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서프]
이명박 정부 들어 정치권의 종교 편향 논란이 심화된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종교란에 '방황'이라고 썼던 에피소드가
한겨레21에 소개돼 눈길을 끈다. 송기인 신부는 노 전 대통령의 입담에 속아(?) 천주교 세례를 준 일화도 털어놨다.
16일자로 보도된 한겨레21 최신호(제747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6월 대선 후보이던 당시
김수환 추기경을 찾은 자리에서 자신의 종교에 대해 "1986년 부산에서 송기인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아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얻었지만 열심히 신앙생활도 못하고 성당도 못 나가 프로필 쓸 때 종교란에 무교로 쓴다"고 말했다.
이에 김 추기경이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고, 노 후보는 "희미하게 믿는다"고 답했다. 김 추기경이 "확실하게 믿느냐"고 재차 묻자, 노 후보는 잠시 고개를 떨궜다가 "앞으로 프로필 종교란에 '방황'이라고 쓰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노 후보의 이 대답은 당시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됐다. 종교 표를 민감하게 의식하는 일반 정치인들과 달리 노 후보는 천주교인이라는 점을 내세우지 않고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송기인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경위도 눈길을 끈다. 송 신부의 얘기에 따르면 1986년 부산 미 문화원 사건 때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는데, 변론이 끝나면 신부와 함께 저녁을 먹곤 했다고 한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이 '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등장인물을 다 외워 송 신부가 깜짝 놀라자 노 전 대통령이 '이런 머리를 가지고 대학 문도 밟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것. 이에 송 신부는 '성당은 열려 있다. 성당에서 공부하라'고 노 전 대통령에게 권유했고,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함께 성당 교리반에 입교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부부는 1년을 다녀야 하는 과정에서 딱 4시간만 출석했고 결국 심사에서 낙제했다. 송 신부는 남천성당 정명조 신부(후에 주교가 됨. 2007년 선종)에게 "낙제생이 있으니 교리 교육을 시켜서 세례를 주시라"고 부탁했고 이에 정 신부는 "먼저 세례를 줘서 보내라, 그러면 제가 교리 교육을 시키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송 신부는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세례를 줬다. 노 전 대통령 내외는 남촌성당으로 옮겨 정 신부와 식사를 함께 했는데 그게 정 신부가 노 전 대통령을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 송 신부는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내가 성당에 나오지도 않을 사람에게 세례를 준 셈이 됐다"면서 성당에 나오라고 권유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신부님이 제게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성당에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성당을 찾아 미사를 보거나 청와대에서 종교 행사를 연적은 없다고 매체는 전했다.
종교 논란이 심해진 것은 이명박 정부 이후로 이 대통령의 정치적 성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매체는 지적했다. 기독교 장로 출신의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지만 다른 정치인과 구분 짓는 것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점이라고 것이다.
크리스천인 한나라당의 한 국회의원은 "내가 본 크리스천 정치인 가운데 이 대통령은 가장 독실한 신앙인이다"면서 "그에겐 신앙적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라면 다른 종교를 가진 유권자도 고려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은 그런 점이 부족했다"면서 "국면마다 불필요한 논란으로 손해를 본 건 그런 탓이 컸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겨레21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 봉헌 발언'과 부시 미 대통령의 '구세주 발언' 등을 지적하며 신앙적 확신을 가졌고 정치인이기 이전에 독실한 기독교인이란 사실을 숨기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흡사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