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과 나눈 이야기 ] 중에서...
그 상태에 계속 머무르라.
물론 너희가 너희 아닐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너희는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러할,
바로 그것 (순수하고 창조할 수 있는 영혼) 일 뿐이다.
그리하여 너희는 그 다음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을 벌였다.
즉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를 스스로 잊게 만든 것이다.
너희는 물질계로 들어오면서 자신에 관한 기억을 지웠다.
덕분에 너희는, 말하자면 성안에서 그냥 깨어나는 게 아니라,
'자신' 이 되는 쪽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너희가 완전한 선택권을 가진 존재,
즉 규정상 신인 존재로서 자신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너희가 신의 일부라는 얘기를 듣는 데서가 아니라
신의 일부가 되고자 선택하는 행동 속에서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문제라면 너희가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는가?
너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너희가 내 자식이 아닐 수는 없다.
하지만 너희는 잊을 수는 있다.
너희는 지금껏 언제나 신성한 전체의 신성한 일부,
그 몸체의 한 구성부분이었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이다.
전체와 재결합하는 행동, 신에게로 돌아가는 행동을 기억이라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사실상 너희는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를 재구성하는 쪽을,
너희의 전체인 내(神) 전체를 체험하기 위해
너희의 여러 부분들과 함께 결합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상에서 너희의 직무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이미 알고 있으니) '자신'을 재구성하는 (기억하는) 것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은 재구성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들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깨우쳐주는 것
(즉 그 사람들에게 다시 마음쓰는 것) 이
너희의 직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훌륭한 영혼의 스승들이 하나같이 해온 일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너희의 유일한 목적이다.
다시 말해 너희 영혼의 목적이다..
맙소사.
이건 정말 단순하군요. 또 정말... 대칭적이고.
제 말은 모든 게 다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는 겁니다!
갑자기 모든 게 다 그렇게 맞아들어가다니!
지금 저는 예전엔 한번도 끼워맞춰보지 못했던 그림을 보고 있어요.
좋아. 좋아.
이 대화의 목적이 바로 그거니까.
너는 내게 대답을 청해왔고, 나는 네게 대답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너는 이 대화를 책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만날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이 네가 할 일의 일부다.
자, 너는 인생에 관해 던질 많은 질문과 의문들을 갖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 기반을 다져놓았고,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터전을 깔아놓았다.
이제 다른 질문들로 넘어가 보기로 하지,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
우리가 이제까지 다뤄온 것들은 네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금방 선명해질 터이니.
묻고 싶은게 정말 많습니다.
묻고 싶은 것들이 워낙 많아서 우선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들,
가장 두드러진 것들에서 시작애햐 할 듯 싶습니다.
예컨대 왜 세상이 지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나 하는 문제 같은 거요.
그것은 인간이 신에게 던진 질문들 가운데서 가장 자주 물어왔던 것이다.
인간은 그 질문을 태초부터 던져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너희는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알고 싶어해왔다.
그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의 전형은 대체로 이렇다.
만일 신이 더없이 완벽하고 더없이 애정깊은 존재라면,
왜 전염병과 기근, 전쟁과 질병, 지진과 회오리바람과 태풍을 비롯한
온갖 자연재해, 개인의 극심한 불행과 전세계의 재난을 창조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주의 깊은 신비와 인생의 가장 깊은 의미 속에 들어 있다.
나는 너희 주변에 너희가 완벽함이라 부르는 것만을 창조하여 내 선함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나는 너희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할 수 없게 하여 내 사랑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이미 설명했다시피 너희는 사랑 아님을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는 사랑을 증명할 수 없다.
절대계를 제외하고는 대립물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절대계는 너희에게도 내게도 충분치 못했다.
나는 거기에서 언제나 그대로임 속에 존재했으며, 너희가 나온 곳도 거기이다.
절대계 속에는 앎만 있을 뿐 체험은 없다.
앎은 신성한 상태이지만 가장 위대한 기쁨은 존재 속에 있다.
존재는 오로지 체험한 뒤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을 순서대로 펼쳐 놓으면 앎, 체험, 존재가 된다.
이것이 바로 '성삼위일체', '삼위일체' 인 신이다.
성부는 모든 이해의 부모요, 모든 체험의 원천인 앎이다.
왜냐하면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체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자는 아버지가 자신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의 체현 또는 육화인 체험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존재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신은 아들이 그 자신에 관해 체험한 모든 것의 탈육화인 존재다.
그것은 오직 알고 체험한 것에 대한 기억을 가질 때만 가능한,
소박하면서도 절묘한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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