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에픽테투스의 삶의 기술이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삶에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우리는 잃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잃었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말하라.
너의 자식이 죽었는가? 아니다. 그는 本來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너의 배우자가 죽었는가? 아니다.
그는 本來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너의 부모가 죽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너의 財産과 所有物들을 잃고 빼앗겼는가? 아니다. 그것들 역시 本來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지금 重要한 것은 이것이다 卽, 世上이 許諾했기 때문에 넌 지금 現在 이러이러한 것들을 갖고 있는 것뿐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네 곁에 있는 동안에 그것들을 所重하게 여겨라. 旅行者가 여행중에 잠시 머무는 여인숙의
방을 소중히 여기듯이. “
우리가 이번 生에 오래도록 삶을 살 것 같지만, 또한 이 몸뚱이나, 재산, 돈, 명예, 권력, 지위 이런 것들이
나의 實體인 것 같지만, 나라고 하는 存在는 이번 生에 잠시 旅行을 떠나온 存在일 뿐입니다. 이 地球별로
잠시 잠깐 旅行을 떠나 와서 이렇게 잠시 살다가 때가 되면 가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기에는 많은 것을 얻기도 하고, 많은 것을 잃기도 하고, 잃고 나면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고,
얻고 나면 世上을 다 가진 것처럼 즐거워하지만, 事實 本質의 立場에서 본다면 삶에서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왜? 本來 가지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本來 처음에 우리가 올 때부터 가지고 온 것이
하나도 없는데, 다만 내 意識이 많은 것들을 내 것으로 붙잡아서 부여안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중에 좋아 보인다 싶은 것들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내 意識에서 더 많이 내 것으로 붙잡아놓고, 내 所有인 것처럼 錯覺하고 여기는 것이지요.
나의 생각 마음 의식이나 내 몸이라는 것이 진짜 있어서 눈에 보이는 그것들을 내 것으로 所有하면서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닙니다. 내 所有物이라는 것들은 그저 意識이 갖고 있다고 虛妄하게 錯覺해서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일 뿐이지요. 내 집, 내 차, 내 부인, 내 가족, 이게 다 내 意識이 幻想으로 붙들고 있는 虛妄한 錯覺하는
分別心일 뿐이지, 本來 내가 있어서 本來부터 이것들을 붙잡아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 내 것일까요? 자식은 절대로 내 것이 아니죠. 남편, 아내가 내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내 생각 마음 의식이 그렇다고 잠시 錯覺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내 자식이라고 내 맘대로 해도 될까요? 그렇지 않겠지요. 얼마 전 TV채널을 돌리다가
어떤 여자 강사분이 젊은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시원하게 하시데요. “부모님이 ‘의대 가라’, ‘서울대 가라’,
‘좋은 데 가라’고 말하지만, 自身이 그걸 원치 않는다면 절대 부모님 말 듣지 말라고 말이지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은 제대로 잘 될 수가 없다고 말이지요. 딱 잘라 말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얘기 할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말의 意味를 알다 보니까 아주 통쾌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처럼 자식도 내 것이라고 錯覺하지만 事實은 내 것이 아닙니다.
이 世上에서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잃어도 잃은 것이 아니고, 얻어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얻었다고 錯覺하고 내 것으로 붙잡아 두고 거기에 구속되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없고, 잃었다 하고
錯覺해서 거기에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린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삶에서는 本來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꿈처럼 多樣한 因緣들이 삶 위를 스쳐지나갈
뿐입니다. 이 世上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와야 할 곳으로부터 왔다가 때가 되면 가야 할 곳으로 떠나 갈 뿐입니다.
그런 過程에서 조그만 미련이나 執着도 두지 말고, 다만 因緣 따라 내 삶에 주어진 것들을 所重하게 쓰다가
돌려보내야 할 때 보내줄 뿐인 것입니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