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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예를 들어볼까요. 전날에 술을 많이 먹었거나 파티를 심하게 한 경우 아침에 일어나면 여러분은 완전히 지쳐있는 狀態일 것입니다. 전날 옆에 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畜生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샤워 하고 면도 하고 화장도 하고 옷을 입어서 꾸미면 여러분은 스스로가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天神界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늦었어요. 택시를 탔는데 길이 막히죠. 답답하고 신경질이 납니다. 아마 地獄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회사에 도착했는데 동료가 승진을 했거나 성과를 잘 내는 것을 보면 질투를 느끼죠. 아수라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금요일이나 토요일이 되면 여러분은 또 신나게 놀겠죠. 온갖 화려한 놀이장소들이 여러분을 부르고 그것을 즐기죠. 바로 보통 人間의 삶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의 知覺 形態일 것입니다. 이것이 그 다음에 經驗이나 知覺을 하는데 있어 바탕이 되죠. 더 많은 希望과 더 많은 不安이 생기고 그래서 더 많은 行動이 介入됩니다. 行動이 結果를 낳고 그 結果가 더 많은 條件과 原因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돌고 돕니다. 이 여섯 가지 경험을 變化시키기 위해 우리는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 定念이라는 것은 불교수행의 대들보와 같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대적해야할 敵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사탄을 이야기하지만 불교에서는 煩惱에 찬 마음이 가장 큰 敵입니다. 그 外에 外部에 存在하는 惡魔는 없습니다. 煩惱가 갖고 있는 主된 作用의 하나는 眞實을 가리는 것입니다. 眞實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結果的으로 우리는 虛構의 世上과 相互作用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알아차림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수천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觀世音보살님의 名號를 부르고 生覺하는 것도 그 한 가지 방법입니다. 옴마니반메훔은 觀世音보살님의 또 따른 名號입니다. 觀世音보살님을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의 머리, 어깨 위에, 가슴 안에 觀世音보살님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場所는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觀世音보살을 떠올리는 瞬間 바로 그 자리가 觀世音보살의 常住處가 됩니다. 좋은 음악을 듣거나 좋은 경치를 보았을 때 觀世音보살님에게 供養하는 마음을 내면 음악이나 경치도 수행을 하는 道具가 됩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觀世音보살님을 떠올리기로 하면 커피는 수행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나름의 도구를 만들면 됩니다.
觀世音菩薩님은 菩提心이 人格化된 것입니다 보리심이 형상을 갖고 있다면 관세음보살과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보리심이 소리를 갖고 있다면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소리일 것입니다. 보리심의 材料는 智慧와 慈悲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관세음보살님을 記憶한다면 지혜와 자비를 記憶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보리심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障碍 중의 하나가 我執, 自己愛입니다. 自己愛는 恒常 작은 상자 안에 自身을 앉혀놓고 싶어합니다.
상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보리심은 상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勇氣를 줍니다. 一切 衆生을 다 깨달음에 이르게 하겠다는 發願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을 佛子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改宗시키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부처가 되기를 祈禱해야 합니다. 이러한 發願을 닦는 동안 여러분들은 自己愛를 점점 줄여갈 것입니다. 그것이 점점 줄어들면 二元的 生覺도 점차 사라집니다. 二元的인 生覺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實在한다는 生覺도 점점 느슨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空性에 대한 理解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여러분은 누군가 여러분을 稱讚하거나 辱한다 해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法을 나누는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오늘 法會의 모든 功德을 一切 衆生의 智慧 增進과 여러분들의 修行成就를 위해 回向합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8월3일 봉은사를 방문한 종사르 잠양 켄체 린포체의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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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르 잠양 켄체 린포체는
1961년 히말라야 부탄왕국에서 출생했다. 일곱 살 때 티베트 불교계의 스승 잠양 켄체 왕포(1820∼1892)의 환생자로 판명됐다. 현재 티베트와 인도에 있는 종사르 사원 네 곳에서 약 2000여 명 스님들의 수행을 지원하고 있으며 전 세계 6곳에 있는 수행센터 ‘싯다르타의 의도’와 비영리단체 ‘켄체 재단’, ‘연꽃 활동’ 등을 통해 낙후된 국가의 어린이 교육과 빈민 구제에도 앞장서고 있다. 1994년 영화 ‘리틀 붓다’의 고문을 맡았고 ‘더 컵’‘나그네와 마술사’를 제작해 영화감독으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출처: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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