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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재벌공화국인가[<계간 광장> 좌담] "진보진영, 민생중심 거시경제모델 찾아야"
재단법인 광장(이사장 이해찬)이 발행하는 <계간 광장>이 6일 발간된 제11호에 '한국은 재벌공화국인가'라는 좌담을 실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가 최근 동반성장위원회 등을 통해 대ㆍ중소기업 상생을 주장하는 상황은 '재벌'이 한국경제를 얼마나 왜곡시키고 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 4월 19일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재단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진행된 좌담 전문을 <계간 광장>과 공동 게재한다. 편집자.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친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무역을 많이 하는 대재벌들을 위주로 하는 법인세 감세, 금산분리 완화, 출총제 폐지 등의 정책을 시행한지 3년 가까이 접어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먼저 김상조 교수님께서 말씀을 좀 해 주시죠.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비용을 치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대기업들의 선도적 성장이 중소기업의 성장을 이끌어냈고 그 성장의 결과가 많은 사람에게 확산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여러 통계를 보면 트리클-다운의 효과가 정체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의 핵심인사들과 관료들의 기본적인 경제정책 틀은 여전히 트리클-다운 이펙트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2007년 대선캠페인의 공약집에도 '대기업의 선도적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에까지 확산되도록 한다'고 명시적으로 써놨습니다.
물론 정치적인 배경 등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 서민행보라든지 동반성장론을 꺼낸 근본 배경에는 재벌의 선도적 성장으로는 국민 전체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 경제정책의 기본은 트리클-다운 이펙트, 즉 대기업의 선도적 성장에 의존하는 환상에서 탈피해서 중소기업과 서민을 보다 직접 타겟팅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개혁진영이 선거에서 이기고 더 나가서 성공적인 사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런 분들에게 '이제 트리클-다운 이펙트는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다'라는 것을 제대로 전달해 드리고 그분들을 직접 타겟으로 하는 경제정책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환위기 전에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기업을 살려낸 외환위기 이후에는 '기업인은 망해도 기업은 살려야 한다'는 식으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재벌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냐 하면, 지금 사회분위기가 공적자금으로 회생했던 이 재벌들에게 '주인을 찾아주자'는 아주 묘한 분위기가 생겨서 전부 옛날 주인에게 넘어가는 문제가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 재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조차 거의 금기시 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나 보면, 우리 재벌들이 외환위기 전에 마구잡이 투자위주로 경영을 하다가 재무구조가 어려워진 경험을 한 후에 이익중심 경영을 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들어온 외국자본들도 다 이익경영을 하고, 단기위주 경영을 했죠. 그러면서 '기업은 오직 이익을 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다 보니까 재벌들이 갖고 있던 모든 문제가 덮여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부도를 내서 파산하는 기업은 사회적으로 악이다'라는 인식이 강해져서 이제는 재벌들이 많은 문제가 있어도 국민들이 자신도 모르게 다 덮어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재벌은 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장학생이라는 말처럼 끊임없이 사람을 관리합니다. 관료들도 나중에 차관이나 장관을 할 정도로 똑똑하다는 말이 나오면 사무관 때부터 관리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정책결정이 자연스럽게 재벌에게 유리하게 흘러갑니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금산분리 원칙을 위해 조치를 취하려 해도, 실무자들 선에서는 논의조차 안 나옵니다. 그리고 요즘 사회의 주류(主流)라는 말을 잘 쓰는데, 재벌과 메이저 언론사는 대부분 혼맥으로 유착되어 있습니다. 일부러 했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든 자기들끼리 강고한 철옹성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재벌이 사회 전체를 장악하다보니까 모든 의제를 독점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사회의 다양성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장관까지 반대 의견을 피력할 수 없어요. 오직 재벌의 논리만 의제가 되어버리고 다른 논리가 개진될 가능성이 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재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역사 측면 어디에서도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겁니다. 재벌중심 경제의 폐해는 대ㆍ중소기업 양극화로 인한 성장동력의 상실을 야기 한국경제는 소수 재벌을 중심으로 한 수직계열화가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음 김상조 : 재벌정책 하나하나를 보면 재벌들의 저항에 의해서 피폐화되고 실패한 측면도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 우리 정부의 재벌정책 기조가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재벌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근대적인 독점자본, 또 하나는 전근대적인 천민자본의 의미를 갖고 있고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 재벌입니다. 따라서 재벌 정책은 이 두 측면의 문제점들을 함께 교정하는 정책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부분인 독점자본의 문제, 즉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20년 전부터 출자총액제한제도라든지, 금융ㆍ산업 분리 같은 정책적 조치들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인 천민자본의 문제, 특히 재벌의 지배구조의 문제에 관해서는 '재벌 총수일가들에게 투명하게 하라, 당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라'는 지배구조 개선장치, 예를 들어 사외이사제 도입 등의 조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외환위기 초기단계를 거치면서 재벌정책의 기조가 전자에서 후자 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사실 '97년 이전의 재벌정책 기조는 출총제를 비롯한 경제적 집중 억제,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억제 쪽에 포인트가 맞춰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경제력 집중에 관해서는 기업집단, 재벌들이 더 크게 성장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원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바뀌고, 문제는 오직 재벌총수 일가의 견제 받지 않는 황제경영 식의 지배구조 문제를 교정하는 것으로 재벌의 폐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조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자기반성의 의미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하성 교수 이래 제가 책임자 역할을 맡아온 소액주주운동의 기조가 지배구조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이게 한국에서의 재벌개혁의 대표적인 시민운동으로 인식이 되어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어필한 측면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결국 재벌정책의 기조는 경제력 집중의 문제에서 지배구조의 문제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것이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산다'는 식의 재벌 총수의 여러 문제는 어느 정도 교정되었지만, '경제력 집중 자체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결국 기업의 발전은 국가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식의 정책기조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 결과 2002년 경제시스템이 다시 안정화된 이후에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빠른 속도로 다시 시작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이 앞에 말씀하셨던 재벌중심의 성장전략, 트리클-다운 이펙트에 의존하는 것과 연결이 되어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은 일정 정도 있었지만 재벌들이 독점자본으로서의 힘을 점점 더 갖게 되니까 천민자본 문제 보다 경제력 집중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재벌의 경제권력이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소진시켜 버려서 새로운 기업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기업들은 전부 재벌의 계열기업들입니다. 이제 한국 경제구조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과 같이 새로 설립된 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졌습니다. 나아가 경제 권력이 경제영역을 넘어서 정치, 사회, 문화, 언론으로 심지어 이데올로기의 영역으로까지 힘이 확장되면서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재벌에 대한 규제 시스템을 세심하게 재설계하는 것도 중요하고 행정 편의적인 사전적 규제를 사후적 규율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재벌정책의 목표를 지배구조 개선이 아니라 경제력 집중 억제로 다시 재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찬 : 재벌에게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나타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재벌들은 엄청나게 이익을 보면서 사내유보금이 쌓여가고 있지만 투자를 안 합니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하청계열화 되면서 납품단가 확보가 안 되니까 재투자 여력이 없어지고 도산하거나 겨우 현상유지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익이 전부 재벌 쪽으로 몰리면서 재벌들의 재무구조는 좋아졌지만 투자를 안 하니까 말씀하신 트리클-다운 효과도 나올 수가 없는 것이죠. 물론 재벌들이 투자를 피하는 이유는 재벌의 관점에서는 국내에 투자할 시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그렇다면 해외 기업하고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내고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건 또 안합니다. 결국 고용의 90%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 영역은 재투자할 여력이 없고 10%를 담당하는 재벌들은 투자를 적게 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전체적으로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지분 참여한 회사가 몇 개인지 재무파트를 제외하고는 전혀 몰라요. 밖으로 드러난 것보다 경제력 집중이 훨씬 심각합니다. 올해 10대 재벌의 계열회사가 617개라고 하는데 계열회사에 포함되지 않은 중소기업까지 포함하면 수천 개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평가 자리에서 어느 독일학자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한국기업들이 잘 나가는 이유를 첫째는 정부가 환율을 높게 해주고 있고 두 번째는 유리한 협력업체 관계, 세 번째가 비정규직의 존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기업은 비용을 엄청나게 줄여주는 정부정책과 대기업이 주도하는 하도급구조ㆍ노동시장구조를 갖고 있는데 유럽기업들은 어느 하나도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에 한국기업을 상대할 수 없는 말이죠.
결국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는 잘 나가지만 그 밑에 있는 협력업체들과 거기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성장의 과실로부터 배제되어버리는 이중구조 문제를 계속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군정은 재벌개혁을 했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총수들을 경영에서 물러나게 한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개혁이 일본 경제에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후에 일본이 경제성장하는 과정에서 재벌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는 심각하게 나온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전쟁 전 재벌시스템이 어디서 왔느냐를 보면 독일의 프러시아에서 왔습니다. 독일은 영국이나 미국보다 자본주의 역사가 훨씬 짧았지만 기업들은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았고 전쟁과정에 군수기업으로 적극 참여하면서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2차 대전 중에 독일의 경제학자들은 이 전쟁에 질 것이다, 그런데 지고 나면 어떻게 독일의 경제질서를 재구축할 것이냐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이 내세운 이론이 질서자유주의입니다. 질서자유주의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정부가 자유방임을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국가가 노력해서 공정한 경쟁질서를 만들고 그 경쟁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부는 시장의 경제과정, 수요와 공급에는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케인즈주의와는 다릅니다.
이 질서자유주의에는 대기업을 견제하는 여러 장치들이 있었습니다. 노동자의 참여도 보장했고 우리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엄격한 반독점, 불공정거래 규제 등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 질서자유주의를 보수당인 기독교민주당이 채택해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논리는 결국 파탄에 이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저는 우리 경제가 파탄에 이르기 전에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제대로 된 개혁을 했으면 좋겠는데, 과연 한국인이 일본이나 독일 같이 엄청난 비용을 치루지 않고 재벌의 폐해를 고칠 수 있을까요. 일반인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재벌개혁에 동의하고 이를 위한 정치인을 뽑을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이미 '96년에 OECD에 가입해서 자본이동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환율정책과 금리정책을 따로 관리하면서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임파서블 트리니티(impossible trinity)라고 하는데 자본이동의 자유, 환율정책, 금리정책의 세 가지는 공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이 우리 경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경제학 교수들조차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 마치 고환율정책을 쓰면서 동시에 고금리정책을 펼 수 있다고 말하는데 고환율정책은 저금리정책과는 쌍이 될 수 있지만 고금리정책과는 쌍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이명박 정부는 고환율, 저금리 정책을 써왔고, 그 결과 삼성등 대재벌의 수익성이 인위적으로 보장된 것입니다.
그런데 노동시장이나 중간재 시장에서 수요 독점이 이루어지면 반대로 한계노동생산물 만큼 분배가 되지 못하고 그것보다 낮은 수준에서 임금이나 납품가가 결정됩니다. 즉, 우리 시장구조는 이미 10년, 20년 전에 비해 대ㆍ중소기업 관계나 노동시장이 재벌에게 유리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임금이 비정규직으로 해결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납품가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치 제품시장에서 독점가격을 규제하기 위해 시장에서의 실효적인 독점률을 판단하고 독점을 해체하는 것처럼 접근해야 합니다. 이처럼 수요 쪽에서도 노력을 기울여야 요소 시장의 왜곡이 완화되고 소득 배분나 양극화가 덜 악화될 텐데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현상을 그냥 놔둔 채, 구조적인 개혁 논의조차 없는 것이 지금 한국경제의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공무원들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편의주의 때문에 정부 스스로 경제 질서를 왜곡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건설뿐만 아니라 정부가 IT 관련해서 발주하는 것도 보면, 삼성SDS, LG의 몇 개 업체가 전부 독점을 합니다.
그러면 그 업체들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시스템을 까느냐 하면 이것도 아니죠. 전부 재하청에 들어갑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빌게이츠도 불가능하고 구글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정부의 편의주의적 발상이 현상을 악화시키는 측면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외환보유고가 마치 우리 경제의 곳간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어요. 또 하나는 그 때부터 외국자본이 국내에 많이 투자하고 우리 주식시장에 들어오니까 이에 맞서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인식도 강합니다.
성장률 신화는 그 전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왔죠. 공무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가 성장률입니다. 고환율정책을 통해서 수출을 많이 하는 것이 성장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요.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외형적 성장률에 잘 반영이 안 됩니다. 경제 관료들은 성장률 지표를 사용하는 것이 아주 만성화 되어 있습니다.
제가 총리가 되었을 때, 지금하고 비슷한 1,100원에서 1,050원 사이였는데 그들은 절대 천원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했지만 천원이하로 내려가도 큰 문제가 없었어요. 대신에 그 과정을 겪으면서 생산성이 높아졌습니다. 전형적인 케이스가 하이닉스였죠. 하이닉스는 주인도 없었고 다른 투자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수출을 해야 하니까 자체 기술력과 생산성을 높여서 끌고 갔습니다.
재벌은 이처럼 언론에 대해서는 광고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관료들에게는 학맥으로 로비를 하고 일부는 퇴직 후의 사후 보장을 해주면서 얽혀 있습니다. 국회에 대해서도 로비를 많이 합니다. 어떤 법안이 하나 나오면 굉장히 조직적으로 대응합니다.
특히 공정거래나 금융관련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무위나 재경위 같은 경우에는 하나의 재벌이 아니라 여러 재벌과, 전경련이 이중으로 로비를 합니다. 주로 반대하거나 견제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학맥과 돈으로 로비를 하기 때문에 법안을 막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 사회의 상층구조는 혈연화 되어 있습니다. 이런 영향들로 인해서 재벌정책이 잘 안 풀리는 겁니다.
심지어는 고환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외평채까지 발행합니다. 2004년도는 수출이 잘 되고 있었는데도 외평채를 발행해서 50억 달러씩 사들이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더군요. 그러면서도 재경부 관료들은 계속 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3분의 1 내지 4분의 1은 원화 외평채를 발행하고 나머지는 한국은행이 통화안정채권을 발행해서 늘리는 것이죠.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에 환율이 점점 떨어졌습니다. 이전만큼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1400원에서 1300원, 1200원으로 떨어지고 참여정부에서는 900원대까지 떨어졌는데, 사실 전두환 때는 600원대이었던 적도 있었거든요.
여기서 정상적인 판단을 했더라면 정부가 더 이상 외환시장에 개입해서 외환을 쌓는 것이 아니라 800원대로 가면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생산성을 높여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제2차 환란은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1년에 수백억 달러씩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것이 좋은 것 같았지만 바로 그것이 제2 환란의 씨앗이었죠. 당시 유입된 자본은 대부분 단기 외채였습니다. 2008년 가을 이후 단기외채 만기 연장률이 50%, 또는 그 이하로 떨어지니까 한 달에 몇 백억 달러씩 외환보유액을 쓸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 2,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미국과 3백억 달러를 스왑하고 중국, 일본에 손을 벌려서 겨우 막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1차 환란에 재벌의 잘못이 있었다는 것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하고 있는데, 2차 환란에도 역시 재벌의 문제, 고환율을 고집하는 재벌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고리의 본질을 지적하면 오히려 지적하는 사람이 왕따 내지 바보취급을 당합니다. 거기에 정치권력조차 이명박 정권처럼 진정한 보수가 아닌,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이 집권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이명박 정권은 고사하고 민주정부 10년 하에서도 수출 재벌을 위해서는 환율정책과 함께 기업의 부실을 털어주고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정상화시켜주는 등, 비용을 아끼지 않고 직ㆍ간접적인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국민의정부 마지막이었던 '02년에는 금융계열사가 가지고 있는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허가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도 초기에는 의결권 행사를 다시 제한했지만 마지막에는 공익재단에 출연하는 것도 늘려줬습니다.
그렇게 해서 재벌 총수 본인과 가족의 직접적인 지분은 1∼2%에 불과하지만 계열사 지분에 금융계열사의 지분, 공익재단의 지분을 포함하게 되니까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는 카드가 '97년 전 보다 2개나 더 생겼습니다. 더구나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출총제를 이명박 정부가 없앴기 때문에 재벌의 인위적인 가공자본을 통한 그룹 지배와 세습은 '97년에 비해 더 쉬워졌습니다.
거기다 차명거래도 제대로 규제를 안 하니까 개선 된 것은 거의 없고, 총수의 세습을 도와주는 장치만 더 많아졌습니다. 경영능력이 별로 없어도 이익을 쉽게 낼 수 있는가하면 세습도 더 쉬워지고, 이런 이유들로 이미 우리 사회는 재벌공화국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기존 재벌에 이들 소재벌까지 합쳐서 보면 이들의 하청기업이 되거나 말단 지점, 분점이라도 안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겁니다. 심지어 동네에서 담배를 사려해도 재벌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사야하고, 막걸리도 거기서 사먹어야 합니다. 서비스, 외식, 유통, 인터넷쇼핑까지 이들이 다 장악을 하고 있고 이제는 대학에까지 재벌이 진출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영역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이 현실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김상조 : 재벌의 폐해 중 가장 심각한 부분이 정부정책의 왜곡이고 대표적인 것이 환율정책 문제입니다. 환율정책을 말하면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현 장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004년에도 그랬고 2008년도에도 마찬가지죠. 정부정책의 왜곡은 결국 관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 국가의 개입을 통해서 공정 경쟁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시스템과 관료들이 이른바 '공공선의 담지자'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장하준 교수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는 이 부분을 의심할 수 없는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 강화를 말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아무런 모순을 안 느낄 수 있겠지만 한국사회는 영국과는 너무 다릅니다.
특히 경제 관료들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보수화 된 세력이고 사실상 재벌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장하준 교수의 논리는 한국사회에서는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진보개혁진영에서는 모피아들이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을 하지만 저는 최중경, 강만수로 대표되는 이런 관료들은 신자유주의자라기보다는 중상주의자(重商主義者)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보수화된 관료사회를 극복하지 못하면 설사 선거를 통해서 집권을 한다고 해도 모피아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처럼 삼성경제연구소를 비롯한 재벌의 경제 이데올로기가 국민들의 경제의식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관료들이 경제정책을 왜곡하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 집권기회가 주어진다면 집권세력이 하나의 팀을 만들어서 관료들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개혁적인 정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계(視界)가 너무 짧은 거죠. 중앙은행과 금융 감독기구가 독립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들이 정치권력에 종속 되면 그 때, 그 때의 경기부양이나 성장에 매몰되어서 제대로 감독도 못하고 물가안정대책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죠. 진보정당이 집권해도 1년, 2년 단위의 단기적인 관점에서 성장과 일자리 문제를 생각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벌이 관료들과 짜고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구를 종속화하여 성장이란 미명하에 저금리, 고환율정책을 지속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능하고 강한 정부여야 지속가능한 진보정권이라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용카드 문제였죠. 이 2개가 2001년 하반기부터 2002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경기가 나쁘다는 소리는 안 들었지만 결국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가져오고 경제구조는 매우 취약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정부에게 큰 부담이 되었죠.
그런데 집행부처, 경제 관료들의 경제에 대한 기본 인식은 주로 토목사업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우리 재정을 4대강 같은 토목사업에 과도하게 몰아주는 것이죠. 그 다음이 고환율ㆍ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고 다음이 규제완화입니다.
이런 것들을 해주는 것이 마치 정부의 일인 것처럼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진보개혁세력이 관료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와 정치적, 경제적 배경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지간하면 그 논리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쪽으로 갔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보고를 받지 스스로 기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관료들이 논리를 그럴싸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다음은 언론이 나섭니다. 당시에 일반 서민들 아파트값은 안 올랐고 가수요가 있는 곳만 올랐는데, 언론은 이제 '왜 우리 집값은 안 오르냐'는 원망을 부추깁니다. 집값이 안 오르는 것이 정상인데 여론을 부추기는 것이죠.
그래서 대책을 논의할 때, 집 없는 50% 세입자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면 임대아파트 추가공급 대책처럼 작은 아이템이 나옵니다. 이것이 부동산 대책에 포함되는 같은 아이템이지만 규모와 질이 완전히 다른 것인데, 같이 나열을 해서 서민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우는 것처럼 합니다.
지금 정부에서 동반성장을 위해 대기업들이 무슨 협약을 맺는다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기본 구조는 독점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가면서 부분적으로 몇 가지 정책을 내세워 무슨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관료의 논리 구조를 깰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부분별 개혁과제들을 조직화하는 거시정책체계, 산업정책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이것이 되지 않다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관료들이 개혁과제들에 대해 말만 해놓고 이것이 거시적으로 어떻게 연계되는지 보고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들이 의도하는, 또는 로비 받은 대로 정책을 끌고 가도 거기에 완전히 넘어가버리는 악순환을 반복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끈끈하게 묶여 있습니다. 만약 윗사람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승진할 기회가 생기고, 자신이 책임을 지고 물러날 일이 생기면 산하기관으로 가서 고액 연봉을 받으면 됩니다.
일반 부처 공무원이 기관장으로 나가는 산하기관은 연봉이 1억 원을 겨우 넘지만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나가는 산하기관은 연봉이 보통 6, 7억원하는 구조입니다. 공무원들 입장에서 보면 '정권은 유한하고 장관은 잠시고 공무원은 영원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다양성이 전혀 없습니다. 자본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들이 전부 모피아, 기획재경부 출신입니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그룹에 모피아 출신도 있고, 민간 출신도 있고, 한국은행 출신도 참여해서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거나 반영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대 기획재정부 장관들을 보면 조순씨 등 몇 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경제관료 출신들입니다. 그런데 경제 관료들이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고 법학공부를 한 사람들이 다수예요. 그러다 보니 경제를 보는 사고방식, 접근방식이 많이 다릅니다. 저는 기획재정부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은 한번은 경제 관료를 시키고 다음은 다른 분야의 사람을 시켜야 부처 내 사고의 다양성이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시 공무원들은 공급대책만 가지고 나왔어요. 그래서 유동성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은행에서 창구지도를 해서 소득대비 대출한도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는데 공무원들이 절대 안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일이지만 그 때가 2004년도였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졌다면 참여정부 시절에 그렇게 집값이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돌아다니는 돈이 전부 재벌과 이른바 강남 3구, 분당에서 나온 겁니다. 이 사람들의 돈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집값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처음에는 공급정책이 보고되었지만 나중에는 재경부도 유동성을 규제하지 않으면 물가가 안 잡히겠다고 생각해서 DTI를 하자고 합의가 된 것이죠. 그래서 결국 2006년에 공급계획하고 DTI 두 개가 같이 나갔지만 이미 집값이 한참 오른 상태에서 추진하게 된 상태라서 사실상 효과를 보지 못했었습니다.
김태동 : 저는 수 십년간 자신들 나름대로 일해 온 경험이 있는 기존 관료들을 활용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고 봅니다. 그것 보다는 결국 민주정부 10년 동안 집권한 경험이 있으니까 자체 정책생산 능력을 기르고, 연계된 씽크탱크와 네트워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온라인을 활용하면 옛날보다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당의 정책위원회에서 책임지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야합니다. 결국 머리가 스마트해져야 집권 자체도 되는 것이고 집권한 뒤에도 성공한 정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객관적인 여건은 재벌의 힘이 커졌기 때문에 더 어렵겠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의 발전, 그리고 여기에 연결된 작은 씽크탱크들이 잘 네트워킹하면 큰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법을 제대로 집행하라는 얘기고 만약 법이 올바르지 않으면 법을 바꾸라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법을 만들고 엄격하게 집행만 해도 재벌의 나쁜 행태를 줄일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은 예산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관행화된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는 재벌들이 아프게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벌칙이 예외없이 부과되어야 그런 행위를 안 하게 됩니다. 징벌적 배상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잘 결합이 되어야지만 거기서 훨씬 고부가가치의 제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고 제대로 된 고용도 만들어지는 거라서 서비스업의 발전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핵심 제조업체가 이미 재벌의 계열사로 되어 있다 보니 재벌 3세들이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영역으로 유통업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전혀 검증되지 않은 재벌 3세들, 더구나 위험 없는 안전한 삶만을 추구하는 3세들의 행태를 보면 이 자체가 개인의 불행이고, 기업의 불행이며 국민들의 불행이라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 등에 대한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법체계는 이런 기업집단 전체를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계열사들을 규율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 규칙 사이의 괴리에서 나오는 문제가 많습니다. 재벌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주장할 때는 기업집단의 강점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기들이 책임져야하는 일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차원으로 후퇴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나라마다 기업집단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은 다르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독일, 이탈리아처럼 상법체계 하에서 기업집단들을 하나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 주체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기업집단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하도급 기업의 관계도 준내부적 관계로 규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고 봅니다. 나아가서 금융기관과의 거래관계에서도 이런 관점이 적용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집단소송제가 입법화는 됐는데, 활성화되지 않은 것도 문제죠. 그 다음에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선진국 기관투자가처럼 재벌의 경영진이 잘못했을 때 주주총회에서 대주주로서 반대의견을 분명하게 내야 합니다. 결국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죠.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법체계 이전에 법대로도 제대로 안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시중은행 외에도 금융투자회사, 미국과 같은 경우에는 투자은행이겠죠, 이것을 산업재벌이 운영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지금 정부는 못하겠지만 우리 경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재벌의 시중은행 지분 한도를 다시 낮추고 PEF(사모투자펀드)를 못하게 하고, 금융투자 쪽에서도 재벌이 손을 떼도록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전에 대우그룹 같은 경우도 금융투자 부문은 별 문제가 없었는데도 대우가 부도가 나면서 같이 부실화 되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제3의 환란, 제4의 금융위기가 닥치면 일부 시중은행 주가가 일시에 폭락하면서 시중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재벌의 자회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 이전 지주회사제도에서도 상장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30%, 비상장 자회사는 50%로 너무 낮은 수준이었는데, 2007년도에는 상장사는 20%, 비상장사는 30%로 낮춰주고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업무관련성 요건을 폐기하고 부채비율도 완화해 버렸습니다. 참여정부의 2차례 공정거래법 개정은 재벌개혁의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가 벌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금산분리 원칙은 대상이 은행이냐, 아니냐가 중요했습니다. 은행이면 강하게 규제하고 비은행이면 아예 규제를 안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교훈은 은행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해서 시스템 리스크를 가져올 잠재적 위험성이 있느냐'에 따라서 규제의 강도를 달리해야 한다는 것임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재벌 몇 개가 사실상 금융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삼성, 한화, 동부, 동양, 태광 등인데 어떻게 보면 몇 개 그룹의 문제입니다. 몇 개 그룹이 금융을 지배함으로써 시장경제의 원리를 왜곡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벌의 금융지배문제에 관해서 좀 더 분명한 규제원칙과 실행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향후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최근에 도요타가 망가진 이유 중 품질관리가 제대로 안 된 부분도 있지만, 도요타의 별명이 도요타 뱅크일 정도로 사내유보금이 워낙 많기 때문에 외부 자본시장, 금융시장에서의 규제나 감독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데 있어요. 완전히 폐쇄된 공간에서 독자적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이 오래되다 보니까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그것을 시정하는 시스템을 완전히 상실한 것입니다. 금융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본주의에서 감시자거든요. 그 감시자를 제대로 세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출총제 같은 문제는 사전적 규제로 봅니다. 그래서 출총제를 완화하는 대신 다른 식의 보완장치로 바꿔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사후적 감독기능을 하는 공정위나 금융위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전규제를 사후적 규율로 바꾸기 위해서는 규제기관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키우는 노력이 반드시 같이 가야합니다.
또 하나, 출총제와 금산분리원칙을 같은 반열에 놓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출총제가 완화하고 보완해야 하는 사전적 규제라고 생각하지만 금산분리는 사후적 감독으로 완화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에 이것을 무너뜨리려는 재계의 로비에 대해서는 원칙적 입장을 지켜가야 합니다.
이미 삼성은 은행이 필요 없는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시장의 규율을 전혀 받지 않는 기업이 되고 있는 것이죠. 도요타 예에서 보듯이 돈을 시장에서 빌릴 필요가 없으니까, 신용분석을 당할 필요도 없고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금산분리 문제는 정말 신중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은 자체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술⋅디자인 개발, 해외시장 개척, 공동구매, 공동판매 등을 혼자 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그들 사이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조직이나 관행들이 잘 발전되어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 상호간의 수평적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 있어야만 대기업과의 수직적 거래관계에서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현행 법체계에서 이러한 네트워크는 공정거래법 19조의 담합, 카르텔에 해당됩니다. 이번에 하도급법을 개정할 때도 납품단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집단 교섭권을 주자라는 얘기가 일각에서 있었지만 그것을 못하고 협동조합에게 대리로 신청할 수 있는 권한만 줬는데 왜 집단 교섭이 안 되냐 하면 이것이 법 규정상 담합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초과이익 공유제'처럼 이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재계가 이념적으로 반발하는 것처럼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깔아주자는 아이디어도 재벌들은 이념적으로 거부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점들을 극복하는 것이 재벌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가서 중소기업을 발전시키는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지간한 수출 대기업들은 평균 임금이 8천만원을 넘어가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계열화되어 있는 하청기업들은 비정규직에다가 임금도 낮고 고용도 불안한 상태입니다. 노동연대가 안 되는 이런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의 기본 정신이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건데 그것이 오히려 약자들의 교섭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가령 지금 중국이 노동력, 자본을 투입해서 성장하고 있지만 조금 더 지나 우리와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토대가 되어야 자본주의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과 같이 금산분리 원칙이 계속 완화되고 재벌의 독점이 심화되는 현상이 지속 될 수 있겠냐는 것이죠.
언제쯤, 어디에서 궁극적으로 파탄이 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흐름을 막을 진보개혁진영의 역량은 미약한 수준입니다. 한국경제 구조가 이런 방식으로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정말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 오랜 시간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좌담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계간 <광장>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0504162344§ion=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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