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알 수 없다]
우리의 生覺 마음 意識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이득이 되는 것인지 손해가 되는 것인지를 무의식적 자동반사적으로 認識하곤 합니다. 그래서
좋거나 득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愛着하면서 어떻게든 더 많이 붙잡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反對로 싫거나
손해가 되는 일이라고 여기면 어떻게든 거부하고, 밀쳐내려고 애쓰며 화를 내고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해 우리의 생각 마음 의식이 判斷하고 分別한 것처럼 좋거나 나쁜 것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事實은 우리의 判斷이 그 일이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일이
根源的으로 나에게 정말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우리의 생각 마음 의식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初期癌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우연히 정기 검진에서 암진단을 받고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괴로워하겠지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초기에 암 진단을 받음으로써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내고, 그 이후에 몸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운동도 하고, 술 담배도 끊고, 건강을
잘 지킴으로써 남은 인생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다면, 오히려 암 진단이 이 사람을 도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初期癌은 최악의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도 고마운 사건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는 어떤 한 事件을 가지고 그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새옹지마란
말처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떻게 變化해서 흘러가게 될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初期癌 진단을 받은 사람이 그 초기암을 좋거나 나쁜 둘로 나누는 分別心을 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즉 암진단을 최악의 괴로운 상황으로 보면서 세상을 원망하거나, 다행히 초기에 발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보는 이 두 가지의 觀點을 選擇하지 않고 다만 無分別로 바라보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까요?
事實 初期癌 진단이라는 事件은 좋거나 나쁘다는 그 어떤 固定된 實體도 없는 中立的인 狀況일 뿐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각 마음 의식으로 판단 분별을 해서 좋거나 나쁜 쪽으로 分別心을 몰아감으로써
생각 마음 의식으로 생각 마음 의식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하고, 감사해 하기도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方式으로 우리의 생각 마음 의식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얽어매고 있습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도
자기 자신의 생각 마음 의식이며,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도 자기 자신의 생각 마음 의식일 뿐입니다.
둘로 나누지 않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이 바로 깨달은 자의
삶의 방식일텐데요, 깨달은 사람이라고 암 진단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깨달은 자는
암진단을 받고나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좋고 나쁜 둘 중 하나의 상황으로 生覺을 몰아가지 않는 자입니다.
分別心을 일으켜 둘 중 어느 한 쪽으로 現 狀況을 解釋하지 않는 것이지요. 몸 속에 癌은 있었지만 암진단을
받지 않았을 때는 우리는 암으로 인해 괴롭지 않았겠지요? 그와 같이 몸 속에 암이 있느냐 없느냐가 나를
기쁘게 하거나 괴롭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죽을 때까지 암을 달고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이
암인줄 모르면서 잘 살다가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군요.
事實 狀況 그 自體는 우리를 괴롭힐 必要充分 條件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나 그것은 나의 선택일 뿐입니다.
生覺 마음 意識으로 虛妄한 錯覺하는 의식인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어내 그 幻想 속에 빠져드는 無繩自縛
(무승자박)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解釋이나 分別을 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삶을 그저
사는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신의 생각 마음 의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佛法은 자신의 생각 마음 의식이 만든 虛妄한 分別心 煩惱 妄想인 幻想의 分別의 世界 속에 갇혀 사는 삶이 아닌, 지금 있는 이대로 解釋되지 않은 날 것의 中道的인 不二法의 正見으로 自由롭게 걸림 없이 사는 삶입니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