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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칼럼23. 신시태평지세(神市太平之世) - '홍익인간'
인류가 살아오는 동안에 행복이 실현된 적은 없을까? 있었다면 그 때가 언제이고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우리의 고대사서는 명쾌한 답을 주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유사>의 한웅천왕과 고조선 건국이야기에서 이미 해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삼성기>와 조선시대 이맥이 편찬한 <태백일사>에서도 구체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일만 년 천손민족의 핵심이념인 홍익인간 정신과 실현이 그것이다.
홍익인간 추구 교육이념과 현실 동떨어져
홍익인간이란 무엇일까?
홍익인간의 개념은 흔히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다.’라고 해석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무엇이 홍익인간의 실상이며 어떻게 하면 홍익인간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제시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편을 보면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하여 헌법과 더불어 교육의 중요성과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홍익인간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여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홍익인간의 이념을 추구한다는 교육법과 현실에서의 교육이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 어찌 보면 우리는 누구나 홍익인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홍익인간의 유래와 실체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된 문제일 것이다.
사서에 기술된 것을 중심으로 홍익인간의 유래와 의미와 구체적인 모습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홍익인간의 이념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하늘의 뜻이며 개천과 함께 이루어졌다.
<삼국유사>와 <삼성기>에 한국(桓國)말기에 한인이 삼위와 태백을 굽어 살피시고 홍익인간을 실현할 곳을 찾아 태백산에 한웅을 보내 재세이화를 하도록 한 것이 그것이다.
무리 3천을 이끌고 가서 하늘의 뜻을 열고(開天), 가르침을 세우고(立敎), 세상에 있으면서 조화(造化)로서 잘 다스리고(在世理化), 만세의 자손들의 큰 모범이 될 하늘의 법도(洪範)를 세우도록 한 것이 기본적인 골격이다.
다음으로 홍익인간이 실현된 모습은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시태평시대로 하기도 하며 지덕지세라 표현되기도 하였다.
<우리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모습>
그 내용은 “오늘날 이미 태초에 하늘이 헤아릴 수 없는 홍조(洪祚)를 여시고 웅(熊)과 호(虎)를 불러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시고 사해를 평안하게 하시어
위로는 하늘을 위하여 홍익의 뜻을 드높이고 아래로는 인간 세상을 위하여 무고한 원한을 풀어주셨다.
이에 사람들은 스스로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세상에는 거짓과 망령됨이 없었으며, 스스로 무위(無爲)로서 다스리며 스스로 무언(無言)으로 교화되며, 세상에는 산천(山川)이 겹쳐도 서로 침범하거나 간섭하지 아니하며, 서로를 낮추어 귀하게 여기고 목숨을 버리는 자를 붙들어 구하며, 의식(衣食)을 두루 같게 하며 또한 권한과 이익을 고르게 하여, 하늘에 더불어 귀의하며 서로 기꺼이 서원(誓願)을 하고,
화백(和白)을 공(公)으로 삼고, 책화(責禍)로서 신뢰를 보전하며, 힘을 합하고 일을 쉽게 하며, 업(業)을 나누어 서로 도우며, 남과 여는 모두 맡은 바 직분이 있으며, 노인과 젊은이가 복과 재물의 이익을 같이 누리며, 사람과 사람이 서로 다투어 송사를 벌이지 아니하며, 나라와 나라가 더불어 서로 침략하여 약탈을 하지 아니하니 이를 신시태평지세(神市太平之世)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법규와 호령이 없어도 이치에 맞게 살아
또한 <태백일사.신시본기>에는 “신시씨(神市氏, 즉 한웅천왕)가 처음 세상에 내려왔을 때에는 산에는 길도 없었고 못에는 배와 다리도 없었으며 새와 짐승은 무리를 이루고 초목은 무성해지니 금수와 더불어 생활을 하며 무리를 이루고 만물과 더불어 부족을 이루어 어울리니, 짐승의 무리에 고삐를 매어 타고 놀았으며 까마귀와 까치의 둥지에 올라 엿보았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때에 맞춰 그 피와 고기를 항상 쓸 수 있었다. 베를 짜서 옷을 입고 밭을 갈아 밥을 먹고 하고 싶은 바가 쉽게 마음대로 되니 이를 지덕(至德)의 세상(至德之世)이라고 한다.”라고 하여 신시태평지세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한국본기>에는 “가깝고 먼 것의 차별이 없었으며, 위아래의 등급이 없었고, 남녀가 고른 권리를 갖고 있었으며, 노인과 젊은이가 역할이 나누어져 있어,
이 때 당시의 세상에는 비록 법규와 호령이 없었지만 스스로 화평과 안락을 이루고 이치에 맞게 살았다.
백성들의 병(病)을 낫게 해주고 마음에 맺힌 원(冤)을 풀어 주며, 위태로운 백성을 붙들어주고 힘이 약한 백성을 구제하니 한 사람의 백성도 원한을 갖거나 더욱이 울화통을 터트리고 다른 마음을 품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천왕은 책화로 분쟁과 갈등 조정
<삼성기>에서는 “옛날 한국(桓國)이 있었나니 백성은 부유하고 또 많았다.
처음 한인께서 천산(天山)에 계시면서 도를 얻으시어 오래 오래 사셨으며 몸에는 병도 없었다.
하늘을 대신하여 정사를 펴고 교화를 하셨다. 사람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싸울 일도 없게 하였으며, 누구나 힘껏 일하여 배고프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게 하셨다.”라고 하여 홍익인간이 실현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내용을 보면 신시태평시대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백성들이 모두 하늘의 자손으로 생각하고 하늘을 모두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았으며,
소도를 통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경배하는 사상을 갖고 있었고, 관경 즉 나라를 개인에 앞서 공으로 여기는 마음을 지녔으며, 천왕은 책화를 주관하여 분쟁과 갈등을 조정 화합하게 만들고 이러한 모든 결정을 모두 백성들과 더불어 의논하여 하나로 귀결되게 화백제도를 시행하였던 까닭에 가능하였다.
또한 이에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함과 동시에 지혜를 닦아 전(佺)에 거처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책화라는 것은 <삼국지.위지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전>에 나오는 말로서
신시시대에 관경 내의 읍락이 서로 침범을 하면 천왕이 이를 주재하여 벌책을 가하였는데 생구(生口, 포로)와 소나 말 등의 가축으로서 보상을 하도록 한 것이 후대에 부여나 고구려까지 전해진 것을 말한다.
이 책화는 오늘날 UN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신시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신라 때부터 발생된 제도로 알고 있는 화백제도도 이미 신시시대 때부터 있었던 제도로서 나라의 다스림을 하늘의 이치 즉 자연의 이치에 따라 모든 사람의 모든 행복을 생각하였던 까닭에 만약 한 사람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법을 시행하지 아니한 것을 가리킨다.
소도를 통한 제천의식과 책화를 통한 갈등조정과 화백을 통한 의견수렴과정이 있었으며
개인보다 나라를 우선하는 관경의식이 있었기에 통치자와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신시시대에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념과 정신이 바로 홍익인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신시시대의 태평성대는 단군조선시대의 순방의 다스림으로 이어져 왔으며 이것이 사방으로 퍼져 중국에서 말하는 요순의 성인시대라든가
<장자(莊子)>의 지덕지세는 모두 우리로부터 기인된 것이며 이를 흉내를 낸 것이다.
“백성은 살아가매 해야 할 바를 모르고 길을 떠나매 가야 할 곳을 몰랐지만 길을 가되 한없이 편안했고 사물을 보되 담담하였다.
배불리 먹고 즐거워하고 배를 두드리며 놀았으며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었다.
무릇 하늘의 은택(恩澤)이 널리 미치게 되어 궁핍을 알지 못하였었다.”라고 한 <신시본기>의 기록이 그것이다.
화백, 신시(神市)시대 여론수렴 제도
1789년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고 프랑스의 사회·정치·사법·종교적 구조는 물론 서양사의 대전환기를 이루었던 프랑스대혁명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근대적인 공화정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의 기치로 삼았으며 현재도 프랑스의 국가이념으로 되어 있는
자유·평등·박애라는 3대 가치는 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고래로부터 실천을 해온 제도와 가치를 본 뜬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인디언들의 이런 사회 문화적 이념이 바로 우리 신시시대에서 비롯되어 전해진 것이다.
<신시본기>에 “너희들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스스로 참됨을 이루고(自由成眞), 고루 같게 만물을 구제하며(平等濟物), 쉽게 다른 사람을 교화할 수 있으며(便得化人), 천형(踐形)의 대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한 대목과
위에서 열거했던 신시태평시대의 모습들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음이 그 증거이다.
<홍산유적에서 발굴된 수도하는 사람의 모습>
이는 실로 우리의 신시시대에 홍익인간의 이념이 완성되어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것이 세계 곳곳으로 전해졌다는 말이며 후대에 지상낙원을 그리워하고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것은 신시시대의 유전인자가 남아있어 항상 복본 하고자 한 염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춥고 배고픈 것을 없애주어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해주고,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며, 마음 속에 맺힌 원을 풀어주고, 위태롭고 약한 자를 붙들어 주고 도와주어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직분에 충실하며 서로 다투지 아니하고 하늘을 공경하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홍익인간의 참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홍익인간과 신시태평시대의 고귀한 이념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지만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고 말한 것처럼
온 세상에 홍익인간의 이념이 다시 한 번 깨어나는 날 신시의 그때처럼 세계평화와 태평성대는 찾아올 것이다.
우리 스스로 먼저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한다.
이제 홍익인간의 이념이 다시 꽃피울 때가 왔노라고.
(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