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노무현’의 슬픔을 세계에 알리자 |
출처 : 그레고리 커터니어스/한겨레 ㅣ 조회수 : 8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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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은 나의 자살에, 그리고 한 손은 장미꽃에 - 레너드 코언
존 F. 케네디와 마틴 루서 킹, 로버트 F. 케네디, 그리고 맬컴 엑스의 연이은 죽음을 겪으며 비통해했던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맞은 많은 한국인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의 정황은 다소 다를지 모르지만 그들 죽음의 핵심에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개혁가, 탐욕스럽게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득권 세력이 무자비하게 중상모략했던 사람, 신선한 희망의 날개를 타고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곤혹 속에 남겨놓고 떠난, 완전하지만은 않았던 지도자.
이런 죽음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돌아가시게 한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손자 손녀의 심정과도 같은 회한을 느낀다.
벼랑끝에 선 마지막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행위의 무대는 실제로나 은유로나 모두 외경심을 자아내는 것이다. 절정에서 보이는 광경(장미꽃)은 그 아래의 광경(자살)만큼 힘이 있다.
절정에 이르는 그의 도정에는 힘과 계획과 결단력, 자기 이해, 영적인 지도와 등이 필요했다. 절정에서 보이는 광경은 그가 봉사와 희생을 바친 조국, 고요 속에 잠긴 그가 사랑하던 집, 그리고 미지를 향해 몸을 던짐으로써 그가 뒤로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찬란한 것이었다.
그의 시야와 관점은 정밀했고, 잘 정의되고 초점이 잘 맞춰진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광대무변하다는 점에서는 초점이 불분명한 것이기도 했다.
거기에 세운 악한 배우는 누군가
용기와 공포, 희망과 절망이 합리적, 비합리적으로 혼합된, 자살의 여러 요소들을 따지고 고려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퇴장하는 장면의 무대에는 항상 여러 배우들이 있다.
모든 위대한 비극에서처럼 이 비극에도 보편적으로 흔히 발견되는 인물들과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다. 가장 사악하고 추하며 악의적인 배우들은 주인공을 적극적으로 죽음을 향해 밀어낸 자들이다.
이런 사악한 범죄자들의 수단과 계책은 플라톤과 시바의 법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거기서 우리는 위선적 고발자들과 비열한 검찰관들,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 저질의 막후실력자들과 배반자들, 교활한 모사꾼들, 주인공의 죽음으로부터 최선의 이익을 얻기를 바라는 자들을 발견한다.
우리는, 처음에는 무죄를 주장하면서 자신을 방어하려고 노력하지만, 점점 자신을 압박해 오는 고립과 무자비한 공격과 굴욕, 그리고 교활하게 짜인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과 도전을 맞아 불가피하게 약화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너무나 자주 무력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런 뒤 저 결정적 순간, 합리적으로 볼 때 도저히 거기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한 그 순간, 미래에 남겨져 있는 것은 단지 지속적인 절망과 시련과 고통뿐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는 그 순간이 도래한다. 바로 그러한 순간에 도달했고, 그러한 깨달음을 얻었기에 노 전 대통령은 벼랑 끝을 내려다보게 된 것이리라.
세계는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인과 한국의 문화와 정치를 이해하고 거기서 배우려고 노력하면서 한국을 관찰해 오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한편으로, 한국인들이 그라는 사람과 자살의 의미를 어떻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을 것인지?
그는 단지 권력을 잃은 뒤 병적인 에 빠졌던, 실패한 정치인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정당에 표를 주지 않았던 한국인들은 왜 그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사건인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국민적으로 깊은 비탄에 잠겨 있는 것인가? 왜 많은 한국인들은 그의 죽음을 실질적인 살해라고 보고 있는가? 그렇다면 누가 그를 죽인 것인가?
한국민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음을 십분 이해하면서 나는 그들이 그런 슬픔 가운데에서도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 비극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비탄의 실체 세계인과 공유해야
한국민들이 그들의 지식과 관점을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공유한다면, 그것은 세계가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인물이었고, 그가 꿈꾼 세상은 어떤 것이었는지, 특히 진정한 민주주의와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 중 누구의 손이 노 전 대통령의 피로 더럽혀졌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자들이 아직도 무대 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은 그의 을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하고 그것을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이다.
여러분들의 슬픔이 계절이 오고 감에 따라 치유되고, 한 위인의 삶에 깃든 기품이 수많은 세대 동안 우리 안에 머물기를 기원한다.
그레고리 커터니어스 전 하버드 의대 강의병원 교수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readercolumn/361588.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