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당보다 더 강력한 쇄신을 하겠다며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가 그 면모가 드러났다. 비대위의 ‘첫 작업’은 두 가지. 디도스 사건과 관련해 ‘국민검증위원회’를 설치하고 사건의 배후로 의심을 받고 있는 최구식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하는 것과 기득권 포기 차원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회기 내 불체포 특권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하는 일 가운데 시작보다 끝이 좋은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시작이 10이라면 끝은 1이나 아예 0인 경우가 허다했다. 박근혜 비대위 역시 ‘정치적 행위’의 범주에 속한다. 시작보다 끝이 더 나을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시작부터가 수상쩍다. ‘혹시나’하는 기대를 했던 게 실수였다. ‘첫 작업’을 통해 본 비대위의 모습은 전형적인 한나라당의 모습 그대로다. 왜 그런지 몇 가지만 얘기해 보겠다. 디도스 사건 수사 검증과 최구식 의원 탈당 권유, 한나라당 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가 ‘첫 작업’이라니 어찌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 엄중하고 심각하고 시급한 사안들이 널려 있다. ‘첫 작업’이 이 수준에서 머문다는 건 비대위의 목적이 ‘쇄신’이 아니라 ‘위기탈출’에 있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디도스 사건 수사를 검증하겠단다. 박근혜 비대위가 아니더라도 검찰을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은 충분하다. 가장 큰 압박 수단은 국민여론이다. 국민들이 사건의 배후에 ‘윗선’이 있다고 확신하는 이상 검찰이 함부로 수사를 종결지을 수 없을 것이다. ‘윗선’의 꼬리라도 밝힐 수밖에 없다. 비대위가 압박한다고 해서 검찰이 ‘윗선’ 전부를 밝힐까? 어림없는 일이다. 한나라당부터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윗선’이 어디인가에 따라서 자칫 여권 전체가 박살 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대위 역시 감출 것은 철저히 감추려 할 것이다. 최구식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하겠단다. 사건의 배후로 지목 받고 있는 사람이 당에 있는 게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최 의원으로 인해 당의 이미지가 더 이상 실추되지 않도록 해보겠다는 속셈이다. 탈당 권유는 일종의 ‘꼬리 자르기’다. 여당 의원들의 회기 내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기득권 포기를 실천해 보이겠단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하나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게 얼마나 황당한 얘긴지 금방 알 수 있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은 포기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박근혜의 포기 선언’으로 없어질 권한이 아니라는 얘기다. 말장난에 불과한 ‘꼼수’다. 진정한 쇄신을 원한다면 국민과 먼저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도 정작 중대한 사안들은 건들지도 않았다. 디도스 사건 못지않게 시급한 문제가 널려 있다. 국민들이 걱정하고 크게 궁금해하는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한미 FTA는 어떤가. 박근혜 비대위원들이 정상적인 판단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한미 FTA가 얼마나 불평등한 조약인지 잘 알 것이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미국에 대한 경제주권을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한미 FTA가 아무리 이명박 정부와 이전 한나라당의 역점 사업이라 해도 조약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면 우선 지적을 했어야 옳다. 최구식 의원보다 이상득 의원이 더 문제다. 국민들은 이상득 의원에게 제기된 의혹들을 더 궁금해한다. 이 의원이 누군가. 4년간 ‘상왕’ 노릇을 해온 대통령의 친형이자 친인척 비리의 핵심에 있는 인물이다. ‘탈당’뿐 아니라 ‘제명’ 조치를 해도 무방한 사람은 거론도 하지 않았다. 비대위 황영철 대변인은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국민의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성역 없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두고 볼 일이지만 비대위 첫 작업에서 이상득 의원 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별반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친인척 비리보다 더한 게 있다. 이 대통령 부부와 아들에 대한 ‘내곡동 의혹’이 그것이다. 부동산실명제 위반, 탈세와 배임 혐의가 뚜렷해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높은 사안 중 하나다. 박근혜 비대위가 진정 국민과 소통하기를 진정 원했다면 국민이 우선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부터 거론했어야 맞다. 소통은 관심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BBK 문제는 또 어떤가. 정봉주 전 의원이 검찰에 가던 날 수천 명의 시민이 모여 정 전 의원의 무죄를 주장했다. 환호와 꽃다발에 묻혀 감옥에 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또 다시 이런 광경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은 BBK에 대해 많은 의혹을 갖고 있다. 재수사를 해야 한다는 게 국민여론이다. ‘BBK 진실’ 못지않게 국민이 크게 우려하는 게 있다. 4대강 댐 누수 문제다. 공기를 무리하게 앞당긴 낙동강의 경우 8개 댐 모두에서 물이 새고 있다.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가 들어간 공사가 이렇게 부실한데도 박근혜 비대위는 한마디 말이 없다. 4대강 사업 찬성이 당론이었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있는 거라면 비대위는 쇄신과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할 말 다할 수 없다?… 그럼 ‘그 나물에 그 밥’
이외에도 많다. 의혹투성이라서 꼭 밝혀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안들이 즐비하다. 국민들은 ‘진실’로 소통하기를 원하는데 박근혜 비대위는 언저리만 만지며 ‘쇄신 흉내’를 내고 있다. 집권 여당이고 자신들이 창출한 권력이기 때문에 할 말을 할 수 없고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분명하게 지적할 수도 없다면 박근혜 비대위는 ‘그들만의 쇄신’에 그치고 말 것이다.
‘쇄신’의 목적이 무엇인가.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받기 위함이다.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쇄신’이 아니라면 ‘쇄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감은 ‘소통과 이해’에서 출발한다. ‘첫 작업’에서 보여준 박근혜 비대위는 소통과 거리가 멀다.
박근혜 비대위, 뚜껑 열어보니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바뀌지 않은 ‘한나라당’ 그 모습이다.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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