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려와 마고에 대하여”
생명력을 느껴 자신의 삶을 찾도록 도와주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음에
불구하고 근래의 이러한 문화는 상당수 그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종교는 종교의 늪에서 빠져 인간의 생명력을 꺼내는 프로그램이 아닌 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생활 문화는 깨달음의 문화에서 원초적 감각만을 자극하는 문화로 이어지고 예술문화 역시 본가지가 아닌 곁가지의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러한 현상을 모두 다 알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는 있는데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누구 때문에 이렇다고 남의 핑계만 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율려이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것은 놀이와 웃음이라고 한다. 놀이와 웃음 의 형태는 원초적 생명력의 표현이다
그것을 율려라고 할 수 있다
율려는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역이다
놀이가 가지고 있는 주된 부분이 무엇일까
놀이 속에는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놀다보면 개인의 한풀이가 있고 집단의 어울림 즉 하나가 되기 위한 사회성 놀이가 있고
그 놀이가 깊어지면 이화세계를 가 되는 것이다.
보편성의 진리 -- 그것이 놀이 -- 율려 인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이 악기들이 내 몸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 내 몸을 악기라 생각하며 노래 부르고 두드리곤 했는데 그런 생각으로 악기들을 연주하니 아름다운 음악이 되었다. 언어를 넘어선 세계에 있는 어떤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참으로 난감하다. 더구나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는 사회의 고정관념에 물들어 오염될 대로 오염된 낡고 둔한 도구이다.
“말이나 글로 남은 진리에는 생명이 없다. 인간의 힘으로는 꽃 한 송이, 작은 돌멩이 하나도 만들어낼 수 없다. 진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참다운 진리는 만들 수도 없고 가르칠 수도 없다. 진리는 언어로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다운 진리는 오로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꽃이다" 하고 꽃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단지 존재할 뿐이다. 그 이상은 결코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다”
율려律呂야말로 언어를 넘어선 세계에 있다. 그러므로 내게 율려를 말로 설명하라는 것은 '숨을 어떻게 쉬는가?', '물은 어떻게 마시는가? 나는 그냥 숨을 쉬고 그냥 물을 마신다. 여기에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율려란 다른 어떤 것을 바탕으로 해서도 설명될 수 없는 것, 그냥 거기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비유나 은유에 의존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우주 속의 모든 것이 바다를 바다로 만들고 있다. 조각조각 따로 떼어내 생각하는 것은 머리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실재는 그렇지 않다. 율려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이미 율려의 한 부분이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율려를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율려 안에 있고 율려는 우리 안에 있다.
축구 경기를 처음 관람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경기의 규칙을 전혀 모른다. 선수들과 공이 움직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게임의 규칙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땅이 뒤흔들리는 듯한 열광 속에 있다고 해도 그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러나 경기의 규칙을 하나 둘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느끼다가, 세세한 규칙까지 완전히 알게 되면 경기를 진정으로 즐기고 환호하는 관중들의 물결 속에 합류하게 된다.
“꽃이 피고 새가 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또 온다. 태양은 떴다 지고 달은 차고 기운다. 수많은 자연과 우주의 변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나 변화 속을 흐르는 법칙은 보이지 않는다. 율려는 변화하는 생명 속의 질서이다. 보이지 않는 우주의 질서이며 게임의 법칙이다. 게임의 법칙을 몰라도 게임은 계속되지만 법칙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
우리가 율려를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주는 율려로 가득차 있다. 물의 부력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수영을 할 수 있고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바다 속을 헤엄칠 수 있는 것은 부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력은 머리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다만 물 속에 뛰어듦으로써 그 존재를 실감한다. 율려야말로 머리로는 알 수 없고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8려 4율이니, 6율 6려니 하여 율려는 흔히 음악에서 쓰이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율려는 원래 창조의 원음이며 우주 조화의 근원을 일컫는 말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니 빛이 생겼고 "땅에서 푸른 움이 돋아나거라" 하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천지 창조의 도구는 '말씀'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말씀은 언어 이전의 언어이다. 빛이며 소리이며 파장이다. 빅뱅의 메아리이며 창조주의 첫 날숨의 흔적이고 대통일장大通一場의 근거이다. 또한 우주의 법칙이며 창조이자 조화이고 리듬이자 밸런스이다. 그러나 이 모두를 다 합친다 해도 율려를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율려는 지금도 모든 생명체 속에 생명력의 실체로서 박동하고 있다. 율려는 인간의 심장을 뛰게 하고 지구를 돌게 하고 태양을 빛나게 하며 꽃이 피어나게 하고 새가 울게 하는 동일한 에너지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우주의 법칙인 율려를 따라 생명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나면 다시 어려워지고 만다. 그러므로 율려는 느껴야 한다. 직접 체험해야 한다.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를 듣는다. 심장의 맥박 소리…. 이것은 생명의 소리이고 우주의 음악이다. 혈관 속을 흐르는 혈액의 소리와 그들의 율동 또한 기가 막힌 음악이다. 몸은 이렇듯 24시간 연주를 하고 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율려의 세계는 지극히 신비롭고 장엄하며 웅장하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나무의 흔들림, 별들의 반짝임은 율려를 연주하는 자연의 장엄한 오케스트라이다. 우주는 우리에게 율려 안에서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축복을 안겨 주었다.
율려는 생명 현상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율려 안에 있다. 우리는 율려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율려를 통해 이 세상을 떠나간다. 우리의 심장은 쉼없이 뛰고 세포는 규칙적으로 숨을 쉰다. 생명이 율려의 바탕 위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율려를 극대화하는 것이 춤과 노래이다. 율려라는 생명의 법칙을 노래하면 음악이 되고 사상으로 표현하면 철학이 되며 아름다운 말로 읊으면 시가 되고 예술이 된다. 율려가 살아있는 세계, 살아 생동하는 율려를 느끼는 세계가 바로 이화세계理化世界이다.
그 동안 우리가 배워온 지식들 - 종교, 음악, 무용, 미술은 도리어 율려의 세계를 가로막았다. 음악이 살아있는 율려를 빼앗아갔으며, 종교가 영원한 생명을 만나는 길을 가로막았다. 우리의 춤과 노래에는 율려가 빠져 있다. 기계적으로 몸을 흔들어대는 춤에서는 내면에서 절로 흘러나오는 생명력을 찾아볼 수 없다. 목청 높여 부르는 노래에는 혼이 없다.
지식과 껍데기 예술, 껍데기 놀이들 때문에 우리는 세계를 조각조각 나누어 보게 되었다.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작은 것들에만 눈을 고정시킴으로써 우주만물의 큰 질서인 율려를 잃어버렸다.
율려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주의 리듬으로써 존재한다. 다만 율려를 느낄 수 있는 우리의 감각이 닫혀버렸을 뿐이다. 율려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잃어버림으로써 우리는 우주와 연결된 탯줄을 스스로 끊어버렸다. 율려를 잃어버림으로써 자연과 멀어졌고 다른 사람과도 멀어졌다.
율려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율려를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리란, 참 생명이란 원래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다. 다만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백번 천번 율려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으면 백번 천번 "있으니 느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율려란 무엇인가
언어가 있기 전 태고부터 어떤 울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잉태되면서 처음 들었던 그 울림은 어머니의 심장소리와 자신의 심장 소리였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24시간 연주를 하고 있으며 심장은 우리에게 계속 힘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생명활동이 곧 율려이며 천지만물의 모든 조화 그 자체가 율려입니다.
생명의 실체는 광음파 인데 율려는 음이고 파장으로서 순수한 대자연의 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려는 사람과 동식물은 몰론 모든 무생물에도 존재하며 보석처럼 빛나는 생명의 불꽃 입니다. 우주의 율려의 세계는 우리 몸 안에 있는 율려의 세계는 아주 신비롭고 웅장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눈이 멀고 귀가 멀었으므로 인해서 율려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바로 그 율려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바로 그 율려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율려의 세계는 진리의 세계입니다. 생명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율려의 세계를 통하여 모든 인류가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 생명이 있고 진리가 있고 거기에 철학이 있고 예술이 있고 모든 것이 다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배우고 있던 여러 가지 지식들이 여러 가지 음악, 예술, 종교가
전부다 율려의 세계를 가려놓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음악이 율려의 세계를 막았고 우리가 안고 있던 종교의 진리가 참 영원한 생명을 가렸어요.
그래서 우리는 전부다 부분 부분적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작은 것을 보게 되요.
큰 것을 믿지 못하고 작은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있는 신성한
기운이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씨가 나타나지 못하고 조그마한 것을 믿고 조그마한 것을
의지하다보니 우리가 서러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 할 수 밖 에 없게 되어있고
그러므로 인해서 이세상이 어지러워진 거예요. 이것은 하나의 깨달음의 문화입니다.
깨달음을 통하지 않고는 이 인류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율려의 상태란 우주와 호흡하는 상태입니다
다시 얘기해서 하늘과 땅과 인간이 조화된 상태입니다.
바로 그 상태가 평화이고 행복입니다. 또 그 상태가 바로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내 안에 율려가 있네-한문화출판- 이승헌님 저서 중에서...)
율려를 어떻게 풀어갈것인가
두두리....
두드린다는 것은 원초적 생명력의 표현이다
우주를 알기위한 가장 단순한 놀이 방식이다
이 간단한 놀이 방식 속에 무한한 비밀이 있는 것이다
가만 자신을 바라보면 언제 반응하는가를 알 수 있다.
또한 무엇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주시하여야 한다.
사람은 감동을 하였을 때 무의식적인 어떤 동작이 튀어 나온다
손뼉을 친다던지....
무릎은 친다던지.... 괴성을 지르면서
어떤 형식도 없이 그냥 나온다.
배운 적이 없다
배우면 생명력을 느끼는 것이 갈수 록 어려워진다.
하지만 배우지 않을 수 없다
문명이 발달함으로 인하여 극도로 신피질 기능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력의 반응이 와도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 만큼 구피질 기능이 쇠퇴되었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잃고 살고 가는 것이다
이제 생명력을 느끼는 것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 문화이다
첫째가 종교문화요
둘째가 생활문화
셋째가 예술 문화이다
생명력을 느껴 자신의 삶을 찾도록 도와주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음에 불구하고
근래의 이러한 문화는 상당수 그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종교는 종교의 늪에서 빠져 인간의 생명력을 꺼내는 프로그램이 아닌 벌이의 수단으로
생활 문화는 깨달음의 문화에서 원초적 감각만을 자극하는 문화로
이어지고 예술문화 역시 본가지가 아닌 곁가지의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러한 현상을 모두 다 알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는 있는데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누구 때문에 이렇다고 남의 핑계만 대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일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뿐이다
이 시대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무엇일까 그것이 율려이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것은 놀이와 웃음이라고 한다
놀이와 웃음 의 형태는 원초적 생명력의 표현이다
그것을 율려라고 할 수 있다
율려는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역이다
놀이가 가지고 있는 주된 부분이 무엇일까
놀이 속에는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놀다보면 개인의 한풀이가 잇고
집단의 어울림 즉 하나가 되기 위한 사회성 놀이가 있고
그 놀이가 깊어지면 이화세계를 가 되는 것이다
보편성의 진리 -- 그것이 놀이 -- 율려 인 것이다.
-- 율려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
풍류도를 통하여 그러한 꿈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그러한 뜻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자 한다.
그 누군가는 그런 일들을 해야 되지 않을까
누가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자
바로 내가 그 일을 하자
율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
이제 우리가 시작 할 때가 되었습니다.
신라시대 박제상(朴堤上)이 쓴『부도지(符都誌)』는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사서(史書)이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뜻 깊은 창세(創世) 기록이기도 하다.
『부도지』에 의하면 천지창조의 주인공은 율려(律呂)이다. 율려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이 나타났고, 우주의 어머니인 마고(麻姑)를 잉태했다.
마고는 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고,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았다. 유
율려가 다시 부활하여 지상에 육지와 바다가 생겼다.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조화를 이루더니 풀과 나무, 새와 짐승들이 태어났다. 마고는 율려를 타고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으며, 천인과 천녀들은 하늘의 본음(本音)으로 만물을 다스렸다.
네 천인과 네 천녀는 마고의 뜻에 따라 서로 결혼하여 각각 3남 3녀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이 또 서로 결혼하여 몇 대를 지나는 사이 1만 2천명의 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지구상의 가장 높은 곳에 '마고성(麻姑城)'이라는 이상적인 공동체(符都)를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품성이 조화롭고 깨끗하며, 땅에서 나오는 지유(地乳)를 먹고살아 혈기가 맑았다.
그들의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하늘의 소리를 듣고 율려를 체득하여 자신이 바로 우주와 하나임을 깨달았다. 우주의 원리인 율려에 의존하여 살았기 때문에 유한한 육체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수명을 누렸다.
그들은 만물에 깃들인 마음의 본체를 읽는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마음의 본체를 운용하여 소리를 내지 않고도 말을 했고, 마음먹은 곳은 어디든지 갔으며, 형상이 없이도 행동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에 지소씨(支巢氏)라는 사람이 어느 날 지유(地乳)를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 마시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배가 고파 어지러워서 쓰러졌다. 지소씨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를 허겁지겁 따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윙윙거리고 혀가 아려오고 온 몸의 피부가 가렵고 코가 맹맹해졌다.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지소씨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지소씨는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전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온 세상이 색색으로 물들어 있고, 꽃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귀에는 물 흐르는 소리와 새의 노래가 들려왔다. 지소씨는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하지만 내 기운을 능가하지는 못하는구나. 이 모두가 포도의 힘이로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포도를 권했고, 포도의 다섯 가지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은 번잡하고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미(五味)의 변(變)이다.
마고성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사람들이 포도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기에 이른다. 마음의 본체, 즉 본성이 하고자 하는 대로 살던 마고성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인위적인 금지법이 생긴 것이다. 아무런 구속과 강제 없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던 자재율(自在律)이 파괴된 것이다.
결국 포도를 먹은 이들뿐 아니라 포도를 먹지 못하도록 지키는 이들도 율려에 의존하여 살 수 없게 되었다. 포도를 먹은 이들은 몸이 이상하게 변했다.
또한 포도를 먹은 것을 창피하게 생각해 거짓말을 하고, 점차 남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두워져서 마침내 천성(天性)을 잃어갔다.
오금(烏金)은 흙으로 변해 더 이상 하늘의 음을 들을 수 없었으며, 마음의 본체를 볼 수도 운용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유한한 육체의 한계 속에 갇혀 육체의 감각인 오감에만 의존해서 살아야 했다.
여러 사람들이 지소씨를 원망하자 그는 부끄러운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고 마고성에서 나가 숨어버렸다. 천성을 잃은 다른 사람들도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마고성의 제일 어른이었던 황궁씨(黃穹氏)는 떠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대들의 마음이 심하게 흐려져 마음의 본체가 변하니 어쩔 수 없구려. 그러나 스스로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이 다시 맑아지면 자연히 천성을 되찾게 될 것이니 노력하고 또 노력하시오."
그러나 성밖은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부딪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만물은 서로를 시기하고, 불신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다퉈 성밖의 세상은 점점 혼란스러워졌고, 나중에는 마고성까지 위험하게 되었다. 이에 황궁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마고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 할 것을 서약하였다.
제족들과 의논한 결과 마고성을 완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마침내 성문을 닫고 모두가 성을 떠나 이주할 것을 결심한다. 황궁씨는 마고성에 살던 네 무리 중 한 무리의 3천 명을 이끌고 가장 춥고 위험한 북쪽의 천산주(天山洲)로 향했다. 다른 세 무리도 각각 동, 서, 남쪽으로 향했다.
황궁씨는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하여 복본(複本)할 것을 서약했다. 또한 사람들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을 열심히 하도록 일렀다.
큰아들인 유인씨(有因氏)에게는 하늘의 징표인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주어 세상을 밝히게 하고, 둘째와 셋째 아들에게는 천산주 일대를 순행(巡行)하도록 하였다.
아들에게 후일을 도모하도록 한 뒤, 황궁씨는 스스로 천산(天山)으로 들어가 긴 소리를 토하는 돌이 되었다. 돌을 통해 율려의 음을 울려 오감과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려서 그들이 율려를 회복하는 일을 도왔다.
큰아들 유인(有因)씨는 황궁씨에게 물려받은 천부삼인으로 사람들에게 만물의 근본이 하나임을 깨닫게 하였다. 또한 불을 일으켜 어둠을 밝게 비추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익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후일 유인씨는 아들 한인(桓因)에게 천부를 정하고 산으로 들어간다. 한인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밝히고, 햇빛을 고르게 비추고, 기후를 순조롭게 만들었다. 마침내 만물이 평정을 되찾고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차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이는 황궁, 유인, 한인 3대에 걸쳐 3천년 동안이나 수증을 한 정성 덕분이었다.
부도지 이야기는 성경의 에덴동산과 그 내용이 흡사하지만 훨씬 깊고 넓다. 성경에서 말씀의 주체는 창조주 하느님이다. 말씀이란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듣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부도지에서 율려의 주체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율려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신성(神性)을 밝혀 우주의 율려와 하나가 되는 과정을 <부도지>에서는 '수증(修證)'이라 했다. 수증은 곧 모든 생명과 아우르는 천지마음, 천지기운과 하나 되는 과정이다.
우리 민족은 잃어버린 율려를 회복해 이상적인 공동체를 다시 세우고자 '복본(複本)'을 맹세했던 민족이다. 복본을 위해서 천부경이 나왔고,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을 통해서 인간을 신인합일의 경지로, 우아일체(宇我一體)의 경지로 복본 시키는 역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우리 민족만의 약속이 아니다. 율려의 회복은 온 인류의 꿈이다.
1. 마고(麻姑)는 누구인가?
마(麻)는 어머니(엄마, 마미, 마더, 맘마)라는 뜻이고, 고(姑)는 으뜸, 오래되었다는 뜻으로 마고는 태초부터 있어온 인간과 만물의 어머니 바로 지구어머니를 뜻합니다.
사람에게 Pysical Body, Energy Body, Spritual Body가 있듯이 지구의 Pysical Body는 지구의 대륙과 대양이며, 지구의 Energy Body는 지구의 대기권이고, 지구의 Spritual Body는 지구의 생명이고 조화력입니다. 바로 지구의 마음입니다.
작게는 지구의 Spritual Body를 마고라고 합니다. 크게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지구어머니의 이름을 바로 마고 또는 마고가이아라고 합니다.
우리가 마고를 알면서 지구하고의 에너지 교류, 메시지 교류를 하게 되면 인간의 잘못된 파장들을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고를 통해서 우리 인류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바로 지구인의 의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인류는 종교를 통해서 종교의식을 가졌으나 종교와 종교가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국민이 나라에 충성을 했으나 국가와 국가가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종교의식, 시민의식, 국민의식에서 지구의식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식이 된다는 것은 곧 우주의식화 된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2. 마고출현의 의미
그렇다면 왜 이 시대에 마고를 얘기하는 걸까요?
마고는 태초부터 우리 인류와 함께 있었으나 그 동안은 마고를 몰라도 인류의 생존에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종교의식과 시민의식만 가지고도 충분히 인간적인 생활이 가능했습니다. 선진국민이라고 칭송 받기에 충분했고 영적으로 성숙되었다고 말할 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종교의식과 시민의식만 가지고는 앞으로의 인류의 역사가 과연 얼마나 존속될지 예측조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권위 있는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인류가 환경오염, 자원개발 등에 있어 현재속도를 유지한다면 불과 25년이 지나지 않아 자멸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습니다.
선진국들끼리 논쟁이 끊이지 않는 환경오염 대책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지구환경보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 지도자에 열광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 경찰국가라고 자부하는 미국의 헌법에도 미국의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만일 지구의 인구폭발 문제를 가지고 국가정상들이 모여 "지구의 인구가 70억이 넘어가고 있으니까 10년간 산아제한을 하자"라는 합의를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어떤 종교에서는 교리를 내세워 낙태나 피임을 반대할 것이고,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 또한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 반대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인류의 생존보다는 자기종교의 교리가 우선이고, 지구보다는 자기 나라의 국익이 우선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구 어머니 마고가 이 땅에 출현한 이유인 것이며, 우리가 마고운동을 하고자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3. 마고의 실체는 율려(律呂)
마고의 실체는 바로 율려입니다.
마고는 바로 지구 그 자체이면서 지구의 마음 즉 지구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의 마음은 바로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율려입니다. 율려는 마고의 실체이며, 율려는 마고의 언어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율려는 바로 태초의 에너지, 그러면서 그 에너지는 율동, 리듬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음양과 삼원과 오행을 품고 있고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다 있습니다.
그러한 기운이 율려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율려를 터득하면 그 사람은 우주인이고 율려를 터득하면 바로 깨달은 사람입니다.
깨달았다는 정의는 바로 우주의식화 된 사람입니다. 우주의식화 된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삶은 천지인 정신일 수밖에 없고 그 구체적인 인간상은 바로 홍익인간입니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사상과 종교와 이데올로기도 인간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자연(우주, 천지)와 인간을 조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그 철학을 찾고 있습니다.
인간과 지구, 지구와 인간의 완성, 21세기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철학과 사상과 원리가 바로 마고에서부터 시작되어 한민족의 사상과 정신 속에 녹아 있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 속에 조용히 잠자고 있습니다.
이제 잠자고 있는 마고를 깨우지 않으시겠습니까?
4. 마고의 실체를 느끼려면
지구어머니 마고를 느끼고 체험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을 보면 그 사랑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어디에서 왔는가? 특별과외를 해서 배운 것인가? 아닙니다. 그냥 온 사랑입니다. 순수 그 자체입니다.
더 이상 가르칠 것도 없고 더 보탤 것도 없습니다. 그 사랑은 그대로 원래 완벽하여 어떻게 표현하고 빼고 할 것이 없습니다. 다듬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구어머니의 사랑이 여러분의 어머니로 온 겁니다. 그 어머니는 어머니로부터 이것을 상속받았습니다. 전혀 인위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세상을 구할 자는 바로 지구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만이 형제간의 싸움과 어리석은 행진을 멎게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의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지구어머니의 사랑도 같이 느끼십시오.
유난히 효(孝)에 대한 관념과 모성애가 강했던 우리 민족은 지구 어머니 마고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민족임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 마고(麻姑) 프로젝트 >>
□ 부도지(符都誌)에서 전하는 마고(麻姑) 이야기
통일신라 이전의 신라에 박제상이라는 충신이 있었다. 그가 썼다고 전해지는 부도지(符都誌)는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서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마고와 마고성', '율려(律呂)'를 만날 수 있다.
선천(하늘에 앞선 무언가가 있었다 - 빛), 빛만 존재하는 그곳에 8려의 음이 들린다. 8려의 음에 의해 마고성, 마고신, 실달성, 허달성(0의 개념, 완전한 空)이 탄생된다. 마고신이 궁희와 소희를 만든다. 그들에게 5음 7조의 음을 맡긴다. 하지만 이들은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4천인과 4천녀를 만든다. 4천인은 4계절, 4면을 담당하고, 이들은 8방을 담당한다. 4천인은 황궁씨(흙), 천궁씨(물), 백소씨(바람), 흑소씨(불)가 있다. 이들 4천인 4천녀가 합궁하여 각각 3남 3녀가 태어난다. 이들 12쌍, 24명은 각각 12계절, 24절기를 담당한다. 이들이 각각 29명, 30(일(日)을 담당, 윤년과, 동지가 생김)명씩 낳아 8대 9대를 지나 3천의 무리를 만든다.
이들은 지유(순수한 상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를 먹고살았다. 하지만 3천의 무리가 됨에 따라 지유의 부족으로 인하여 백소씨의 지파 중 지소씨가 지유를 양보하다가 혼미한 상태에서 포도를 먹음으로써 오미(五味)를 알고,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탐욕스러워 지고 흉악스러워 지게 된다.
이로 인해 마고씨는 선천의 기운을 걷어 버리게 되고, 4천인들이 지탄으로 백소씨가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쫓겨 가더라도 수행을 할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수행을 지키지 못한 백소씨는 지유가 그리워서 마고성으로 돌아오나, 안에는 못 들어 가고, 성 주위의 땅을 파서 지유를 먹으려 했다. 하지만 성밖의 지유는 흙으로 변해버리고, 성안의 지유는 오염이 되었다.
따라서 4천인 무리들이 떠날 시기가 됨을 알고 형제증표로 각각 천부인표를 가지고 떠나게 되었다.
(환궁-북, 천궁-동, 흑소-남, 백소-서)
환궁씨는 천산쪽으로 자리를 잡아 무리를 이끌고 가서 큰아들 유인에게 가르치는 직책을 주어 우주의 근본과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게 했다. 다른 아들에게는 천부인표를 줘 다른 천인을 지켜보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환궁씨는 천산의 돌이 되어 수행 복본 하겠다. 하고 아들 유인씨는 아버지 대를 물려받아 환인에게 물려주고 개불제를 지내러 천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환궁씨-유인씨-환인까지가 3천년역사를 가지고 있게 된다. 그동안 공덕으로, 본성이 밝아 져서 인간의 준수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호모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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