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찾아서!!!

삼신사상은 유불선의 근본

장백산-1 2009. 8. 26. 12:53

홈으로...추천답변삭제수정목록
제목 삼신사상은 유불선의 근본
번호 글쓴이  태산
조회수 851 날 짜  2008-02-25 오전 9:15:43

삼신사상은 유불선의 근본



삼신할머니


삼신사상은 유불선의 근본


삼신할미는 우리 민족의 지킴이

우리 민족은 유난히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우리 민족이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삼신할머니를 가슴 속에 묻고 살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별히 삼신할미 즉, 삼신할머니를 의식하지 않아도 일상생활 속에서 늘 3이라는 개념 속에서 살고 있다. 노크를 해도 똑 똑 똑 세 번, 등 무엇을 하여도 삼세 번 등 우리의 생활 속에 배어 있는 삼신할미의 흔적들은 많이 있다.

삼신할머니를 다른 말로 삼신상제(三神上帝),․삼신제왕(三神帝王),삼신제석(三神帝釋)․로 부르며 삼신신앙(三神信仰)이 탄생되었다. 삼신사상을 발생 원리로 도 ․ 불 ․ 유 삼교일체의 신선도가 한웅천황에 의하여 확립하여 가르쳤다. 삼신은 천일 ․ 지일 ․ 인일을 의미하고, 삼신이 사람에 있어서는 식(息)․감(感)․촉(觸)과 기(氣)․심(心)․신(身)과 명(命)․성(性)․정(精)이 된다. 여기에서 도 ․ 불 ․ 유 삼교일체 사상이 성립된다.

즉 숨을 고르게 쉬고(調息), 원기를 길러(養氣), 불로장수(長命)하는 신선을 추구하는 사상이 도교로, 모든 느낌을 끊어 버리고(止感) 마음을 맑게 하여(明心) 본래의 성품을 깨달아(覺性) 성불을 추구하는 사상이 불교로, 모든 육체적 감각(관능적인 욕구)을 극복하여(禁觸) 행실을 닦고(修身) 정기(정력)를 성실하게 함으로써(精誠) 성인군자를 추구하는 사상이 유교가 되었다.

우리는 3월 3일을 삼진(三眞)날이라 한다. 삼진이란 사람이 태어나면서 삼신할미로부터 받은 세 가지, 곧 성(性)․명(命)․정(精)을 말하는 것으로 삼짇날이 삼신할머니의 날로 정한 것은 삼이 두 개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삼신할머니가 인간에게 새 생명을 점지하여야만 삼신할미와 같은 창조의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임신을 하여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우리 민족의 믿음은 곧 인간의 탄생은 반드시 삼신이 주관하는 것이라고들 생각하여 왔다.

우리말에 아기의 태(胎)를 삼이라고도 하고 탯줄을 삼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은 바로 삼신할머니로부터 새 생명이 태어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열 살 미만일 때에는 목숨의 안전과 위험, 우환, 잘나고 못남 따위는 애오라지 모두 삼신께 위탁한다. 삼신은 곧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삼신할머니가 최초로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말과 통한다.


옛날 부인네들은 아기를 간절히 원할 때는 무당에게 찾아가 삼신을 받곤 하며 지금도 삼신을 받곤 한다. 이것이 바로‘삼신신앙’이요 민족의 종교인 것이다. 물론 ‘삼신신앙’이 종교로서 이름을 가졌다는 기록이나 근거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면 바로 그것이 종교로서의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서양의 잣대를 갖다 대어서 경전이 있어야 하고, 의식이 있어야 하고, 조직이 있어야 하는가? 이런 것이 없더라도 우리는 삼신을 종교 이상으로 믿었다는 기록들을 현재의 우리들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삼신산’‘마고’‘봉래’‘방장’‘영고’와 같은 지명과 어휘들이다. 또 우리들은 해, 달, 북두칠성을 삼신으로 보기도 하고 한인, 한웅, 단군을 삼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도 3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많이 있다. 이것은 신라의 고승 원효 때부터이다. 그 당시 불교는 왕실을 중심으로 귀족들 사이에만 믿는 종교로 인식했었지 일반 백성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불교를 민중 속으로 뿌리 내리기 위해선 그 당시 백성들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토속 종교인 무교의 사상을 불교에 접목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부터 원효의 노력으로 무교의 삼신사상을 비롯한 한국인의 기본의식이 되는 무교의 사상을 불교로 흡수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와 노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무불습합이다. 무교를 불교가 흡수 하지 않고는 불교의 발전과 민중들에게 포교할 수 없다는 것을 원효가 알았기 때문이다.



불교는 삼신(三身)이라 하여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을 말하고 있으며. 관세음보살은 33가지의 모습으로 몸에 나타내어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된 사찰을 가서 대웅전 팔작지붕 양 옆 밑을 보면 큰 원 속에 작은 원이 3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바로 삼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대웅전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삼성각(三聖閣)이나 칠성각(七星閣), 산신각(山神閣)이 무교에서 도입해 간 것들이다.

대웅전은 본디 한웅천왕을 모시던 대시전(大始殿)이었다. 대웅전은 대시전에서 나온 말로써 한웅천왕을 모시는 전각이라는 말이다. 그 대웅전에 한웅천왕 대신 석가모니를 모시고 대웅전이라고 하였지만 팔작지붕 밑의 삼신의 표시를 승려들도 모른 채 그냥 계속 이어 오고 있다. 이것은 가운데 적은 원 3개는 직녀성을 나태내고 큰 원은 북극성으로, 북극성에 덮어씌운 직녀성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한다. 필자는 큰 원은 우주로 보고 적은 원은 즉, 천일의 마고, 태일의 궁희, 지일의 소희로 보아 삼신의 신성성을 의미한다고 보며 즉 우주에서 최초로 삼신이 창조를 시작하였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해석하고 싶다.


삼신은 내륙지방에서는 마고산(麻姑山)이라 하고, 섬에서는 영주산(瀛州山)이라 부르며 그 섬을 영주라고 한다. 한라산이 있는 제주도의 옛 이름이 영주이기도 한 것은 제주도가 바로 삼신종교의 성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진정한 삼신은 누구이며 무엇을 말하는가?


<부도지(符都誌)>를 보면 동이족의 조상은 삼신 마고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마고(麻姑)를 어머니로 하여 두 딸인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로 불리는 세 분의 신이 바로 삼신이라고 말한다. 궁희는 곧 황궁(黃穹)과 청궁(靑穹)으로 나뉘어 황인종들의 조상이 되고 소희는 백소(白巢)와 흑소(黑巢)가 되어 백인과 흑인의 조상이 되었다.


또한 삼신신앙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에게 많은 진리를 터득케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신시 때 나온 ‘천부경’의 원리와 삼태극 사상을 들 수가 있다. 이 삼태극 사상을 망각하고 박영효의 어리석음이 양태극 사상을 택하였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지 모른다.


양태극은 적색과 청색으로 나뉜 불과 물로써 대립과 반목만 있을 뿐 물과 불은 도저히 합쳐질 수가 없다. 그러나 황색의 흙 기운을 가지고 있어 불의 극성을 억제하고 물의 넘침을 막으며 서로 조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즉 상극(相剋)의 작용을 상생(相生)의 작용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황(土)이 있는 삼태극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태극은 대립을 넘어 조화를 이루는 상징이다. 그러기에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태극기의 양태극을 우리 조상들이 예부터 사용하던 삼태극으로 바꾸어야 한다.


삼신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도의 탄생을 도표화 한 점일원(占一圓), 우주의 탄생을 도포한 한 일석삼극(一析三極), 천지인을 의미하는 원방각(圓方角)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하늘의 직녀성을 삼신이라고도 하는데 직녀성 세별을 마고본성, 실한성, 허튼성이라고 하였다. 이들 세 성을 소리로 본다면 마고본성은 본소리(本音), 실한성은 실한소리(實音), 허튼성은 허튼소리(虛性)가 된다. 마고본성은 우주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소리로 율려가 되고, 우주의 소리인 율려에 가깝게 내려고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악기가 되었으며, 허튼소리는 인간들의 쓸데없는 소리가 된다. 우리는 쓸데없는 소리를 허튼소리, 헛소리라고 하는 것은 즉 우주 본래의 소리와는 아주 거리가 먼 소리라는 말로서, 삼신의 허튼성에서 나왔다.


삼신신앙은 무가에서 나오는 황궁시대와 유인시대를 거쳐서 한인천제, 한웅천왕의 시대에 와서 신의 개념이 정립되면서 현재 민족의 경전으로 사용되고 있는‘천부경’‘삼일신고’ ‘참전계경’ 등 많은 경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한웅천왕은 풍이(風夷)의 족장으로 삼신신앙을 받드는 제를 올렸는데 그때 옆에서 율려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풍물패였다. 즉 한웅천왕시대에 하늘에 제를 올릴 적에 율려의 소리를 내던 풍이족의 음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그것이 풍물패다.


그 시절 하늘에 제를 올릴 적엔 반드시 모우(旄牛)라는 흰 소를 잡아 바치고 제관이 흰 소꼬리를 잡고 춤을 주었다고 한다. 여기서 바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추는 춤의 시작을 찾게 되고, 또한 지금 풍물패들의 전립에 달린 상모의 근원이 된다. 상모란 모자 꼭대기에 달린 쇠꼬리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쇠꼬리 잡은 놈이 임자(임금)”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즉 쇠꼬리 잡은 사람이 임금이라는 뜻이다. 풍물이란 말도 풍이족의 문물이 줄여서 생긴 말이다. 곧 한인천제, 한웅천왕의 문물이며 우리 민족의 문물인 것이다.


무당들이 사용하는 무구 중에 삼지창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 또는 두 개로 뻗은 창을 만들 수도 있는데 세 개의 가지가 뻗어 있는 삼지창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이 삼지창의 의미는 바로 삼신을 나타내는 뜻으로 생각한다.

굿을 하면서 삼지창을 세우는 것은 삼신을 바로 받들어 세운다는 뜻일 것이다. 이 삼지창에 소나 돼지 등 전물을 꽂아 세우는 것을 사슬 세운다고 하는데 이 사슬을 세우는 이유는 그날 드리는 정성을 신들께서 잘 받으셨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함이라고 한다. 제물로 바친 소나 돼지 등이 잘 서면 신들께서 잘 받으셨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곧 삼신께 오늘 드리는 정성을 잘 받으셨나? 알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모든 신은 삼신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무당들이 모시는 신당에는 삼신이 없다. 삼신이 어처구니없이 삼불제석이란 이름으로 모셔지고 있으며 우리의 삼신할머니가 불교의 옷을 입고 계신다.

또한 영주산이니 방장산이니 봉래산 등 삼신과 관련 있는 전국의 어느 곳을 가 보아도 삼신을 모신 사당을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스스로 잃어버린 것이다. 겨우 칠월칠석이 되면 다인(茶人)들 사이에서 칠성다례를 올리는 정도로 끝이 났다. 이것도 칠성다례가 아니라 칠석다례라고 하여야 한다. 칠석은 바로 직녀성의 세 분 삼신에게 올리는 제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물(祭物)도 양(陽)을 상징하는 오이, 가지, 호박 같은 것을 바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베트남에는 모교(母敎)라는 이름으로 온 국민들이 믿고 따르는 토속종교가 있다.


그곳에는 여신상이 세 분이 모셔져 있었다. 이 세 분을 베트남에서는 천신(天神), 지신(地神), 수신(水神)이라고 하지만 해석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의 삼신신앙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바로 우리의 삼신할미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지금은 한문 문화권이 아니지만 옛날에 한문으로 고(姑)라고 사용하였다는 것만 보아도 여실히 증명이 되고 있다. 또한 고(姑)거리에서는 제물을 오이, 가지, 바나나, 붉은 고추 등을 사용한다.


그들은 모교신앙에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엄청나게 몰려와 정성을 드리는 것을 보았다. 부녀자들이 쟁반에다 모신(母神)에게 즉 삼신께 받힐 제물을 머리에 이고 사당으로 오는 행렬은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 체제 아래서도 삼신인 모교는 죽지 않고 국민들의 가슴 속에 불씨로 살아남아 개방의 물결이 불어오는 지금 활짝 꽃을 피우고 있으며 또한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는 듯 하여 부러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