허세로 좌우될 수 없는 고귀한 진실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절망감을 준다면 과연 이 민족사의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백범의 울분을 계속 반복하게만 할 것인가?

도올 김용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