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향기 나는 사람은?

장백산-1 2013. 4. 13. 17:17

 

 

남양주 봉선사 조실 월 운 스님

 

 

오늘 여기 모이신 분들께 ‘불교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意味인지 말씀드릴까 합니다. 옛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말했습니다.

 

唯我獨尊이라는 것은 ‘나 혼자 잘났다’는 말이 아니라

하늘위 하늘 아래 ‘내’가 가장 높은 存在라는 의미입니다. 唯我獨尊이라는 말에서

’는 부처 自身만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 한사람 한사람이 다 해당됩니다.

 

이 고사는 “내가 어떻게 選擇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가는 길을 만들어낸다. 남이 만들어준다는 生覺을

하지 말아라. 남에게 期待해서도 안되며, 잘못되었다고 남을 怨望해서도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가 빨리 가고 싶어 한번쯤 살짝 반칙을 해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通하질 않습니다. 나 自身에게 責任이 있음을 自覺하는 存在이기 때문에 自己 自身을 嚴하게 다룰 줄 알 때에 비로소 福을 맞이할 줄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個人 個人이 철저히 自身을 제어하는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불교에서는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 成佛道) 즉 나와 남이 함께 부처의 길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나 自身을 철저히 制禦하기 때문에 내가 훗날 災殃받을 것이 없고, 個人 個人이 아름다워지면 이 世上이 아름다워집니다. 나와 남이 한꺼번에 成佛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意味입니다.

 

불교를 믿는다는 이야기는 가장 健康한 自由를 찾는 길이며,

나 自身이 떳떳하게 바르게 사는 길입니다.

‘나 하나만 바로 서면 天下가  바로 선다, 내가 變하면 天下가 달라진다, 나 하나가 깨끗하게 살면 대한민국의 4000만분의 1이 깨끗해진다’ 이렇게 生覺하십시오.

우리가 불교를 믿는 긍지, 불교를 믿는 보람을 여기서 찾으셔야 합니다.

 

나 自身이 無限한 能力을 갖춘 存在로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後悔없는 幸福한 삶을 살 수 있는

資格을 가질 수 있고  附與받는 것이 佛敎입니다.

 

부처님께서는 道를 깨우치시고 2주일만에 “안되겠다. 중생들을 구제해야겠다” 決心하시고 俗世로 내려오십니다. 그 부분을 이야기한 것이 『華嚴經』 如來出現品이라는 것인데 『화엄경』 약찬게에 보면

如來 당신께서 山에서 내려오면서 중생들에게 絶對 變할 수 없는 眞理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를 소위 사자후라고 합니다.

 

제1 사자후 부분을 천번만번 읽어서 意味를 제대로 把握하고  이것만 제대로 習得해도

불교를 더 배울게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자 다같이 합장을 하고 따라합시다.

 

壯하고 貴하도다.

一切衆生은 나와 같은 똑같은 부처이건만

스스로의 妄想 때문에 스스로가 부처임을 알지 못하니

가엽도다.

내 이제 方便으로 가르치고 引導하여

그들 스스로가 부처임을 깨닫게 하리라.

 

이것이 바로 불교교리의 骨字입니다.

‘장하고 귀하도다’ 라는 것은 당신 마음의 감격스러움을 표현하시고,

아울러 부처가 중생이 되고 중생이 부처 되는 길이 참으로 장하고 귀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 자리에서 중생으로 옮겨가고,

중생 자리에서 부처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 自己들 選擇에 달린 것인데, 그걸 모르니 딱하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一切衆生은 부처님과 똑같다고 설법하셨습니다. 너도 나도 다같이 부처라고 해서 석가모니 부처님과 내가 1對1 같이 맞짱 뜨자고 할 수 있는 處地는 아닙니다.

왜냐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처님은 本生佛이고, 부처님은 修行佛  卽 닦아서 드러나신 부처님이에요.

이것은 마치 거울과 같은 原理입니다. 옛날에는 거울이 없어서 청동을 닦아서 거기에 얼굴을 비췄어요.

시커먼 쇳덩어리를 潤이 날 때까지 갈면 얼굴이 비치지만 그걸 갈지 않고 내버려두면 또 녹이 슬어요.

 

즉 우리는 本來 밝은 性稟을 가지고 있는데, 내 스스로가 갈지 않고 자꾸 녹물만 뒤집어쓰고 있으니

부처님이 보시기에 그런 모습이 아주 딱하신 거에요.

여기서 벗어나려면 뭘로 벗겨야는가. 스스로가 녹을 벗겨내야 합니다.

다른 종교에서처럼 全知全能한 神에게 벗겨주십사 빌고 있기만 하면 벗겨낼 수가 없어요.

부처님과 중생의 關係가 무엇이라고 生覺하십니까. 우리가 禮佛드릴 때 뭐라고 합니까?

三界導師  四生慈父라고 하잖아요. 人類의 길을 먼저 걸어 간 사람이 그 길을 일러주고,

그 方法에 따라 利得을 取하는 것은 너희 몫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立場입니다.

 

하지만 그 몫을 아무도 아무도 代身해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알아서 다 해 주겠지’라는 생각은 불교에서는 通하질 않습니다.

 

이 법문을 듣고 ‘올커니! 나도 한번 해보자’ 이 마음을 내지 않으면 불교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나옹 스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사를 다 지낸 후에 따님이 서러워서 막 울고 있으려니

나옹 스님이 누이에게 말씀 하셨어요.

 

“여보게 누이. 울지 말고 염불하시게. 슬퍼하는 마음을 염불로 돌리시게.” 하셨어요.

 

그랬더니 누이가 “오리버니나 실컷 염불하시오. 눈물이 나는데 어찌 염불을 하겠소”하고 쏘아붙이더래요. 그리고는 염불을 안하네.

 

얼마 後에 점심을 차려서는 스님이 꾸역꾸역 혼자 다 드시고는 싹 다 치워버렸어.

누이가 실컷 울다보니 오래비가 지 혼자 밥을 다 먹고 치워버렸네. 이런 괘씸한 경우가 다 있나.

 

“오라버니는 사람도 아니여? 내가 울고 있으면 달래고 밥을 좀 먹어보라고 해야할꺼 아녀.”

 

누니의 말에 나옹 스님이 받아치길 “아까 누이가 뭐라 그랬는가. 누이 대신 염불하라고 그랬으니

밥도 내가 대신 먹고 화장실도 내가 갈 터이니 자네는 계속 울고 있게나.”

 

누이가 “어째 내가 지금 배가 고픈데 내 밥을 오라버니가 먹소.” 하자,

스님은 “그 말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네. 念佛도 자기 몫이라고, 내 염불은 내가 하고

누이 염불은 누이가 해야지 어찌 그걸 남이 代身 해줄 수 있단 말인가.” 하셨답니다.

 

이 말에 나옹 스님 누이가 번뜩 깨닫고 念佛을 했다는거 아닙니까.

그와 같이 스스로가 닦고 스스로가 깨닫는 것이 가장 기쁜 것입니다.

 

속담에 하루에 고기를 다섯 상자씩 보내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일러주라고 한 것과 같이

自己 스스로가 싸워서 自己 自身의 惡習을 이겨낸 뒤에 기쁨을 누리는 것을 喜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중생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

 

부처님이라고 하는 先覺者께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걸어가시고 어디에는 平地가 있고 어디에는 샘이 있다는 것을 일러주신 거에요.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서 가기만 하면 되는데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路程이라고 하는 것이 가만히 보면 一般  旅行길이라고 하면 들도 있고 산도 있고 물도 있고 그렇지만,

우리 人生은 單純히 그것만이 아니지.

 

내가 젊었을 때 流行歌를 좋아했는데, 부를 줄은 몰라도 가사를 들어보면 그렇게 좋아. 참 신기한게

人生길을 읊는데, 희안하게 잘 맞어요. 인생길 굽이굽이, 슬퍼서 울고 기뻐서 웃고 그런단 말이지.

 

부처님도 人生을 굽이굽이 보셨는데, 굽이굽이가 산이 됐건 물이 됐건

한결같이 깨닫지 못한 중생에게는 그 自體가 苦痛이요, 깨치신 분에게는 그 自體가 極樂이에요.

 

똑같은 보름달을 보고도 마음이 슬프면 저 달도 슬퍼서 내 마음처럼 저렇게 슬프게 울고 있고,

내 마음이 기쁘면 저 달도 기쁘게 춤을 추고 있단 말이지. 실제로야 달이 그 높은데 앉아서

우리 중생이 기분 좋으면 웃고, 기분 나쁘다고 콧방귀라도 뀌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보면 自己 마음이 비뚤어져 있으면

남을 미워하고 남도 비뚤어져 보이는 등 변덕을 부리는 거에요.

 

부처님은 중생들이 오랜 習慣에 依해서 그렇게 危險의 길, 苦難의 길 그 그 險한 길을 잘 일러서 가는 길을 잘 이겨내고 가는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이 方法이 바로 네 마음으로 네 어려움을 잘 克復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自業自得이라고 해요.

自己가 나쁜 業을 지으면 또 다른 나쁜 業을 받고  맑은 業을 지으면 맑은 業을 받는다.

 

우리가 本來 맑던 자리에서 왜 중생이 되었겠습니까. 언젠부터인지도 모르게 우리는 중생이 되었습니다.

 

經典에서는 이를 꿈에 비유를 했습니다.

自己도 모르게 잠이 슬며시 들어버리듯이, 自己도 모르게 迷惑의 世界로 고개를 돌려서 홀연히 맑은 하늘에 구름이 한점 구름이 생기듯이 虛妄한 마음이 生기는데, 虛妄한 마음을 이름 짓기를 無明이라고 합니다. 이거 잘못 외어서 ‘광목’이라고 하지말고 ‘無明’이라고 합니다.

 

無明이 생기는데 이게 없을 무(無)에 밝을 명(明)자입니다.

本來 밝은 자리였는데  밝지 못한 것이 조금 生기고, 이것이 바이러스처럼 새끼를 칩니다.

 

無明이 쌓여가다 보면 사람이 달라져요. 처음에는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다가, 나중에는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오히려 안하면 재미가 없는데… 이렇게 돼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變한다고 하잖아요. 불교신자는 내 마음을 그런데다  許容하지 말고, 틈새를 두지 말아야 합니다.

恒常  돌아보고 自己를 찾으라는 겁니다.

 

뻔히 죽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불을 찾는 나방처럼 뛰어드는게 우리 衆生입니다.

부처님이 우리 중생들의 實相을 잘 알고 그 길로 가지 말라고 戒를 내려주신 겁니다.

 

우리가 예불문을 외울 때 戒香, 定香, 慧香, 解脫香, 解脫智見香 5分香을 독송합니다.

이 다섯가지가 갖춰지는게 香기가 난다고 그래서 오분향이라고 합니다.

계와 정과 혜와 해탈향으로 부처님께 香을 올리고

부처님의 名號를 부를 때 ‘나는 香氣나는 사람이다’라고 生覺하십시오.

 

戒香은 맨 첫 段階에요. 계를 잘 지키는 것으로 향을 삼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겁니다.

 

戒가 뭡니까. 내 마음과 뜻을 가지고 否當한 짓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남의 生命을 뺏지 말고,

否當하게 남의 것을 取하지 말고, 否當하게  남의 南子, 남의 女子를 取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戒法에 어긋나지 않게 삶을 사는 사람을 香氣로운 사람이라 하고, 그 香氣를 戒香이라고 합니다.

 

戒를 잘 지키는 것은 우리가 빠지기 쉬운 迷妄에서 벗어나 맑고 맑은 부처님 世界로 홀연히 善業의 씨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불교가 다들 어렵다고 말합니다만 뻔히 틀린줄 알면서도 誘惑을 뿌리칠 수 없는 그 어려움을 어떻게 實踐하느냐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불교가 쉽기는 세수를 하다 콧물 닦는 것보다 쉬운 것이니, 이는 콩 심은데 콩나는 法과 같은 原理이기 때문입니다. 즉 福을 받고 싶은 사람은 福스러운 일을 해야하고, 否定한 業을 받기 싫은 사람은 否定한 일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原理입니다.

 

이게 어렵죠. 하지만 어려운 줄 알고 도전해 나가는 것이 불교입니다.

“사람답게 살려면 스스로를 가꾸어서 내 몸값을 올리고 나에게서 香氣가 나도록 만들어

나 自身을 값진 사람으로 尊貴한 사람으로 만들어라. 스스로 나를 높이는 길이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로 唯我獨尊의 진짜 意味입니다.

 

여러분은 불교 믿게 되신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셔야 합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지견향 등 이 다섯가지를 갖추면 바로 부처님의 核心, 法身이 되는 것 아닙니까.

계향  정향… 독송할 때 ‘이게 뭔소리여, 개장국 냄새나는 소리여’ 라고 生覺하지 말고,

예불 드릴 때 戒를 잘 지킬 때 나는 香氣가 무엇일건지 잘 生覺해보십시오.

 

“나의 평소 言動에서 香氣가 나는가. 나의 말마디를 얘기 듣는 對相이 다시 듣고 싶어하는가. 내가 지나가는 발자취가 과연 언제 돌아봐도 언제든지 떳떳할 수 있는가. 모퉁이 모퉁이 마다 돌아봐도 내가 언제든지 極樂에 나를 내세울 수 있는가. 나를 값진 사람으로 만드는 길이 여기 있는데, 내가 이 佛法 만난 것을 어찌 경하스럽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여러분 同感하십니까. 제 말씀에 조금이라도 동감하신 분은

갈수록 삶이 이런 것이구나, 참으로 기쁘도다 라고 깨닫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試鍊을 만나고 困境에 처해도 늘 法門을 마음에 새겨서 ‘나는 佛子다’ 하는 信念으로 살다보면

여러분들의 營響을 받아 實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테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부처님 말씀이 이 社會를 바로잡을 큰 역할을 하리라 믿습니다

가져온 곳 : 
카페 >불 교 학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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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無盡(정현동)|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